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앞길을 내다볼 수 없었던 갈림길에서, 모처럼 남북한의 해빙을 가져온 ‘평창의 평화 올림픽’도 끝났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공정한 경쟁을 통한 평화를 꿈꾸는 올림픽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올림픽의 진정한 정신은 ‘평화’의 추구이다. 그 바탕에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높이 평가했던 자유로운 경쟁(eris)을 통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따르려는 정신이 있었다. 그들은 ‘경쟁과 싸움’을 중요한 덕목으로 받아들였다. 폴리스와 폴리스 간에 필연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대립각을 ‘공정한 에리스에 의한 평화’를 통해서 해소하고자 했다. 이것이 고대의 올림픽 정신의 출발이었다. 아테나이오스의 ‘현인들의 만찬’에는 인간의 지혜를 사랑하는 것보다 육체적 힘을 자랑하는 ‘올림픽 게임’을 비난하는 음유시인 크세노파네스(기원전 570-475년)의 시가 나온다. 올림피아에 있는 피사의 샘터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에서 승리하면, ‘영예가 주어지고 국가는 공적인 비용의 식사와 보물이 될 선물이 주어질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힘보다 또 말(馬)의 힘보다도 우리의 지혜가 더 낫다. 훌륭한 지혜보다 그런 힘들을 선호한다는 것은 올바르지 못하다.’ 아무리 육체적으
헬레니즘 시기의 회의주의, 쾌락주의로 알려진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 등은 공통적으로 철학의 목적으로 ‘삶의 치료’(technebiou)를 지향했다. 철학자들에게 철학함의 동기는 삶의 고통에 대한 긴급성 때문이었다. 정치적 혼란기에 어떻게 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 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이것이 그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이 시기에는 ‘철학과 의술의 기예’를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철학 학교는 일종의 ‘영혼의 병원’(iatreion tes psuches)이었던 셈이다. 철학자는 영혼의 치료사였다. 에픽테토스는 50~60년경에 태어나 130년경쯤에 죽은 후기 스토아 철학자이다. 에픽테토스(Epiktetos)란 이름은 ‘곁다리로 획득했다’는 의미이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노예인 에픽테토스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또 한 명의 스토아 철학자, 아니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에서 인생을 연극에 비유하고 있다. 인간은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에 불과하다. 그러니 인생이 5막이 아니라 3막이면 어떤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하지만 인생에서는 3막이 연극 전체인 것이다. 언제 끝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이전에는 너의 구성에, 지
로버트 프로스트는 ‘단풍 든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을 노래하고 ‘가지 않은 길’을 선택했다. 소크라테스와 동시대에 살았던 소피스트인 프로디코스 이야기(Horai) 역시 ‘두 갈래 길’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세노폰의 <회상>(Memorabilia) 제2권에서 전해지는데. 이 이야기는 대충 다음과 같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젊은 헤라클레스가 어떤 ‘인생항로’로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 아포리아(aporia; 난관)에 빠진다. ‘아포리아’란 길이 꽉 막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때 키가 큰 두 부인이 그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것처럼 보였다. 그 중 한 사람은 예의 바르고 고귀한 모습을 하고 하얀 의복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이것은 aretē(덕)이다. 또 한 사람은 그녀를 편드는 쪽에서는 eudaimonia(행복)라고 부르고, 그녀의 적으로부터는 kakia(악덕)라고 불린다. 이 여자는 풍만하고, 유려하고, 화장과 같은 수단으로 자신의 아름다움을 마음껏 높이고, 허영의 눈으로 자기의 그림자를 응시하고, 비치는 옷으로 남자의 관능을 부추기려 하고 있다. 두 여자는 번갈아가며 헤라클레스에게 오랫동안 말을 걸고 그
‘성격이 그 사람의 운명(daimōn)’이라고 말한 사람은 헤라클라이토스이다. 신을 의미하는 ‘다이몬’은 ‘한 개인에게 몫을 부여하는 자’를 의미한다. 한 개인의 운명은 자신에게 부여된 다이몬에 의해서 결정되며,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는다. 이와는 달리 헤라클레이토스는 한 개인의 운명 혹은 다이몬은 그 자신의 성품과 습관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성격이 맞지 않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일은 여간 힘들지 않다. 하물며 그런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한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돈을 벌거나, 명예를 얻거나, 정치적으로 출세한 사람들이 그 지위에 따라 성격이 변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드라마에 등장한 인물의 성격을 두고 그 성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논쟁하기도 하고, 어떤 성격은 그 일에 혹은 그 자리에 어울리거나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직계 제자로 스승의 학문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학자는 레스보스 섬 출신의 테오프라스토스(Theophastos)였다. 그는 ‘학문에 미친 사람’(scholastikos)으로 불렸다. 원래 이름은 튀르타모스였다고 하는데, ‘말투에 실린 신적인 여운 때문에’(dia to tēs phraseōs thespe
