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듣기의 어려움 차를 타고 가족 나들이에 나설 때면, 다섯 살 먹은 우리집 막내 아이는 늘 불평입니다. 자동차 뒷자리에 어린이 세 명이 나란히 앉아있는데 옆자리 누나, 형이 자기들끼리 시끄럽게 이야기하고 떠드느라 대개 막내 아이의 말이 묻히기 때문입니다. 막내가 아직 어려 누나, 형과 대등하게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막내 녀석이 하는 말 자체가 그다지 영양가 있는 말이 아니기도 합니다. 제 옆자리에 앉은 아내는 뒷자리에서 떠들어 시끄러운 첫째, 둘째 아이를 단속하느라 바쁩니다. 그래서 제가 운전을 하면서도 막내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대꾸해 주지만 어쩌다 놓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내 말도 안 들어 주고~~!!” 그리고 삐쳐서(또는 삐친 척하며) 입이 나오면서 동시에 다물어 버립니다. 하지만 녀석,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 틀림없습니다. “어디 이제 그럼 우리 막내 이야기 좀 들어볼 까~~?” 하면서 다시 말할 기회를 주면, 쭈뼛쭈뼛 못 이기는 척 하다가 봇물 터지듯 말을 쏟아냅니다. “근데요 아빠 저기에 반짝이는 쿵쿵거리는 것이 있지요~~”, “내일 우리 여기에 갔었지요~~”, “전에 내일 밥 먹
장소는 인천 그랜드하얏트 호텔, 연자는 Dr. James L Vaden. 코로나라는 이름을 알기 전인 2019년, 2020년 2월 말에 개최될 정기총회의 연자로 섭외되셨던 선생님의 강의가 하루하루 증가하는 환자 수와 그들의 동선이 국가에 의해 보도되고 있던 시기와 겹쳐지면서 당연한 수순으로 취소되었고, 몇 달이면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을 것 같던 처음의 기대와는 다르게 거의 3년 이상의 시간 동안 정상화는 되지 않았습니다. 불완전한 바이러스와 이곳 저곳에서 발생한 전쟁들, 그리고 이상해지고 있는 지구의 기후들. 이 모든 것들은 예측이란 단어를 매우 불신하게 되어 오랜 시간 지켜지던 전통과 관습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2022년 Biennial Meeting을 참석하여 그곳에 혈혈단신 일본대표로 참가한 Sigemi 선생님으로부터 Vaden 선생님이 일본 pre-Tucson 코스의 강의를 위해 2023년 10월경에 일본으로 오실 것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그러했던 인연으로 이전에 놓쳤던 그 강의를 다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4박 5일 도쿄 일정을 마치고 한국에서의 강의가 있기까지 24시간이 조금 넘는 여유시간이 있었기에 강
김동석 원장 ·치의학박사 ·춘천예치과 대표원장 <세상을 읽어주는 의사의 책갈피>, <이짱>, <어린이 이짱>, <치과영어 A to Z>, <치과를 읽다>, <성공병원의 비밀노트> 저자 사람이 자신의 직업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며 경험을 쌓고 성찰을 거듭하면, 그 분야에 대한 통찰력과 독특한 해석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단순한 기술이나 지식을 넘어서, 자신만의 철학을 구축하게 됩니다. 이러한 철학은 해당 분야의 기존 관념이나 접근법에 도전하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전문가’라는 말에는 이미 그 분야의 깊이를 인정하는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전문가가 같은 깊이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전문성의 깊이는 단지 경험만 축적되는 시간의 흐름에 의해 자동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학습, 자기반성, 그리고 실험적 노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됩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자신의 가치와 신념 체계에 통합하여, 결국 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와 새로운 시각을 개발합니다. 이렇게 구축된 철학은 전문가를 동료와 차별화하고,
우연히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헤어지면서 “언제 밥 한번 밥 먹자”라고 하는 것은 부담 없이 주고받는 통상적인 인사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식사 자리를 같이하자고 하는 것은 언젠가 기회가 되면 그동안 못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서로 즐거운 시간을 갖자는 선의의 뜻이다. 모임이 정해지고 식사하게 된다면 누가 밥값을 내느냐는 서로 말은 안 하지만 언제나 신경 쓰이는 일이다. 정치인, 경찰, 기자가 함께 밥을 먹었다면 밥값은 과연 누가 낼까? 돈이 많은 사람? 힘이 있는 사람? 윗사람? 승진하거나 좋은 일이 있는 사람? 아니다! 정답은 ‘식당 주인이 낸다’라는 썰렁한 아재 개그가 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들과 만나 식사할 일이 많이 생기는데 대게는 힘없는 사람, 잘 보여야 하는 사람, 부탁할 일이 있는 사람, 아랫사람이나 약점이 있는 사람, 도움을 받은 사람이 밥값을 내고 힘이 있거나 윗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은 밥값을 내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들과 따로 볼 시간을 얻기 힘드니 밥 먹는 시간이라도 기회를 잡아 대접하면 여러모로 도움이 되기 때문에 밥값을 내도 좋다는 것이다. 내게 밥을 사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게 물질적이든, 정신
