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첫 마음 얼마 전, 산에 난 오솔길을 걷고 있을 때 예쁜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왔노라며 한 할아버지가 제게 다가와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왜 수도자로 살아가느냐고, 부모님들이 마음 아파하시겠다며 뭐가 그리 좋아 편리한 세상을 등지고 힘든 길을 택해 살아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제 발걸음마다에 바스락 소리를 내며 함께 걷고 있던 낙엽도 할아버지와 같은 질문을 하는 듯 들립니다. 바스락 바스락…. 한해의 끝이 다가오고 다른 한해를 맞이할 때면 왠지 모를 숙연함에 저 자신을 삶의 애착에서 내려놓게 합니다. 그리고는 이 길을 걷기 시작할 때의 첫 마음을 되돌아봅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선택한 수도자의 길, 13년 전 내 삶의 전부를 던지듯 고향을 떠나 수녀원으로 입회를 하던 그 날이 떠오릅니다. 작은 시골마을에 가톨릭 신자는 제가 처음인지라 수도원이 어떤 곳인지 몰랐던 마을 이장님은 방송으로 기도학교에 입학하러 아침에 떠나니 인사를 나눌 분은 마을회관으로 나오라는 방송에 저는 웃었습니다. 집을 나서기 직전까지 등을 돌리고 계시던 아버지는 읍내까지 택시타고 가라며 오천
종|교|칼|럼|삶 김수영 요한나 수녀가만히 있을 줄 알기 아시안 게임에서 박태환 선수가 참으로 신나게 수영을 잘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한 것도 눈에 보였고 예전에도 잘했던 모습이 슬럼프를 지나서 더 잘하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듯해서 보는 사람들도 즐겁고 좋았습니다. 운동하면서 힘든 순간을 지나 수영이 즐거워 즐기면서 하는 모습 같아 나타난 결과에 다들 더욱 만족한 듯합니다. 이렇게 우리 국민들에게 짧은 순간이나마 시원하고 통쾌한 모습을 보여 주어 기뻤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를 할 때는 순서가 있습니다. 만약 수영을 하고자 한다면 먼저 물에 들어가야 합니다. 물에 들어간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물에서 뜰 줄을 알아야 하겠지요. 물에 빠질까 걱정, 귀에 물이 들어갈 까봐 걱정 등등 온갖 걱정은 다 내려놓고 힘을 빼야 물에 뜹니다. 물에 빠진 사람들은 패닉에 빠져 몸에 힘을 주고 물을 차니까 빠져 죽게 되지요. 어디 다른 곳에 가지 않아도 물에 떠 있기만 해도 첫 연습은 됩니다. 이렇게 물과 친해지고 물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게 되면 어디를 갈 시도를 해 보면 됩니다. 자유형도 배영도 원하는 것을 배워 원하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먼저, 물꼬를 틀까요? 밤농사를 짓는 한 수녀님의 이모가 첫 수확을 보내주셨습니다. 저희만 먹기는 아깝지요. 늘 우리에게 관심을 보여주시는 이웃집 자매님, 어려운 중에도 성실하고 기쁘게 생활하시는 분식집 부부, 꼬마들의 도서실이자 동네의 사랑방 구실을 톡톡히 해내는 문화관 식구들, 느리고 작고 불편한 행복을 실제로 생활하면서 삶으로 전파하는 ‘느작불’ 센터의 언니, 가까이 사는 수도원의 형제들… 식구 수를 염두에 두며 봉지마다 담노라니 넉넉한 농부의 손이 보내주신 두 자루 가득한 밤도 어느새 동이 납니다. 오랜 만에 나눌 것이 있다는 기쁨에 신이 나서 동네를 한 바퀴 돕니다. 다음날, 분식집 앞에서 만난 자매님은 우리에게 순대를 사주고, 분식집 형제님은 김밥을 한 줄 더 얹어 주십니다. ‘느작불’ 언니는 감기 조심하라고 은행잎으로 염색한 회색 목도리와 함께 집에서 키운 수세미를 보내주셨습니다. 효소를 담아 먹으면 겨울 내내 기침 감기는 뚝! 이라고요. 효소가 잘 숙성하면 한 병 보내드려야겠다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한 일은 없는데, 있는 것을 정리하고, 나누고, 받고, 쓰고…
종|교|칼|럼|삶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돌 이야기 이곳 페로에 제도의 유일한 성당, 그 둘레에 쳐진 나무 담이 20여년의 비바람에 잘 견디어내고는 이젠 생명의 끝에 달하여 썩어들었습니다. 해마다 페인트칠을 해야하는 경비를 들이기 보다는 이젠 아예 돌담으로 쌓자는 의견이 많아 상상 외의 엄청난 경비에도 불구하고 올 여름부터 시멘트와 모래, 돌들이 수녀원과 성당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곳 집들의 담들과 대문들은 그리 높지않습니다. 겨우 허리높이 만큼이고 문도 열쇠로 잠그는 게 아니고 모든 이가 안 밖에서 열 수 있는 아주 간단한 장치이기에 실은 장식용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면서 모든 집들과 정원들을 아주 잘 감상할 수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의 담을 모두 잘라 걷어치운 성당은 이젠 문을 열고 닫을 필요도 없이 자신의 겉 모습 그대로를 지나가는 이들에게 내보여줍니다. 참으로 시원하고, 편하고, 자유스러워 보입니다. 시간당 지불해야하는 인건비가 엄청나기에 70세를 넘으신 아저씨의 견적이 이 공사를 하도록 뽑혔습니다. 당신 말씀
