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상호간의 소통은 항상 중요한 일입니다. 본인의 의도하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확실히 전달함으로써 적절한 노력으로 기대했던 반응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공간적, 시간적, 절차상의 여러 이유로 이러한 의사 전달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거나 처음의 시작 자체가 잘못된 경우에 그 내용을 전달받은 입장에서 잘못 해석하여 판단하면 ‘오해’가 생깁니다. 관계에서 오해가 생기면 상대방에 대한 생긴 선입감으로 인하여 그 이후부터는 제대로 된 메시지가 전달되어도 곡해할 가능성까지 있습니다. 간단한 다른 생각이 아니라 그것이 완전히 반감으로까지 발전한다면 매우 난감해집니다. 우리 치과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겠습니다. 우리들은 일상으로 환자분들 검진하고, 방사선 검사 후 진단해서 치료계획을 세우고 상담하고 치료 및 관리를 진행합니다. 그러한 최선을 다하는 과정들이 우리 의료진에게는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지만 환자분들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치과에 오랜만에 방문해서 그러한 절차를 거치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긴장되고,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며 매우 지루하고 싫은 시간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병원을 방문해서 진료와 상담을 받을 때의 심리
아침 햇살에 따듯함을 기대하면서 빼꼼히 창문을 열면 포근한 느낌보다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바람결에 성큼 들어옵니다. 일교차가 꽤 나서 몸이 웅크려질 지경입니다. 어느덧 올해가 9월도 마지막 주로 접어들어 바야흐로 가을의 중심으로 들어서고 있습니다. 30도를 훨씬 넘는 날들이 이어져서 꽤 무더웠고, 하늘이 찢어진 듯이 퍼부어대어 많은 침수 피해를 내었던 폭우, 그리고 연이어서 찾아온 태풍은 대비한다고는 했어도 많은 분들을 힘들게 했지만 그런 여러 가지로 힘겨웠던 여름이 그래도 시간이 지나가니 어느덧 멀리 가버리고, 절기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닫도록 하는, 아침, 저녁으로 결실의 계절 기운을 느끼는 시기가 되었습니다. 가을에는 가까운 교외에서 코스모스의 여린 모습을 볼 수 있고, 산에라도 가면 오르내리는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겹겹이 낙옆이 쌓여서 걸을 때마다 나는 바스락 소리에 절로 시인의 감성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단풍은 곱게 물들어 우리 모두의 마음을 때론 붉게, 때론 노랗게 바꾸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찾아오는 봄이 앞으로에 대해서 생명의 시작과 설래임이 있는 계절이라면 가을은 왠지 만남, 그리고 그 이후에 느껴질 그리
#1 연일 30도를 훌쩍 넘어서는 고온, 다습의 무더위가 밤까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자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잠을 설친지가 꽤 여러 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창 밖 아파트 단지 안의 나무에서 울어대는 새들과 매미소리에 잠을 설쳐서 잠깐 깨고 나서 아직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억지로 다시 잠을 청해보지만 쉽게 다시 잠이 들지 않습니다. 머리 속에서 뭔가가 잡히지 않고 오락가락만 하면서 돌아다닙니다. 습기, 끈적함, 뜨거움, 갈증... 계속되는 열대야로 인해 숙면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들이 저 말고도 많겠지요. 결국 그렇게 일어나서 뭔가 개운하지 못한 기분으로 출근을 하는 길은 그리 신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하루를 보내기엔 뭔가 아쉽습니다. #2 열대야를 극복하고 숙면을 취해서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바꾸어보려고 정보를 얻고 조언을 구해보면 결국 이 더운 여름을 건강하게 보내기 위해서는 영양을 골고루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해야한다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를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섭취할 것 중 기본인 물은 우리 몸 안에서 세포 사이에 영양분을 전달하고 체온조절, 소화 기능 유지, 혈액순환, 노폐물 배출 등 많은 역할
