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3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기사검색

여왕의 품격

Relay Essay 제2253번째

한참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다. 이름처럼 우아한 여자 우아진(배우 김희선 분)과 그녀처럼 되고자 안간힘을 쓰는 간병인 박복자(배우 김선아 분), 두 여성의 이야기.

아름답고 능력 있으며, 스스로의 가치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그래서 늘 여유있게 상대를 대하는 우아진은 여자가 봐도 멋있는, 그야말로 ‘품위있는 여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처럼’이라며 우아진을 삶의 목표로 삼고 맹목적으로 달려가는 박복자가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누구나 ‘우아진’이고자 하지만, 누구나 그녀처럼 살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 삶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재력과 학력과 능력의 삼박자를 고루 갖춰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게 갖춰야만 품위가 있는 것이라고 나는 믿어왔다.

이 드라마를 대하면서 나는 품위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사람이 갖춰야 하는 위엄과 기품, 그리고 고상함이란 대체 무엇일까? 박복자가 그러했듯 내가 모델로 삼을 수 있는 품위란 대체 어떤 것일까.

나는 내 주변에 품위있는 여자는 거의 없을 것이라, 아니 나조차 품위와는 거리가 멀다 생각했다. 적어도 마티스와 칸딘스키를 논할 수 있고, 옷차림이 그럴싸하며, 금전을 초월하는 풍족함을 가지고 있는 것. 내가 생각했던, 내가 오해했던 품위는 바로 그런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문득 벨이 울리는 언니의 핸드폰을 보며, 어쩌면 나는 이미 품위있는 여자와 함께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에 띄워진 닉네임 ‘여왕마마’, 바로 내 어머니 말이다.

내 어머니 또한 다른 어머니들과 그리 다르지 않다. 세월이 가져다 준, 어쩔 수 없는 흰 머리와 눈가의 주름, 그리고 그간 고단했을 삶을 고스란히 간직한 거친 손마디를 가진 그저 평범한 중년의 여성. 더군다나 쉬고 여유를 부려야 할 지금의 나이에도 두 손주들을 품에 안고 아등바등 일상을 살아가는 그녀는 그저 박복한 어머니들 중 하나일 뿐이다. 아픈 허리와 부어 오르는 손발, 삐그덕거리는 관절마디에 병원을 제집 드나들 듯 하고, 늘 그렇듯 반찬거리를 걱정하며, 말 안 듣는 자식들에게 꽥꽥 소리지르고 돌아서서 후회하는 평범한 아줌마.

그런 그녀에게서 우아진의 모습을 찾기는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어쩌면 그녀는 또 다른 측면에서 우아진보다 더 품위있는 여성인지도 모른다.

깐깐하게 물건을 고르고 값을 깎을지언정 상인의 어려움과 고달픔을 외면하지 않고 귀담아들으며 때로는 예정에 없던 두부와 채소를 잔뜩 사 들고 들어오는 것이 그녀가 가진 마음의 풍족함이 주는 품위이다. 버스 안이나 전철 안, 빈 자리가 보인다 싶으면 부리나케 달려가더라도 아이를 안은 엄마와 임산부, 더 나이든 이를 보면 슬그머니 자리를 내주는 것이 내가 아는 그녀의 품위이다.

또한 ‘뛰지 말라, 조용히 해라, 하지 말라’는 것 투성이에 매일 제 자식과 손주들에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 일상이지만, TV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불쌍한 아이들이 있으면 눈물을 훔치고, 주머니를 열어 쌈짓돈을 풀어낼 줄 아는 것이 그녀가 가진 여유에서 나오는 품격이다. 그림을 볼 줄은 모르지만, 가족들 건강에는 어떤 나물이 좋은지, 또 어떤 나물이 싱싱하게 잘 자란 나물인지 단박에 감정해낼 수 있고, 손주들에게 들꽃이름을 가르쳐줄 수 있는 박식함이 그녀가 가진 안목이 주는 품격인 것이다.

돈과 학력, 재주가 가져다 주는 품위는 아닐지언정, 지내온 시간과 삶의 경험, 부딪힌 사람들 속에서 스스로 품격을 갖춰온 그녀가… 어쩌면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진정 ‘품위있는 여자’인지도 모르겠다.

누가 감히 품위와 품격을 정의하고 논할 수 있겠느냐 마는 적어도 나는 이것이 내가 우러러 볼 수 있고, 갖추고자 하는 격이고 고상함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늘도 무릎 위에 작은 손주 놈을 눕혀놓고 드라마 속 악녀를 보며 쌍욕 한마디를 날려주는 그녀를 보며, 나는 웃다가 찔끔 눈물을 흘리며 마음 속으로 되뇐다.
“여왕님, 몰라 뵈어 죄송합니다. 당신이 가진 삶의 품격을”


이주선 실장
㈜아이오바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