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삶 이연희 플로렌스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꿈 이야기 올 여름 휴가때엔 섬을 떠나는 일이 없어 오랜만에 섬에서 여름이면 하고팠던 꿈들이 마구 들고 일어났습니다. 무엇보다도 캄캄한 어둠이 없는 이곳의 여름에 밤 도보여행을 하면서 해지고 해뜨는 장면을 보고픈 꿈이 제일 컸지요. 6월 21일 하지에 이곳의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서 이 아름다움을 즐감하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거든요. 지난 성령강림주일에 우리 성당에서 미사때 연주를 해준 루터교 신자 부부와 수녀원에서 식사를 하다가 그 날 새벽에 덴마크의 전통에 따라 해를 보러 어디론가 간다고 하는 소리에 저의 귀가 번쩍뜨였습니다. 하지날에 이루고픈 저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 되시는 분은 산이 아니더라도 배를 타고 보러 갈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이에 모두의 귀가 솔깃했기에 작은 배를 가지고 있는 이 부부는 6월 21일을 약속하며 떠났습니다. 전 일찌감치 밤을 새는 여행을 감안하여 6월 22일을 휴가신청을 해놓았지요. 나중에 들려오는 소리에 의하면 변화무쌍한 이곳의 날씨에 따라 21일이 될 지 22일, 23일이 될 지 모
종|교|칼|럼| 삶 노석순 데레사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내 마음에 터인 물길 강물을 따라 걸었습니다. 굽이 돌아 흐르는 강을 따라 걸었습니다. 주먹밥으로 점심을 먹고 비옷을 입고선 오후 내내 여주에서 시작해 남쪽으로 강 길을 따라 난 길을 걸었습니다. 같은 뜻을 지닌 이들이 만나 동무가 되고 함께 걷고 있는 우리들처럼, 강물도 논두렁 밭두렁을 만나 정겨운 듯 출렁대고 작은 산에서 내려온 계곡 물을 맞아들여 굽이쳐 흐릅니다. 그들도 수백 수천 년을 함께한 동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처음에는 함께 걷던 동무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마주보며 웃었지만, 걸음을 더해 갈수록 조용해 졌습니다. 강물의 소리를 듣고 싶었고 강물에 몸을 기댄 뭇 생명들의 숨결이 들려왔기 때문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그 생명의 소리들은 내 양심을 통해 들려오는 그들의 숨결이었습니다. 강물을 따라 계속 걸었습니다. 거센 빗줄기를 맞으며 흙탕물에 미끄러져 넘어져도 물집이 잡혀 발걸음이 무거워 몸이 지쳐가도 답답함에서 오는 무게 보다는 가벼웠고, 미안한 마음이 누르는 한숨 섞긴 어둠보단 밝았습니다. 안개 낀 산자락과 굽이 흐르는 강물이,
종|교|칼|럼| 삶 밥과 반찬 지난 겨울, 한 식당에서 얼큰한 동태찌개를 먹은 적이 있습니다. 수녀들이 그런 음식점을 가는 것이 좀 이상했지만 외출이 길어지고 밥 때가 지나 배가 고파서 가볍게 먹을 곳을 찾는데 쉽게 찾을 수가 없어 들어간 곳이었습니다. 많이 추워서 그런지 따뜻한 동태찌개가 얼마나 맛이 있던지요. 저는 부산이 고향인데 어릴 때 어머니가 자갈치에서 동태를 사와 끓여 주시던 그런 맛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렇게 동태찌개 한 숟갈에 행복해 하면서 먹고 있는데 옆자리의 사람들이 밥을 반 이상이나 남기고 나가는 것을 보고 참 안타까웠습니다. 다 버려야 되는 것도 문제이고 또 춥고 떨리는 겨울날, 이 맛있는 반찬과 따뜻한 국 앞에서 얼마나 큰 유혹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그렇게 몸매를 유지하려고 애쓰며 세상 기준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도 안타까웠습니다. 밥을 남기지 말라는 어렸을 때부터의 부모님 가르침이 있어서 밥을 남기게 되면 죄스런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수녀원은 뷔페식으로 음식을 떠가서 먹으니까 남기지 않을 수 있는데 식당은 그것이 좀 곤란합니다. ‘밥이 보약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이들이나 자녀들이나 어른들이라 할지라도 군것질을 좋
약함의 힘 함께 사는 젊은 수녀님들의 부모님들을 공동체에 초대했습니다. 수녀님들이 젊다는 것은 그 부모님들도 사랑하는 딸들을 떠나보낸 지 3~4년 된, 아직은 이별에 아파하는 분들이라는 말이지요. 사실 수녀원에서 한나절을 함께 지내자고 초대한 것도 그 아픔을 좀 달래드리려는 의도였고요. 아버님 두 분이 ‘배신자’를 듀엣으로 부르셨는데, “배신자여, 배신자여, 사랑의 배신자여-”라는 부분에 이르는 순간 약속이나 한듯 두 딸들을 가리키시는 것이 아닙니까! 실컷 웃었지만 마음 한켠이 아려오는 것을 느끼며 저희 아버지 생각이 났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는 ‘왕’과 같았습니다. 집안의 모든 결정은 아버지에게서 나오고, 엄마를 비롯한 나머지는 모두 그 명령에 따르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추석, 성묘를 다녀오던 아버지가 멈추라고 신호를 보내는데 그냥 지나치던 택시를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정도로 아버지는 절대적인 존재였던 거지요. 그런데 엄마가 돌아가신 다음에야 아버지의 그 ‘큰 목소리’를 지탱한 것은 늘 조용하고 순종적이던 엄마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에서 ‘슬픔에 못 이기는 한 사람’으로 내려선 아버지를 보면서 사춘기 소녀는 다정한 엄
