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뭐라고 누굴~ 설~득을 하고~” 동문회 날 늦은 저녁, 오랫동안 좋아하고 존경해 온 선배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어떤 사람의 말이 그냥 내 귀에 쑥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말이 나더러 들으라고 한 말이 아니어도 내가 그 말을 듣는다. 선배님의 그 말씀이 그렇게 나에게 들어왔다. 아마도 나는 많은 순간 남을 설득하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선배님은 고등학교 동문 선배님이자 대학교 동문 선배님이셨다. 훤칠한 키와 빼어난 용모, 시원 시원한 말투와 생각. 그런 모습으로 기억되는 선배님이셨다. 내가 치과대학에 입학하여 동문회에 처음 나갈 즈음, 그 선배님은 S의료원에서 수련을 받고 계셨다. 어쩌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학생들만 모이게 되는 경우가 있어 불고기에 당면 사리를 얹어 먹고 있으면, 그 선배님께서 퇴근길에 들르셔서, “쓸 데 없는 걸 먹고 있다.” 하시며 등심을 사주시곤 했다. 사리에 밝으신 그 선배님께서는 동문회 후배들에게 되는 사람은 된다는 진리를 깨우쳐 주셨다. 등심 외에도 그저 좋은 것들, 부러워할 만한 것들로 회상되는 그 선배님께서 남기신, 설득에 대한 촌철살인의 말씀. 나는 너무 많은 순간 남을 설득하려 했었다. 그리고,
대한치과의사협회 자재·표준위원회에서는 국제표준화기구 치과기술위원회(ISO/TC 106)에서 심의가 끝나 최근 발행된 치과 표준을 소개하는 기획연재를 2014년 2월부터 매달 게재하고 있습니다. 환자 진료와 치과산업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 SC 9은 CAD/CAM 시스템 관련 용어, 구강 스캐너의 정확도, CAM의 정확도, 3D 프린팅된 치과 보철물의 정확도, 절삭가공용 블록의 절삭가공성 및 CAD 소프트웨어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 등의 국제표준을 논의하고 있다. 2023년도 11월 현재 전 세계 30개국(정회원 20개국, 준회원 10개국)에서 참여하고 있으며, ‘모형 스캐너의 정확도’에 관한 표준 외 9종의 국제표준이 출판되어 있고 4종의 국제표준이 개발 중이다. <ISO/TC 106/SC 9 CAD/CAM System 작업반> 현재 SC 9에는 1개의 폐지된 작업반(WG, Working Group)과 6개의 운영 중인 작업반이 있으며 최근 제정되었거나 토의되고 있는 사항은 아래와 같다(표). ○ 이번 호에 소개하는 표준은 2022년 제1판으로 발행된 ISO 18675, Dentistry - Machinabl
그때를 고스란히 남겨 왔다고 생각했다. 막 꿈에서 깨어 어리둥절해하듯 하지 않도록 기억 속에 단단히 담았다고 여겼다. 덕분에 잠시나마 달콤한 일상으로 연장될 줄 알았다. 다시 꺼내기까지 기다림의 시간 동안, 비 오고 바람 불고 천둥도 울고 눈발까지 날렸다. 아직은 성급함일까? 채 숙성되지 못한 추억은 씁쓸함도 함께 꺼내진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수록 쓴맛은 사라지고 달콤함이 깊어지듯, 비워지고 정화되어 처음의 천진한 설렘과 순수한 즐거움만 남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한 번 가버린 시간은 되돌릴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 속에는 지키지 못한 약속들이 있기에 아쉬움도 큽니다. 그 못다 지킨 약속들로 두 번 다시는 약속이란 것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절망 끝에서도 늘 희망을 찾아내는 존재, 사람. 달력의 마지막 장을 찢으며, 절망도 후회도 다툼도 의욕 상실도 모두 같이 찢어버리길 바랍니다. 하루의 끝, 반포대교 위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황혼은 아쉬움을 남기지 않아도 될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Next Society(2002년)의 저자 피터 드러커는 “교육은 경험을 대신할 수 없고 지혜를 제공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치과의사에게도 통하는 이야기일 것 같다. 