종|교|칼|럼|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사랑이야기 소와 사자가 있었습니다.둘은 죽도록 사랑했습니다.둘은 혼인해 살게 되었습니다.둘은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습니다.소는 육식을 하는 사자에게최선을 다해서 맛있는 풀을 날마다 사자에게 대접했습니다.사자는 싫었지만 참았습니다.사자도 최선을 다해서초식을 하는 소에게 날마다 맛있는 살코기를 대접했습니다.소도 괴로웠지만 참았습니다.그러나 소와 사자는 끝내 헤어지고 맙니다.헤어지면서 서로에게 하는 말,“난 최선을 다 했어.” 어떤 책에서 읽은 소와 사자의 사랑 이야기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둠으로 제 삶이 무질서해질 때, 마음을 다독여 주는 등대 불입니다. 멈추어 서서 나 아닌 누군가를 바라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소가 소의 눈으로만 상대방을 보고, 사자가 사자의 눈으로만 상대방을 보면 그들의 세상은 혼자서 사는 무인도 일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살아가지만 아무도 함께 할 수 없는 소의 세상, 사자의 세상일 뿐입니다. 나의 기준, 내가 중심이 되어 생각하는 최선,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만큼 내가 원하는 때에 행하는 최선, 상대의 필요와
종|교|칼|럼| 삶 김수영 요한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나’라서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모 프로그램에서 손모양을 종이에 그린 모습으로 그 사람의 성격을 테스트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심리학자는 성격 테스트를 위해 선발된 대학생들에게 흰 종이를 나누어 주어 그 종이에 왼손을 올리고 펜으로 손가락 모양 그대로 왼손의 모습을 대고 그리게 했습니다. 학생들은 그렇게 그린 손 모양으로 성격을 알 수 있다는 것에 의아해 하면서도 손을 그려서 심리학자에게 제출했습니다. 심리학자는 손이 그려진 종이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 한참을 있다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각자에게 성격분석을 한 종이를 나누어 주고 읽게 했습니다. 자기의 성격을 본 학생들은 하나 같이 ‘완전 내 모습이네…’ ‘신기하다, 어떻게 손 모양만 가지고 사람의 성격이 그대로 나오지..’ 등등의 감탄사를 연발하며 읽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학생들의 성격 분석지의 내용이 똑같았습니다. 내용은 적당히 뭐라고 적혀 있었는가 하면 ‘나는 원래 마음이 따뜻하고 정이 많은 편이다. 성격이 활발하고 외향적으로 보이는 경우가 있지만 실은 내향적
종|교|칼|럼|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다시 모험에 나서면서 서울 명륜동에 있는 저희 수녀원에는 한 달에 한 번 귀한 손님들이 찾아오십니다. 함께 기도하고 자기 삶을 나누면서 오늘날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생활한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길을 함께 찾아가는 도반들의 모임인데, 지난 토요일에 열아홉 분이 이 모험을 새로 시작했습니다. 왜 모험이냐고요? 우선, 이 바쁜 사회에서 한 달에 한 번 한나절을 정기적으로, 꾸준하게 시간을 따로 떼어내려는 결심 자체가 쉽지 않은 결단임을 독자들은 모두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일이나 취미 등, 공동 관심사가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을 열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 역시 모험입니다. 나를 연다는 것은 바로 ‘나’의 핵심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무척이나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나의 약함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보완 받는 것을 허용하는 과정에서 어쩌면 다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두려워 웅크리고만 있으면 만남은, 만남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성장은 애초에 가능성부터 없어지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번 첫 모임
종|교|칼|럼|삶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가을이면 제가 일하는 유치원의 3주간의 여름 방학이 끝나고 개학을 한 뒤 두 번째 주간은 매일 안개비속에 살았습니다. 다른 나라에선 물난리에 많은 피해를 입는 동안 이곳 페로에 제도의 사람들은 계속 안개속을 헤메이며 가까이에 있는 섬이 안개 속에 사라져버렸다고, 파란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고 투덜거렸습니다. 이런한 몽롱함 속의 일주일이 지나고 나니 비바람이 조금씩 불면서 안개가 겉히고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저도 그동안 나가지 못했던 아침 달리기를 일요일 아침 6시 30분 정도에 일어나 나갔습니다. 이곳의 주말의 아침은 사람하나 보이지 않고 아주 조용합니다. 밤 늦게까지 놀다가 아침 늦잠을 즐기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저는 이 틈을 아주 잘 이용하여 한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좋은 기회를 얻은 셈이지요. 주간에는 가까운 공원의 몇 바퀴를 돌아 30분 정도를 뛰고, 주말에는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아 45분 정도를 가볍게 뛰다 돌아오면 몸과 마음, 온 영혼이 잠에서 깨어나 맑아지니 아침 기도 전의 준비 운동으로 참 좋습니다. 8월 중순이 넘어 말