2022년 신학기가 되자 2년 가까이 지속되었던 코로나19가 드디어 2급 감염병으로 바뀌면서 온라인 수업이 전면적인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다. 수업전날에는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갔는데 뭔가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첫째, 학생들 책상 위에 필기구가 거의 없었다. 볼펜이나 노트 대신 태블릿 PC나 노트북이 있었고, 당연히 전통적인 방식으로 노트에 필기하는 학생이 없었다. 둘째, 수업 중 내 눈을 마주치는 학생이 드물었다. 대부분 내가 미리 보내준 강의 자료를 각자 책상위의 컴퓨터 화면으로 보고 있었고, 교단 앞의 스크린을 보지 않았다. 수업 전에 미리 보내준 강의 자료와 당일에 보여주는 내용이 달라도, 달라졌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거나 학생들의 반응에 변화가 없었다. 셋째, 막상 학생들을 교실에 모아놓고 대면 수업을 하니, 내가 교실에 있다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가상공간에 있는 느낌이었다. 즉 실제 학생들이 아니라 학생 얼굴 영상의 집합체 앞에서 강의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강의실에 있다는 것 빼고는 가상현실에 와있는 것 같았다. 이러한 변화가 낯설어서 대학생 딸아이에게 수업을 어떻게 듣는지 물어보았다. 딸아이는 노트북에 저장된 파일을 보여주
치아의 치수(단단한 치아안에 흔히 신경치료 할 때 제거되는 연한 조직으로 신경, 혈관, 결합조직 등의 복합체로 이루어 진 것)에서 유래하는 줄기세포란, 영구치 또는 유치의 치수 조직에서 추출한 줄기세포이다. 특히 어린아이의 유치에서 추출한 치수줄기세포는 영어로 stem cells from human exfoliated deciduous teeth (SHED)라고 약자로 불리며, 자가 재생(증식) 및 다분화 능력이 어른치아에서 유래한 치수줄기세포보다 뛰어나 상아질·치수 유사 복합체, 신경, 피부, 연골 및 골 생성을 할 수 있는 능력도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이러한 SHED를 포함한 치아치수유래 줄기세포는 일상적인 치과 시술에서 접근성이 뛰어나고(자연 탈락 유치 또는 사랑니·교정 발치 때 치아의 확보), 윤리적 문제가 없다는 점, 그리고 발생학적으로 외배엽과 중배엽에서 동시에 기원하여, 다양한 조직의 재생 치료에 적용 가능하다는 점 등으로 매력적인 줄기세포 공급원으로 각광받고 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치아치수유래 줄기세포치료제를 치과 임상에서 자가 치수재생용으로 활용하고 있는 일본의 현 상황을 소개하고자 한다. 치아의 치수유래 줄기세포 중 유치에서 추출한 S
나는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편이다. 이 평범하고 안온한 삶 속에서 조금씩은 특별한 일들이 일어나야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 생기지 않겠는가? 내 삶 속의 새로운 도전이란 퇴사한 뒤의 유럽 여행, 스카이다이빙, 그리고 패러글라이딩 등과 같은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었다. 이러한 작은 재미를 누리는 와중 내 인생의 큰 틀을 바꾼 새로운 도전이 생겼다. 그것은 바로 대학원 진학. 학부생 때 시험이나 국시를 위해 동기들에게 내가 아는 지식을 알려주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그래서 잠깐 스치듯 생각했었던 대학원 진학의 꿈을 대학교 졸업쯤부터는 거의 잊고 살았었다. 대학교 동기들처럼 졸업과 동시에 취직하여 직장인의 평범한 삶을 살던 와중에 주위를 둘러보니, 내 주변 사람들은 전공에 맞는 직장에 취직하여 일하다 결혼하고 자식을 가지는 그런 따뜻하지만 평범해 보이는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 무렵의 나는 나의 직업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쌓고 싶다는 욕망이 생김과 동시에, 단조로운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어느 순간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 사업을 해볼까 하는 생각에 직장을 다니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했다. 디저트도 전문적으로 배우기 위해 퇴사를 고민하고 있을