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서 가볍게 스트레칭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제법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까지 몸을 풀고 나서 자전거 타기, 종이신문 읽기(아직도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등 병원에 출근하기 전까지 이런저런 루틴(routine)을 행하고 나서 병원으로 향합니다. 루틴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일상적 정해진 방식’이라고 정의됩니다. 한 마디로 그 일련의 행동방식이 정해진 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고속화도로를 운전해서 오전 9시 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직원들과의 조회, 내원할 환자 차트 미리 검토하는 등을 하고 나면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찾아온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과 어우러지게되면 어떤 아이는 순한 양처럼, 천사처럼 협조적이지만, 또 다른 아이들은 마치 우리들이 자신을 잡아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서워하면서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보호자분들은 온화하고 부드러우시지만, 또 다른 분들은 집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으셨는지 매우 날카롭고 도전적이시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러그러하게 오전 진료를 마치고 나면 뭘 먹을까 고민을 하며 병원문을 나서고, 어떤 날
5월은 계절 중의 여왕답게 푸르른 초목도 많이 자라고, 꽃도 만발하고 새싹도 무럭무럭 자라는 생명의 달입니다. 또 철 이른 더위까지 여름을 재촉하기도 하는 때입니다. 그 좋은 때에 29년을 곱게 키운 제 큰 딸이 결혼을 합니다. 어느 집에서나 아버지에게 딸의 의미는 매우 클 것입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딸을 결혼시키는 마음은 아쉬움, 서운함으로 시작해서 여러 가지 만감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딸이지만 혼자는 살기를 원하진 않기 때문에 결혼을 하려면 좋은 사람 만나서 빨리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는데 바람대로 해주는 효녀이네요. 귀한 딸을 데려가는 신랑과는 다행히도 서로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그리고 평생 삶을 함께 영위할 영원한 동반자일 것을 굳게 믿습니다. 물론 함께 살다가 이제는 떨어져 보내는 것이 서운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껏 키운 것처럼 또 지켜보며 축복해야지요. 그게 아버지인 저의 역할일 테니까요. 딸이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딸이 저보다 더 사랑해 줄 남자를 만났다는 게 기분 좋고, 사위도 성격 좋고, 무엇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여서 마음에 들고. 사돈 집안도 검소하고 선하신 것 같아서 더욱 좋습니
60년대에 태어나서 70년대와 8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고 90년에 치과대학을 졸업한 후에 서투른 손으로 환자를 보기 시작한지가 벌써 30년이 훌쩍 지난 때를 살고 있다. 매일의 일상이 된 병원 출근과 진료 속에서 지내면서는 내 나이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코로나 시국이라 비록 온라인으로 모이긴 하더라도 치과모임에서 이제는 치과계에서 선배님들 보다는 후배님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알고 있던 지식들은 이제 세월이 흘러서 구식이 되어버리고, 최신의 지견을 익히려면 몸과 마음이 잘 따라가지를 못하는 것을 체감하면서 한숨을 쉴 때도 있다. 비단 치과적인 것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그러하다. 예를 들면 요즈음 화두인 ‘메타버스’는 ‘가상’, ‘초월’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메타’(Meta)와 우주를 뜻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로, 현실세계와 같은 사회·경제·문화 활동이 이뤄지는 3차원의 가상세계를 의미한다고 한다. 메타버스는 가상현실(VR,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가상의 세계에서 사람이 실제와 같은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최첨단 기술)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개념으로, 아바타를 활용해 단지 게임이나 가상현실을 즐기는