《관상학》이란 작품을 남긴 폴레몬보다 반세기쯤 뒤에 살았던 의학자 갈레노스(Galen; 129-216년경)는 영혼의 힘이 신체에 결부되었다고 믿었다. 관상학에 대한 그의 관심은 새로운 소피스트들의 활동의 중심지였던 스뮈르나(smurna)에서 의학을 공부하기 위해 체류했던 동안에 고무되었다. 이곳의 지도자 역할을 하던 사람이 웅변가이자 관상학자로 알려진 폴레몬이었다. 갈레노스는 폴레몬에게서 수사학을 배웠으며, 나중에 수사학 이론을 의사 훈련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의사였던 갈레노스의 의학에 관련된 많은 저작들은 심리적인 것과 도덕적 주제를 다루고 있다. 그의 의학 저술들의 주된 관심은 의학 문제들과 더불어 인간의 성격과 신체 외관의 관계에 대한 해명이었다. 갈레노스의 관상학 지침서인 작품의 제목은 ‘영혼의 능력은 신체에 따른다는 책’(Biblion hoti tais tou somatos krasesin hai psuches dunameis hepontai)이다. 그는 ‘신과 같은 히포크라테스’의 말을 인용한다(Prognost. de Decubitu, ed. Kuhn; 4.797-798). “관상학의 지식 없이 의술 활동을 하는
‘내가 날씨 따라 변할 사람 같소?’ 연극 제목이다. 자연의 변화와 직업과 같은 사회제도가 인간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한국인이 성격이 급하다면 뚜렷한 계절의 변화와 심대한 온도의 차이가 그 원인이 될 수 있을까? 히포크라테스는 기후와 풍토, 계절의 변화에 따라서 사람의 체질이나 체형, 나아가 도덕적 품성과 성격까지도 영향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건강과 도덕적 성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결정적 요소로서 계절의 균형(summetria)과 변화(metabole)의 개념을 들었다. 히포크라테스는 계절의 변화가 잦을 때, 정액이 응고하는 경우 더 큰 변질(phthorai)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거칠음, 사나움, 용맹함 같은 성격도 자연환경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 추운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운 지역에 사는 인종보다 더 용감하다는 것이다. “항상 같은 기후에서는 게으름이 생겨나고, 변화 많은 기후에서는 몸과 마음이 시련을 견뎌낸다.”(《공기, 물, 장소에 관하여; De aere, aquis, locis)》 히포크라테스는 인체를 구성하는 체액(humor)이 기후와 풍토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한다. 히포크라테스에 따르면 혈액,
고대 서양 관상학에 가장 영향력을 끼쳤던 ‘아리스토텔레스 이름’으로 알려진 《관상학》(Phusiognōmonika)은 그의 진작(眞作)이 아니다. 페리파토스(소요학파) 계열의 ‘짝뚱(Pseudo) 아리스토텔레스’가 기원전 3세기경에 쓴 것으로 추정된다. 관상학이 성립하는 기본 전제는 “영혼과 신체는 서로 간에 상호작용을 하며, 영혼의 상태의 변화는 동시에 신체의 형태를 변화시킨다(《관상학》 808b12-14)”는 것이다. phusiognōmonika란 말은 phusis(자연, 본성)와 ‘알다’, ‘판단하다’, ‘해석하다’를 의미하는 gnōmōn이 결합되어 생겨난 말이다. 재미난 사실은 ‘신체의 표지를 보고 성격을 판단해 낸다’는 phusiognōmonia란 말이 아리스토텔레스 이전에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Hippokratēs)에게서도 나온다는 점이다. 물론 그 말이 사용된 맥락은 심리적 성격과 외관과의 상호관계가 아니라, ‘정신적 활동과 생리학’(physiology)의 상호관계였다. 철학자들은 인간의 ‘윤리적 성격’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인간의 성격과 인간의 생김새 간에 있을 수 있는 모종의 연관성을 이론적으로 따져보았다. 의사들은 관상을 통
호메로스의 ‘오뒷세이아’ 제2권 첫머리에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트로이 전쟁에 참여한 아버지에게서 오랜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자, 이타카의 귀족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소집한다. 그리스 원어인 ‘라온 아게이렌인’(laon ageirein)이란 말은 ‘군대를 아고라로 소집한다’는 의미이다. 라오스(laos)란 말은 본래 미케네 시절의 전사들의 회합을 가리키던 말이다. 전사들은 군사적 형태, 즉 원을 그리면서 소집된다. 오늘날 군대의 명령자가 자신의 부대원을 소집해 명령을 내리는 것을 연상하면 된다. 그들은 이 원을 이세고리아(isēgoria)라고 불렀고, 여기서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동등한 권리’(equal freedom of speech)가 주어졌다. 말하자면 이곳은 공개토론을 하기 위한 공공의 장소인 셈이다. 이 전사들의 모임을 구성하는 ‘평등한 자들’의 집회는 각자가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발언하는 중심을 둘러싼 원형적 공간을 이룬다. 이 고대의 군사적 집회의 성격이 도시국가로 이어져 ‘아고라 문화’를 형성하게 만들었다. 이 광장에서 모든 시민들은 자신과 관련된 온갖 문제들을 함께 토론하고 결정할 수 있었다. 이 토론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