종|교|칼|럼| 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온전히 존재하는 나 몇 칠전에 부모님이 계신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1년에 한번, 14일 동안 수도 공동체를 떠나 가족들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허락한 규정에 따라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 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도 저를 가장 반기시는 어머님은 여전히 쓸쓸한 미소로 휠체어에 앉아 계셨습니다. 뇌졸중으로 쓰러져 왼쪽 팔, 다리가 마비되어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생활하신지 벌써 9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갑작스레 찾아온 신체적 변화를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으셨던지 자주 눈물을 흘리셨고, 우울증에 시달리며 당신을 자책하셨습니다. 자식들의 어설픈 위로와 간호를 귀찮아 하셨고, 좋아하시던 텔레비전도, 드시는 것도 즐겁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손자들의 방문에도 기운을 내지 못하시고, 친구 분들과의 대화도 싫다며 거절하셨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슬프고, 어떤 것에도 기쁨을 발견하지 못하시는 듯 어머니는 외로워 보였습니다. 종교생활에 대한 저의 권유도 자신 없다며 단호하게 거절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그러하시듯, 저의 어머님도 자녀에게 베푸는 조건 없는 사랑을 행
종|교|칼|럼|삶 김수영 요한나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너머의 것 무신론자였던 한 과학자와 한 신학자가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신학자인 친구가 과학자 친구의 집에 놀러갔습니다. 그 과학자는 천문 과학자였는데 별을 관찰할 수 있는 커다란 망원경이 집에 있었습니다. 밤하늘의 아름다운 별들을 망원경으로 감상하며 신학자는 감탄의 한마디를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은 참으로 위대하시구나!” 그러자 과학자 친구가 “우주는 저절로 생겨난 것이지 누가 만든 것이 아니네.” 하고 쏘아주었습니다. 신학자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어 달 후 과학자 친구가 신학자 친구의 집에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것은 정교하게 나무로 만든 태양계였습니다. 서로간의 거리도 정확했고 위치도 정확했고 행성들도 아름답게 조각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과학자가 “누가 이렇게 잘 만든 거야? 누가 만든거지?” 하고 감탄을 하며 묻자 신학자 친구가 대꾸해 주었습니다. “누가 만들었다고 그래? 그냥 저절로 생겨난 거지!” 과학자 친구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종교칼럼 삶 삶의 꽃꽂이를 하면서 홍현정 사비나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누군가 해 둔 꽃꽂이를 봅니다. 돌과 나무껍질, 푸른 가지에다 꽃 몇 송이를 적당히 놔둔 것을 꽃꽂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바라봐도 돌은 돌의 자리에, 나무껍질은 또 그 자리에, 모든 것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참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그 사이 꽃 세 송이는, 마치 우연처럼, 태고부터 그렇게 있어왔다는 듯 천연덕스럽기조차 합니다. 서로 다른 것들이 그냥 제 자리에 존재하는데,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냅니다. 아름다움이신 하느님이 살짝 모습을 드러내 주시는 순간입니다. 손으로 하는 일에 도통 재주가 없는 저로서는 일상의 작은 것들로 이런 마술을 부리는 사람들이 마냥 경탄스럽기만 합니다. 일상의 작은 것들..., 잠에서 깨어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아이들을 깨우고, 아침을 준비하고, 청소하고, 서둘러 일터나 학교로 나가고, 해가 저물어 다시 모이고, 씻고 잠자리에 드는 것들. 그 사이에 있을 수 있는 작은 토닥거림, 긴장, 행복, 고민, 만족감, 허전함, 실패감... 이 작은 것들로 아름다움을,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