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돈이 나를 따라오게 하려면 간혹 사람들이 찾아와서 하는 말이, 불교에서는 다 놓으라고 하는데 이 세상에 살면서 다 놓으라고 그러면 어떻게 살아나가란 말입니까 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럴 때면 “아니, 누가 다 놓고 빈털털이 거지가 돼서 살라고 했습니까? 열심히 하되 집착하는 마음을 놓고 하라는 거지요.” 그럽니다. 그러면 어떤 분은 “그렇다면 돈을 좀 잘 벌 수 있는 비결은 없습니까?” 하고 또 묻기도 합니다. 돈도 생명이 있고 모든 게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돈 하나도 그냥 있지 않고 움죽거리고 돌아갑니다. 그러니까 내가 돈을 악착같이 쫓아간다고 되는 게 아니라 나 자체에 자력과 광력과 통신력이 충만하니까 언제든지 내 마음을 넓게 쓰고 걱정이든 근심이든 내가 원하는 것이든 뭐든 내 근본에다 모든 걸 맡겨 놓으면서 마음을 둥글둥글하게 굴릴 수 있다면 돈도 슬그머니 나를 쫓아오게 됩니다. 내가 따라가면 자꾸 도망가고, 내가 같이 한마음이 돼 주면 돈도 따뜻한 데로 오게끔 돼 있거든요. 뭐든지 그렇습니다. 사람도 따뜻한 데로 고이지 않습니까? 내가 아내와 부부 사이를 맺었어도 무슨 말이든지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내 마음의 보물창고 신록이 우거진 이때 즈음 절에서는 가장 큰 행사를 치르게 됩니다. 바로 부처님 오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2500여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세상 만물에 불성이 있음을 깨치시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일러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성스러운 네 가지 진리인 사성제를 통하여 인생의 온갖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 괴로움을 멸하는 것, 멸하기 위한 실천 방법인 팔정도를 말씀하셨습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시한 여덟 가지 바른 길의 첫 번째가 정견(正見)입니다. 이 세상에서 물질을 보는 기준을 바르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나의 잣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눈으로 불성의 지혜로써 세상을 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음식을 먹을 때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무엇입니까. 아마 맛 있다는 것과 맛 없다는 것일 테지요. 버릇처럼 내뱉는 이 생각은 좋다와 싫다를 형성하게 되고 이것이 횟수를 거듭하고 다른 모든 것에도 습관적으로 좋다와 싫다를 붙이게 되니 점점 더 견고해진 그것은 결국 나의 집착이 됩니다. 내가 이 음식을 먹는 것이 그냥 너무 당연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空한 줄 모르는 데서 오는 괴로움 갑자기 따뜻해진 날씨 덕분인지 마주 보이는 앞산의 나무들에 새 초록의 잎이 무성해져 산이 훌쩍 높아진 듯이 보입니다. 갖가지 연초록의 향연은 감탄과 찬탄을 아무리 해도 모자랄만큼 아름답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것에 너무 취하는 마음이 보여 ‘모든 것 참으로 감사하구나.’ 하는 마음으로 돌려놓으며 담백한 눈으로 자연이 주는 기쁨을 다시 음미하였습니다. 어제는 선원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는 분이 찾아와서 따로 상담을 요청하기에 만났습니다. 그 분은 성당을 오래 다녔으며 근래에 불교를 만나 불교가 주는 또다른 폭넓음에 매료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동안 보이지 않다 갑자기 나타난 그이가 하는 말은 ‘너무 힘들었어요.’ 였습니다. 얘기인 즉슨 조카딸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 살던 시집 식구들이 열 몇 분이 갑자기 들이닥쳐 그분들 치성을 하느라고 너무 힘들었다고 합니다. 다만 몸이 힘들었던 게 아니라 그 시집 식구들이 자기와 견해가 너무 달라서 자기를 아주 이상하게 보는 것 같다는 말이었습니다. 게다가 남편이 요즘 돈을 좀 잘 버는데 시집
종|교|칼|럼| 삶 나를 미워하는 직장 상사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직장의 상사가 어느날부터 갑자기 자기를 미워하기 시작했다는 사연을 들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특별한 일도 없는데 사사건건 질책을 하는 바람에 이제는 직장을 그만 다니고 싶은 심정이라며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하고 어느 젊은이가 물어왔습니다. 매일 만나야 하는 상사가 자기에게 그런다면 참으로 직장 생활이 힘겨워질 것입니다. 그런데 불자라면 모름지기 내게 다가오는 경계를 공부의 재료로 삼아야 합니다. ‘나를 이끄는 내 근본에서 나를 공부시키려고, 나를 정말로 알게 하려고 이러는구나.’하고 말입니다. 합당하지도 않은 일로 야단을 맞거나 질책을 듣는 그런 상황을 타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때마다 나를 위해, 나를 마음공부 시키려고 경책을 가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거꾸로 그 상사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이것이 무슨 억지스러운 소리냐구요? 