종|교|칼|럼| 삶 양들의 섬에서 세계 지도책의 북유럽쪽의 아틀란틱해협의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의 중간 지점에 눈꼽만한 점으로 밖에 표시되지 않은 페로스제도 또는 페로에 제도 라고 씌여진 나라에 발을 디딘지 올해 4월에 7년이 되었습니다. 매년 경찰서에 가서 거주 연장신청을 하러 다니며 끈질기게(?) 살아 온 덕분에 올해는 영주 거주권을 얻었습니다. 연 초마다 서류를 챙겨 경찰서를 드나들 일이 없어져서 얼마나 기쁜지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아 본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9년 전에 종신토록 하느님의 사람으로 살겠노라고 어마어마한 서원을 하면서 이곳 페로에 제도로 파견을 받았지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하는 나의 나라를 떠나 그야말로 아무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는 미지의 땅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이 섬은 영어권에 더 가깝지만 우리 수녀원의 행정 구역상 불어권에 속하여 맨 먼저 브르셀에 있는 수녀원에 도착하여 불어를 배운 지 1년 반만에 저를 기다리는 페로에 제도로 향했습니다. 자그마한 공항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전 어느 사막의 한복판에 도착한 줄 알았습니다. 드넓은 광야에 나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고, 땅은 무척이나
종|교|칼|럼| 삶 텃밭의 정직함 이른 봄에 거름을 넣어 텃밭을 일구었습니다. 수녀원 뒤에 자리한 뒷동산에서 부엽토를 끌어다가 음식물 찌꺼기와 골고루 섞은 다음 미생물로 발효를 시킨 거름도 넣었습니다. 조개껍질을 잘게 부수고, 한 길에 있는 한약방에 가서 약재를 다린 찌꺼기도 얻어다 섞었습니다. 돌맹이를 골라내고 삽질을 시작했습니다. 익숙한 일은 아니지만, 도와주는 이가 여럿이기에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봄 햇살 아래에서 고랑을 깊게 파고 이랑을 반듯하게 만들었습니다. 함께 하는 이들과의 웃음,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리고 정성을 넣었습니다. 씨앗을 심기 위해 고랑을 줄 세우고 씨앗을 뿌린 뒤 고운 흙으로 골고루 덮었습니다. 씨앗마다 간격이 달랐고, 어떤 것은 모종을 사와 심었습니다. 혹시 장갑을 낀 손이 둔해 모종을 다치게 할까봐 맨 손으로 옮겨 심었지요. 모종을 만지고 흙을 만질 때,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편안함은 바쁜 일상에서 오는 가쁜 숨을 고르게 해 주었고, 머리가 맑아져 활기를 되찾아 주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이 제게 주는 생명력이 기뻤습니다. 오이, 가지, 호박, 고추, 고구마, 토마토, 상추, 쑥갓, 아욱, 양상추… 떡잎을
종|교|칼|럼| 삶 뿌리의 삶 김수영 요한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수녀회에 처음 입회하게 되면 3~4년간은 수도원 밖을 나가지 않고 수도원 안에서 수도생활과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도생활을 배우고 집안일을 하면서 지내게 됩니다. 입회후 2년 정도 지나면 수도복을 입는 착복 예식을 통해 수련기가 시작되는데 이 시기는 오로지 수도원 안에서 세속 생활을 잊고 하느님과의 생활만을 배우는 시기입니다. 하지만 처음 입은 수도복이 어색하고, 바깥 생활과는 많이 다른 수도 생활이 낯설어 실수가 연발입니다. 지금은 여든이 넘으신 한 할머니 수녀님, 젊은 시절에는 병원 약사를 하시다가 은퇴를 하셨는데 그 후로도 바느질, 묵주 만들기, 농사일 등 많은 일들을 하고 계십니다. 겨울에 김장 담글 배추, 무, 고추 농사 또 호박, 당근 등 수녀원의 노는 땅들에 심은 농사는 수련자들의 도움으로 매년 해내셨지요. 일본 식민지 시대 때 경상도에서 태어나 일본 말을 배우고 자라신 우리 할머니 수녀님의 발음은 같은 경상도 사람도 해석해 내기 어려운 지라 안 그래도 실수가 많은 수련자들, 수녀님의 호통 소리에 우왕좌왕하다가 실수가 연발, 야단도
종교칼럼 삶 홍현정 사비나 수녀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종교칼럼 ‘삶’ 집필진이 교체됐습니다. 이번호부터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에 소속돼 활동중인 수녀님 4명(홍현정 사비나, 김수영 요한나, 노석순 데레사, 이연희 플로렌스수녀)이 매주 1회씩 원고를 집필합니다.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당부드립니다. 작음의 힘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아침부터 우울해 있었습니다. 그 ‘우울함’에 갇혀서 고개를 숙이고 걷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앞집 담 모서리, 돌벽과 아스팔트 그 사이 한 치 흙에 의지하여 피어있던 작고 여린 풀꽃이 눈에 들어온 것을 보면요. 