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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레아학파 : 세계의 부정, 현실의 긍정

고대 그리스에서 의학과 철학

“제논은 엘레아의 참주인 네아르코스를 축출하고자 했으나 체포되었다. 그리고 그는 네아르코스에게 심문을 받을 때 자신의 혀를 물어 끊어 그에게 뱉었고, 그러고는 맷돌에 던져져 으깨어져 가루가 되었다.” 수다(Souda) 또는 수이다스(Souidas)라고 하는 10세기 말 비잔틴에서 편찬된 일종의 그리스 백과사전의「제논」항목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그 제논입니다.

거북이와 토끼 또는 아킬레스를 경주시키고, 거북이가 조금이라도 앞서 출발한다면 결코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앞지를 수 없다고 했다던 그 제논이 맞습니다. 이 사람만이 아닙니다. 제논이 살던 도시 이름을 딴 철학학파인 엘레아학파에는 멜리소스라는 인물도 있었는데, 제논과 달리 사모스 사람이었던 그는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함대를 이끌고 사모스를 쳐들어갔을 때, 장군의 직을 맡아 페리클레스의 함대를 무찔렀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리고 그는 제논 못지않게 우리가 보는 상식적 세계를 부정하며 “그러므로 이처럼 있는 것은 영원하며 무한하고 하나이며 전체가 같다. 그리고 그것은 소멸하지도 더 크게 되지도 재배열되지도 고통스러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을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자연학」3권 18절 중)라고 말했습니다. 세계를 부정하는 논변을 펴면서도 이들이 현실에 대해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실 제논의 주장은 독창적인 것은 아닙니다. 플라톤의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제논의 역설적인 논증들은 모두 자신의 스승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을 비판하는 자들의 논변을 귀류법을 이용해 논파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멜리소스의 논증 역시 대체로 파르메니데스의 전체의 논변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것이기에 그다지 독창적이지 않습니다.

이들의 추앙을 받은 파르메니데스의 글은 어렵습니다. 고대의 철학자 중에 최초로 호메로스의 운율을 사용하여 비유와 이미지가 풍부한 점도 있습니다만, 그의 사상이 우리의 감각적 세계를 훌쩍 뛰어넘어 아득한 추상의 세계로 도약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일 것입니다. 악명 높은 그의 단편 중 하나를 인용해 봅시다.

“자, 이제 내가 말할 터이니, 그대는 이야기를 듣고 명심하라. 탐구의 어떤 길들만이 사유를 위해 있는지. 그 중 하나는 있다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 없다 라는 길로서, 페이토(설득)의 글이며(왜냐하면 진리를 따르기 때문에), 다른 하나는 있지 않다 라는, 그리고 있지 않을 수밖에 없다 라는 길로서, 그 길은 전혀 배움이 없는 길이라고 나는 그대에게 지적하는 바이다.”(단편2, 프로클로스의「학설집」5권 15절 중)

여기서 이 단편을 일일이 해설할 수는 없으나, 그는 이 단편을 기초로 ‘있는 것은 하나이며, 생성하지도 소멸하지도 않으며, 운동도 변화도 하지 않는다’란 주장을 세웁니다. 이런 그의 주장을 고대인들은 우주를 부정하는 논변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그도 엘레아의 법을 입안하는 등 현실의 삶에 적극적이었습니다. 엘레아학파의 논변들만 들으면 그들은 현실의 삶을 부정하고 속세를 떠나 은둔하는 구조자의 삶을 살았을 듯하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논란은 가능하겠으나, 이런 그들의 일관된 태도를 보면, 그들의 논변은 현실을 부정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세계를 부정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상식인의 입장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들은 논리의 끝을 따라가 그 결론에 직면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아낙시만드로스에게 그 길은 무언가 지탱할 것이 필요하다는 상식을 넘어서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이제 이들에게 논리는 상식의 고루함의 제거를 넘어 세계의 파괴를 요구합니다. 상식적으로는 말이 되지 않으나 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 길을 끝까지 가서 문제와 직면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 철학의 초기 성장기에 엘레나학파가 던진 화두입니다. 그리고 이 화두는 다원론철학을 일으키고, 세계의 부정과 현실의 긍정으로 갈라진 두 길은 플라톤에 와서 이론과 실천의 합일이라는 장관을 펼쳐 보이기에 이릅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주일
현재 정암학당 연구원,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및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강사
저서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럼 누가>,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선집>(공역), 플라톤의 <알키비아데스 I.II>(공역) 등 번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