코로나로 되도록 외부에서의 활동을 자제하고 실내에서 생활을 해오고 있는 요즘 각 가정에서 각종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들이 많이 활성화가 되었다. 그런 분야에서 약 3개월 전 가을에 전 세계가 떠들썩하게 화제에 올랐던 한 드라마가 ‘오징어 게임(Squid Game)’이었다는 것을 모르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기록을 찾아보니 올해 9월 17일에 전 세계에 방영을 시작했는데 해당 정식 서비스되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시청률 1위를 달성했다고 하며 우리나라 드라마가 이 정도의 외국의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고 하니 대단하긴 했다. 필자는 초등학교 시절에 오징어 게임을 실제로 즐겼던 구세대(?)로서 그 제목에는 매우 호기심이 갔었으나 전해 들리는 바로는 잔인하고 어두운 드라마라고 해서 왠만하면 안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사람들과의 대화에 동참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점점 더 궁금해져서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는 부정적인 수위는 덜했고 어느덧 몰입되어 빠져들어 금방 몰아서 보게 되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여러 가지 서바이벌 생존게임인 숨바꼭질, 달고나(뽑기) 등이 유행을 타서 외국에서도 체험해보기 등의 이벤트가 벌어지기도 했고, 프랑스 파리에서는
소아치과 수련을 마치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분당에 진료공간을 마련해서 아이들을 진료하기 시작한 지 1년 정도 지난 1997년의 어느 날 정난기가 많은 얼굴의 귀여운 6살 남자아이가 엄마 손에 이끌리어 신환으로 찾아왔습니다. 처음 방문했는데도 여러 번 왔던 것처럼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병원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면서 구경하기 바빴고 유닛에 올라와서도 씩씩하게 곧잘 협조해주어서 검진과 간단한 치료도 쉽게 진행되었었지요. 이후 어머님께서 정기검진도 꾸준하게 잘 데리고 와주셔서 지속적으로 검진과 관리를 했었고 아이는 많이 잘 따랐습니다. 몇 년이 지나서 아이의 유치가 빠지고 앞니가 영구치로 교환되어 있었는데 그 나이의 남자아이들이 자주 그러는 것처럼 놀이터에서 놀다가 앞니를 다쳐 울면서 응급으로 치과에 왔었습니다. 상악 좌측 중절치가 사선으로 비스듬하게 1/3정도 부러져나갔고, 치수가 노출되기 직전이었습니다. 놀라서 우는 아이를 겨우 달래어서 레진으로 모양을 당일 만들어주었고, 맹구가 된 것 같은 모습에서 잠깐 사이에 다시 제 모양을 찾은 자기 이를 거울로 보며 그 아이는 활짝 웃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활동적일 나이인지라 그 이후에도 정기적인 검진 내원 외에
15여년 쯤 전에 인기가 있었던 ‘데스노트’라는 일본 만화가 있었다. 만화의 제목이자 작품의 주제를 상징하는 ‘데스노트’는 천상의 사신들이 인간들을 죽일 때 사용하는 공책으로, 사람의 이름을 그 노트에 적으면 그는 명을 다하여 죽게 된다. 인간계에 떨어진 이 노트를 라이토가 우연히 줍게 되고 이것이 진짜로 사람을 죽이는 물건이란 걸 알게 된 그는 이 노트를 세상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하여 사용하기로 하고 온 세계의 범죄자들의 이름을 써서 죽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많은 범죄자들이 죽는 사이에 이상한 연관성을 발견하고 파해치는 경찰이 생겼는데 점점 추격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라이토는 뒤쫓는 경찰의 이름마저 그 노트에 기록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면서 처음에 자신이 그 노트를 왜 사용하기 시작했는지를 잊어버리고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지 못하며 점점 더 변질되어간다. 본인이 모든 것에서 옳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려는 것을 막거나 반대하는 입장을 나타내는 그 어떤 대상도 제거해버리는 괴물로 되어버린 것이다. 정의감이 넘치는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나아가다가 결국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1990년 2월 졸업식장에서 히포크라테스