<The New York Times>에 오랫동안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 “The Ethicist”가 있습니다. 현재 뉴욕대학교 철학과 교수인 윤리학자 콰매 앤터니 애피아가 맡은 이 칼럼은 독자가 보내는 윤리 관련 질문에 윤리학자가 답하는 방식으로 꾸려지고 있습니다. 치의신보에서 매월 1회 의료윤리 주제로 같은 형식 코너를 운영해 치과계 현안에서부터 치과 의료인이 겪는 고민까지 다뤄보려 합니다.<편집자주> 김준혁 치과의사·의료윤리학자 약력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졸, 동병원 소아치과 수련. 펜실베이니아대학교 의과대학 의료윤리 및 건강정책 교실 생명윤리 석사. 연세치대 치의학교육학교실 교수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2018), 역서 <의료인문학과 의학 교육>(2018) 등. 아마 이런 사안을 관심 가지고 추적하고 계시니 선생님도 최근 투명치과 1심 판결이 나왔음을 알고 계실 겁니다. 사기 및 업무상과실치상 무죄 판결이 나왔더군요. 판결이 이상한 것 아닌가요? 환자에게 그렇게 큰 금전 및 구강건강 상 손해를 끼쳤는데 이 모든 게 무죄로 판결되다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 건, 어떻게 보시는지요? 익명 이 사건에
십여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의료시스템을 갖고 있다고 자랑했던 한국, 이제 그동안 어찌어찌 덮고 끌고 왔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미국의 높은 의료비, 서유럽의 긴 대기 시간에 비해 저렴하고 빠른 진료가 가능했던 이면에는 국민, 의사, 공무원의 도덕적 해이를 틈탄 의료이용량 폭증, 비급여의 폭풍 성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아과 오픈런, 필수과 붕괴(응급 중증질환), 지역의료 붕괴가 현실로 나타나자 의료현장의 심각성에 다급해진 정부는 타개책으로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발표했다. 주지 하다시피 ▲의료 인력 확충 ▲지역의료 강화 ▲의료 사고 안전망 구축 ▲보상체계 공정성 제고다. 그럴 듯 해보이고 적절한 해법으로 보이나 디테일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느 하나 간단치 않은 정책을 해외 여행 비행기 시간에 쫓겨서 여행 준비물을 슈트케이스에 부랴부랴 쑤셔 넣는 것처럼 치밀하지도 정리되지도 않은 미봉책이다. 포퓰리즘에 취약한 국민 여론을 활용해 공교롭게도 총선을 앞두고 전격 공표했다. 지난 26년 동안 누적돼 왔던 정책 실패에 대한 한 가지 확실한 2000명 의대 증원 정책은 이 또한 얼마나 무책임한 짓인가?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세밀
병원에서 실습생들이 재잘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2005년 치위생사 첫 출근을 앞두고 긴장과 설렘으로 밤잠 설쳤던 때가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치위생사로 7년을 일한 뒤 상담실장, 총괄실장을 거쳐 고객 커뮤니케이션을 책임지는 고객관리부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커리어의 절반이 훨씬 넘는 기간을 고객과 함께 했습니다. 고충도 있었지만 보람된 기억이 많은 걸 보면 이 일이 천직인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저는 병원 매출을 늘리는 공을 인정받아 현재 위치에 오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매출만 따졌다면 아주 평범한 상담실장에 그쳤을 겁니다. 하지만 제 스타일은 뚜렷했어요. 저는 진료 시간이 딜레이 될 정도로 상담 시간도 길었고 스몰토크가 많은 편이었어요. 고객들이 살뜰히 챙겨준다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여기에 더해 우리 병원 치료에 확신을 갖게 된 고객들이 늘면서 소개 고객도 함께 늘어났습니다. “만족스러운 진료를 경험한 고객의 입보다 강력한 마케팅은 없다”라는 격언에 비춰보면 ‘진짜 마케팅’을 해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울러 당장의 매출에 연연하지 않는 병원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짐작해봅니다. 대표원장님이 고객을 대하는 가치관과 신념,
정부의 갑작스런 내년 의대정원 2000명 증원 발표에 현재 의료계는 크게 술렁이고 있다. 사실 의대정원을 늘리는 문제는 꽤 오래전부터 얘기되어 왔던 것이고, 이미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의 연구결과로도 그 당위성이 확인된 바 있다. 의사들의 입장 역시 의사 증원의 필요성에 이견은 없었으나, 이렇게 단 1년만에 현재 배출되고 있는 3000여명 졸업생의 67%에 달하는 2000명을 증원한다는 것이 그 규모나 시기에 있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기에 그 충격이 더한 것 같다. 정부의 이러한 파격적인 결정은 현 정권의 탄생에 의사들의 지지가 강했었다는 점에서 의사들에게는 또 다른 배신감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특히 현재 약간의 버블이기도 한 의대로의 인재 쏠림 상황에서 그 어느때 보다 힘들게 의대를 들어간 재학생들 및 전공의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사안이기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당장 4월에 총선을 앞두고 있는 여당에게도 정부의 이러한 결정에 이래저래 득실 계산은 했겠지만, 지지층의 표를 많이 잃을 수도 있다는 우려로 상당한 부담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부담스럽고, 충격적인 결정의 배경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현재 국민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