깨알만큼 작지만 의젓하게 다섯 개 꽃잎을 다 갖추고, 태양을 향해 당당하게 핀... 그 꽃 이름이 무엇인지, 이름이나 있을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어머나!” 탄성과 함께 허리를 굽혀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가느다란 가지들에 연보라빛 꽃들이 사뿐히 올라앉아 제풀에 흔들거리는 모양을 가만히 들여다 보노라니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올라왔습니다. 이토록 작은 것이 이토록 완전하다는 감탄과 함께 이토록 아름다운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스스로의 삶을 향상시키며 요즘 사람들은 제대로 느긋하게 휴식을 위한 자기 시간을 가지지도 못한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요. 우리가 지금 이렇게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표면적으로는 먹고 살기 위하여, 가족을 부양하기 위하여, 어떤 목표를 성취하기 위하여 등등의 이유를 가지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자체가 각자 스스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태어나면서 어느 집안의 몇 대 손이라는 위치, 가족 관계에 있어서의 위치, 또 마을, 지역, 국가등이 정해지는 것이지만 이것도 결코 고정돼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관계들도 ‘나’라는 것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있고서야 세상이 필요하고 존재하는 것이지 나라는 것이 없다면 나머지는 있어서 무엇하겠습니까. 친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죽었을 때 슬퍼하는 이유도 결국 그 속에 자신의 삶에 대한 걱정과 근심이 서려 있는 까닭에 더 슬퍼지는 것이라 합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가만히 보면 겉으로야 내가 미미하고 힘도 없는 존재로 보이겠지만 모든 세상의 존재는‘나’라는 이 자체
종|교|칼|럼|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항상 할 수 있는 참선 항상 할 수 있는 참선지금 전국의 선원과 선방이 있는 각 사찰은 안거철을 보내고 있습니다. 안거란 원래, 옛 인도에서 우기인 여름철에 수행자들이 외출을 삼가하고 수행에만 몰두하던 데서 유래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의 여름 안거 외에도 음력 10월 보름 다음 날부터 다음 해 정월 보름날까지를 겨울 안거라고 하여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씩 앉아서 좌선한다는 것 자체가 육체적으로도 쉬운 일이 아니지만 오직 일대사를 해결하기 위한 염원으로만 모든 것을 극복해 나갑니다. 자기 마음 근본에 대해 깨치게 된다는 것은 오직 자기 자신만의 성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밝아짐으로써 모두를 더불어 밝힐 수 있는 공덕을 지니고 지혜를 깨닫게 되는 일이므로 이같은 노력은 결국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스님들은 가행정진을 통해 경우에 따라 일주일 이상을 잠을 자지 않는 정진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도님들은 스님들의 공부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안거철에 더욱 정성스런 공양을 올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소중한 시주물을 받아서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돌아가게 하려면 놓아라 남이 사는 거 보면 다 수월하게 사는 것 같은데 내가 사는 일은 잘 풀리지를 않는다고 힘이 빠져 있는 분들이 있다면 이것은 전부 마음의 조작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잘못되는 것도 마음이요, 잘되게 하는 것도 마음입니다. 빛은 가다가 어떤 물질에 가로 막히면 통과를 못하기도 하지만 마음은 은산철벽도 뚫을 수 있고 남의 마음과 한마음이 되어 같이 할 수도 있는 신묘한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이나 집식구 중의 누가 잘 안됐을 때 ‘우리의 근본은 본래 한마음이니까 그 한마음 근본에서만이 저 사람과 한마음이 되게 할 수 있다.’ 하고 내 마음이 그쪽으로 투입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내가 남편한테로 들어갈 수도 있고 남편이 아내한테로 들어올 수도 있고, 마음은 체가 없으니 만큼 마음으로 서로서로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빛보다도 더 빨리 연결이 됩니다. 나쁜 사람이 생기는 것도 모두가 이 마음의 조작입니다. 돈이 있어도 도둑질이 하고 싶어서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별 것도 아닌 일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러는 것도 그 사람 자체가 악하게 태어나서 그런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