얼마 전 지인 분이 쓴 신간 ‘자기 인생의 각본을 써라’라는 책을 읽는데 내용 중 오랫동안 마라톤을 뛰는 분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었습니다. 저자가 그렇게 오랫동안 마라톤을 해오고 있는 그에게 “너는 그렇게 20년이 넘게 한결같이 뛰어왔으니 이젠 몸에 배어서 하나도 힘들지 않겠네?”라고 물었더니 그 친구가 대답하기를 “천만에! 지금도 뛰어야 하는 날 새벽에 눈을 뜨면 ‘뛰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하고 수백 번을 고민해. 그러다가 운동화를 딱 신고 발걸음을 내딛으면 그때부터는 가슴이 뛰어. 운동화를 신기까지가 제일 힘든 것 같아.”라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그 글을 읽는데 ‘어떻게 이렇게 산에 오르는 것과 똑같지?’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정말 신기하게도 지난 16년간 휴일이면 어김없이 청계산을 찾음에도 불구하고 이불 속에서 항상 빠짐없이 ‘내가 오늘 산에 왜 꼭 가야하지? 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은데 억지로 가면 건강에 더 나쁜 것 아닐까?’등등의 유혹이 머릿속에서 맴돕니다. 그런데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 5분도 안되어서 숨이 살짝 가빠지면서 ‘정말 오길 잘했다’라고 마음이 바뀝니다. 현실적으로 주위에는 산을 즐기는 분들보다 산에 오르지 않고, 심지어는 과거의
휴일이면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6시에 집을 나섭니다. 새벽 6시 30분, 복장을 갖추고 지인들과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곳은 청계산 옛골 입니다. 초입에서 서서히 경사로로 진입해서 10여분을 오르면 쌀쌀한 아침 온도는 느껴지지 않고 송글송글 이마에 땀이 맺히면서 숨이 살짝 가빠집니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함께 간 지인들과 함께 계속 오르다보면 어느새 이수봉의 정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약 16년 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던 중 자꾸 허물어져 가는 일상생활에 규칙적인 일상을 더하려는 마음과, 건강을 지키려는 자그마한 노력 구상에 의기투합한 3인의 치과의사들은 접근과 오르기가 쉬운 청계산으로 장소를 정하고 일요일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주중에 힘들게 병원생활을 하고 나서 맞이하는 휴일에 늦잠을 자지 않고 오히려 더 일찍 일어나서 아직 날도 밝지 않은 하늘을 바라보면서 집을 나서는 것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고, 한겨울에 매서운 추위에 귀마개에 겹겹이 옷을 껴입고 정상에 오르면 땀이 고드름이 되어서 매달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렇게 계속 해오니 어언 누적 산행 회수가 900여 회 이상이 되었
스펙트럼의 원고를 마무리 할 즈음에 3월 1일자 치의신보를 넘기다가 서울대 예방치과 조현재 교수님의 스펙트럼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1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 제목에 끌려서 읽고 내용에 감동되어서 읽고 또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와닿고, 깊은 곳을 따듯하게 보듬어주면서도 자극이 되어서, 그동안 준비하고 있던 원고는 뒤로 제쳐두고 다시 새로 쓰기 시작했습니다. ‘조교수님의 방법대로, 형식대로 나도 따라 해보자’하고 말이지요. 연배, 자리가 다른 50대 중반의 개원의가 쓰는 10년 후의 자신에게 쓰는 편지는 또 다른 시각과 생각에서 나올 것이므로 그 또한 의미가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교수님과는 아직까지 안면이 없어서 미리 허락을 얻지 못하고 했음을 넓으신 마음으로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지의 시작은 10년 후의 우리 가족에게 씁니다. 저와 같이 60대 중반의 나이가 되어있을 아내, 그리고 39세, 36세가 되어있을 두 딸에게 말이지요. 결혼 40주년을 앞두고 있을 10년 후의 시점에 아내에게 부족한 남편과 함께 수 십년을 살아주느라 정말 고생 많았고, 앞으로 지금까지 해준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한 모습으로 대해주리라고 약속하는 글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