생각 한번 돌리면 고(苦)는 고가 아닙니다. 번뇌도 번뇌가 아니구요. 본인이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그 상사의 마음도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마음은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내가 사랑하는 나의 삶이 되려면 가끔은 추워지는 날도 있지만 완연한 봄입니다. 진달래며 개나리가 함께 어우러져서 핀 걸 보면 ‘너희는 어쩌면 그렇게 예쁜 색깔로 피어나는지!’ 하는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옵니다. 자연이 주는 기쁨은 우리를 보다 더 자연스럽게 만들고 마음을 쉬게 만듭니다. 아무것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고 어떤 것을 내질러도 그냥 받아줄 뿐인 자연이라는 대상에 우리는 무한한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인지 휴일이면 근처 관악산과 삼성산으로 향하는 인파가 어마어마합니다. 예전에는 그냥 아무 것이나 편한 옷을 입고 등산들을 간 것 같은데 요즘은 모두들 제대로 된 등산복들을 챙겨 입고 지팡이와 작은 배낭 등도 꼭 갖추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 전문화가 잘 되어 있습니다. 절에 다니는 신도들도 예전에는 어떤 일이든지 자기가 들고 온 괴로움이나 아픔을 하소연하고 그것을 그냥 들어주기만 하여도 편안해져서 돌아가곤 했는데 요즘은 좀 더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현실의 어떤 부분을 알지 못하면 상담을 하러 온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내 의식을 다이어트하자 아름다운 몸 만들기에 많은 사람들이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는 일이 대세인 만큼 다이어트라는 말은 생활 용어가 되어버렸습니다. 어디선가 ‘다이어트는 본래 내일부터 하는 거’라는 말을 주워들었습니다. 현대인들이 반드시 신경써야할 항목에 신체 단련이나 체중조절이 들어가 있긴 하지만 실천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라는 반증을 담고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늘 먹어오던 다양한 먹을 거리들을 가려서 채식과 소식을 하게 되면 사람은 어딘가 모르게 고요해집니다. 그건 반드시 못 먹어서 힘이 없어져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확실히 고기를 신나게 먹고 마시는 식생활을 할 때보다는 마음이 단아해지고 담담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이어트라는 현실의 분명한 목표를 내 의지로써 이루고자 할 때 내 삶의 길은 명확합니다. 내 몸을 부지런히 단련하는 것에는 선명한 목적과 도달해야 할 미래상이 내 머리에 분명히 그려져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 영혼은 어떻게 변하기를 원하는지요. 내 마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나 관심을 가졌으며 지금보다 좀더 변화하기 위한 심성 바꾸기 프로젝트를 실행해 본 적은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 <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내가 행복해지려면 어느 때인가부터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광고의 사분지 일 정도는 무슨 광고를 하는 것인지도 모른 채 지나가 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나 핸드폰 광고같이 나로서는 알 수도 없는 기능을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걸 보면 아주 시대에 뒤처진 사람이 되었다는 걸 느낍니다. 제가 보고 듣기로 그런 전자제품들의 주요 선전 분야 중 하나는 이 제품 하나로 거의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점점 더 편리해지고 그래서 점점 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없어지고 그러다보니 다양한 접촉의 기회 자체를 상실해가게 하는 것이 발전의 한 단면인가 봅니다. 시대가 발달함에 생활 여건은 좋아졌지만, 우리는 만족을 느끼기보다는 모자라는 것을 채워가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만이 열심히 사는 것인 양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발전해가는 사회 속에서 자기 마음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게 되고 내려놓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자라는 것을 채워가는 것이 거의 대부분 물질적인 부분, 보이는 부분에만 치중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에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내 무의식을 관장하는 나의 근본 나이가 들면서 우리의 몸은 하루하루가 달라져서 생전에 안 아프던 무릎이 아프다느니 한 번도 아파본 적이 없는 잇몸이 아프다느니 장소도 다양하게 이런저런 노화에 따른 제반 증상들을 느끼게 됩니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기력이 예전처럼 활기차지 않은 상태에서 운동도 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내 몸에서 더 쉽게 벌어지지요. 