이제는 돈 없어서 공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많은 매체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고, 조그만 핸드폰 하나만으로도 이론적으로는 모든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느 한 부분이 아닌 만물박사가 될 수도 있다. 설명에 의하면 챗GPT는 세상에 나온 지 1년 만에 10시간 넘게 걸리던 영어논문 작성을 1시간으로 줄였다고 하였고, 구글의 듀엣 AI는 화상회의를 하는 동안 음성을 인식해 메모를 작성, 요약하여 18개국 언어로 자동 번역할 수 있다고도 하였다. LG는 특허, 논문 등 45,000만 건의 전문 문헌과 3억5,000만 장의 이미지를 학습한 전문지식특화 AI를 공개했다고 한다. 더하여 前에는 사람이 넘볼 수 없는 數싸움으로 算術的인 경쟁이었다면 이제는 창작의 영역까지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창작성은 인류 고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챗GPT가 인간과 구분할 수 없는 수준의 창작물을 쏟아내면서 ‘도대체 創作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해야 되는
알파고(AlphaGo)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기억하시나요? 2016년 당시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AI)과 인간의 대결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승부였습니다(그림 1).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인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 4 대 1로 최종 승리하였죠. 인공지능은 일부 공상과학 영화나 소설 또는 학계에서 다루어져 온 주제였으나, 이 대국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의 대중에게도 친숙한 용어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7년이 지난 지금 인공지능은 학계, 기업, 정부 차원뿐만 아니라 개개인의 일상생활에서도 단연코 매우 핫한 키워드입니다. 현재의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인공지능에 기반해 세상과 만나고 있습니다. 주위를 잘 살펴보면 이제 우리의 삶은 인공지능과 끊임없이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영화는 미래의 일을 영상으로 앞서 구현합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아이언맨은 저비스(J.A.R.V.I.S.)를 매번 찾는데요, 저비스는 아이언맨이 가진 다양한 AI 시스템 중 하나입니다. 저비스라는 이름은 ‘그냥 좀 많이 똑똑한 시스템(Just A Rather Very Intellige
서운하거나 성이 나서 퉁명스럽게 하는 말투를 뜻하는 볼멘소리는 ‘볼메다’ 라는 표현에 그 어원이 있다고 합니다. 볼이 메어(막혀) 있는, 즉 공기가 새어나가지 않게 입을 꾹 닫고 볼을 퉁퉁하게 부풀린, 퉁명스러운 상태를 쉽게 떠올릴 수 있겠습니다. 예방치과가 아닌 장애인구강진료센터의 진료를 겸하다 보면 볼멘소리를 듣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대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협조가 불가능한 환자의 보호자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때로 둔기처럼 두들기고, 때로는 날 선 칼처럼 예리하게 베고 찌르는 소리를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어차피 쓸모도 없고 얘가 이렇게 안쓰러운데 왜 못 뽑는다는 거에요?” 휠체어에 비스듬히 누워 연신 가래 끓는 소리를 내는 뇌병변 장애 아동의 보호자가 울분을 토합니다.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어금니로 볼과 잇몸을 씹고 있으니 어금니를 전부 뽑아달라는 주소입니다. 잇몸이 씹힌다는 최후방 치조제에서는 제2대구치가 맹출중이지만, 튜브로 음식을 섭취하는 환자의 상황에서는 어쩌면 정말로 쓸모없는 치아일 수 있겠습니다. 발거 대상은 심한 우식 상태의 대구치 한 개이지만, 보호자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는 쪽으로 치료 계획을 확정합니다.
2012년 봄, 임상에 처음 나와 근무를 시작했다. 1월과 2월에는 이른바 취업 바람이 불어, 대학 동기 중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다들 취업을 마친 상태였기에 꽤 늦은 취업이었다. 사회생활이라고는 아르바이트도 길게 해본 적이 없었고, 치과 업무를 경험한 것은 오직 임상 실습 때뿐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사회생활이었기에 모든 일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인데도 임상에 적용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한 사람의 몫을 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왜 그렇게 원장님과 선배들 앞에만 서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지 스스로도 답답하기만 했다. 처음이니 누구에게나 어려웠겠으나 동기들보다 늦은 취업이었기에 조급한 마음이 앞섰고 그래서인지 적응하는 것이 유독 나에게만 높은 벽처럼 느껴졌다. 그런 1년 차 시절 적응기에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처음 스케일링을 할 때였다. 물론 학교 실습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여러 번 실습도 했고, 입사 후에도 여러 번 트레이닝을 받았던 진료이기에 말이 처음이지 실제로 처음 해보는 진료는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어려운지……. 앉은 자세도 자연스럽지 않았고 미러를 이용한 리트렉션이며, 스케일러를 이용하
대한치과의사협회의 존립 이유는 국민, 치과의사, 치과계 종사자 모두에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소수의 이득을 위해 학연과 지연을 내세우는 것을 배격하고, 늘 깨어있으며 일희일비하지 않고 정론직필. “치의신보”의 존립 이유입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방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교양과 품격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환자들에 대한 애정과 봉사 치과계 종사자들에 대한 존중과 자부심 치과의사로서의 신의와 배려를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실천하는 회원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치의신보”는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진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확대보기 가능합니다. 치과의사의 심대한 역량을 드러내고, 치과계의 펀더멘털이 깊고 넓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대한치과의사협회 유일한 기관지로써의 역할에 충실한 치의신보. 지면신문-인터넷 신문-치의신보TV에 이어서 “디지털 치의신보” 론칭까지... 끊임없는 자기 혁신을 하고 있습니다. “치의신보”는 치과의사, 치과계의 권익을 위해 달립니다. 한진규 치협 공보이사
정부가 최근 의대정원 확대를 목표로 의사 수의 증원을 추진하는 뉴스를 접한 바 있다. 지방인구가 소멸되어 가다보니 지방의 공공병원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을 해결하기 위한 고육책으로 2025학년 입시부터 의대정원을 점차 증원하여 최대 2,000명까지 확대하려는 가운데 의대정원의 불씨가 치대정원까지 영향을 미치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으로 복지부를 바라보고 있다. 현실적으로 정부는 OECD 회원국과 비교하여 의사수가 부족하다는 인식아래 증원을 의협의 논리와 상관없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포퓰리즘의 성격이 짙은 정부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의대정원을 늘리는 목적은 모든 국민이 체감하는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위기 극복이다. 의사만 늘리면 쉽게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정교한 정책이 동반되어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모든 기준이 왜 OECD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지도 알수가 없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한의사라는 직업군이 있어서 의사수를 단순 비교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치과의사 입장에서 의대정원 확대가 치과에 미치는 파장을 생각해 보면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만은 없다. 옛날 속담에 “망둥이가 뛰면 꼴뚜기도 뛴다.” 라는 말이 있다. 의대정원 증원을 정부에서
아름다운 샌프란시스코만(San Francisco bay)에서 치과의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자란 Dr. Zeidler는 University of Pacific 치대를 졸업한 후 수년간 페이닥터로 일하다가 2012년에 독자적인 개원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때 마침 산호세에서 평생을 개원의로 일하다가 36년 만에 은퇴를 하게 된 Dr. Lund는 자신의 치과를 인수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 샌프란시스코만에서는 개원 경쟁이 매우 심하고 신규 개원자리를 찾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따라서, 환자 차트와 보험 청구기록에 의하면 최근 5년간 연간평균 72만에서 96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것으로 확인된 Dr. Lund 치과를 Dr. Zeidler가 인수하기로 한 것은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다. 젊고 패기에 찬 Dr. Zeidler는 약 50만 달러를 치과 인수비용으로 지불하였고, 한 달 정도 두 사람이 함께 진료한 후 은퇴식까지 베풀어 주었다. 드디어 혼자서 환자를 보기 시작한 후 한 달이 지난 즈음, Dr. Zeidler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첫 달 진료수익이 Dr. Lund의 예전 수익에 턱없이 모자라는 15,000달러에 불과했고, 환자 수도 급감한 것이
2년 반전에 ‘10년 후의 나에게 쓰는 편지’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10년 뒤에 저와 제 주변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길 바라는지 쓴 내용이었습니다. 아직 그때로부터 8년이 남았는데,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칼럼은 과거의 20대의 저에게 쓰는 편지입니다. 처음에 10년전의 나에게 쓰는 편지로 하다가 이십대의 과거로 바꿔보았습니다. 40대가 되니 새로운 자극이 이전보다 적기에 시간이 빨리 가고 재미를 덜 느끼지만 불안감은 덜해지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보다 현재에 더 충실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여러가지 업무의 데드라인도 존재하고 건강이나 수면도 신경써야 하지만 당장의 일 또는 재밌는 만남에서도 불안감을 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이십대 때 저는 많이 불안했었습니다. 82년 생이니 2001년부터 대학생이었는데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꿈도 컸지만 동시에 그 꿈을 이루겠다는 강박이 저를 많이도 불안하게 한 것 같습니다. 당시 주변 사람들은 뭔가 편안해 보이는데 저는 뭔가 불안한 압박감을 자주 느끼며 생활하였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불안감은 치전원을 준비할 때도 그랬고 입학해서 학교를 다니고 졸업해서 수련을 받을 때도 30대 중반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