그래서 우리는 비싼 보험도 들어놓고 나라에서 받으라는 건강검진도 꼬박꼬박 받고 텔레비전이나 각종 정보를 통한 건강 상식에도 귀를 기울입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다양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느니만큼 자신의 병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로 미리 막음을 하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어쩌다 보면 건강염려증 환자가 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녁 나절에 약간 시간이 지난 돼지고기를 먹었더랍니다. 괜찮을까 하는 염려가 마음 깊은 곳에는 있었지만 ‘버리기는 아깝다’하는 생각이 좀더 우위에 있어서 그냥 먹었더랍니다. 그런데 먹고나서 갑자기 속이 메슥거리고 식은 땀이 나더니만 이거 탈이 났구나 하는 생각이 온 몸을 휘감더랍니다. 상한
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현실의 고통은 스승의 가르침 ‘현실의 고통은 나를 성장시키려는 내면의 가르침이다." 저희 선원에서 나오는 달력의 3월 부분에 실린 대행 큰스님의 법어입니다. 고통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내게 닥친 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런 걸로 인해서 오는 아픔에 우리는 고통, 불안정, 불행 등등의 이름을 붙여놓았습니다. 그 대신 내가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고 그냥 그대로 인정이 되는 일에 대해서는 기쁨 안정 행복이라는 이름표를 달아놓지요. 그렇게 각기 다른 이름으로 내게 다가오는 모든 일에 우리는 이미 이름표를 붙여놓고 있습니다. 기쁨이 불행이 될 수도 있고 불행이 다행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세상사를 수없이 겪어봤으면서도 우선 우리 머리에 떠오르는 걸로 성격을 규정지우는 습관을 대부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각기 다른 이름을 나누어 붙여 놓다보니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들은 다 고통이 되어 내게 붙어 다니고 나는 내가 받아들이고 싶은 일만 받아들임으로써 그런 데서 기쁨을 느끼려고 합니다. 어떤 일이 내게 닥쳤을 때 그 일이 내게 좋은 일이다 나쁜 일이다 하
종|교|칼|럼|삶 나는 모두를 위해 모두는 나를 위해 안거를 시작하는 여름과 겨울, 두 번의 결제철에 스님들은 여러 선원과 사찰에서 집중적인 수행을 하게 됩니다. 이같이 참선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을 불교에서는 수좌(首座)라고 부릅니다. 얼마전 석달간의 동안거(冬安居)를 끝내고 만행(萬行)을 하는 수좌 스님 한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철 공부하면서 한결 더 확고해진, 그러나 성품은 더 유연해진 스님과 오랜만에 즐거운 담소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예전의 스님은 언제 어디서나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려는 바르고 꼿꼿한 모습에서부터 수좌다운 면모를 제대로 풍기는 그런 멋진 스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선방에서 몇 철을 지내고 이번에 만난 스님은 여전히 그런 부분에서 확고한 수행자상을 제시하면서도 내면의 흐름은 훨씬 더 부드럽고 유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공부가 점점 더 익어가시기 때문이겠지요. 스님은 다음에는 어디 토굴을 하나 구해 혼자서 공부해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제방의 선원 또한 대중이 함께 하는 공간이니 아무리 수행 중인 스님들이라고 하지만 단체 생활에서 지켜야할 일 또는 사람이 살면서 벌어질 수 있는 일들은 어디를 가
종|교|칼|럼| 삶 좋은 것을 내려놓는 마음 불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내가 곧 부처인 줄을 아는 것, 즉 내 주장자를 발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 주장자를 발견하기 위한 수행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은 ‘놓음’입니다. 방하착(放下着)이라고도 하는 이 놓음은 내것이다, 내가 옳다, 나다 하는 ‘나’가 있음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모든 집착과 애욕의 마음들을 내려놓으라는 것이지 모든 걸 놓고 아무것도 없이, 멍하니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몸은 부지런히 최선을 다해 뛰되 그 마음에는 붙이는 것이 없는 ‘놓음’이야말로 진정한 지혜를 샘솟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그 놓음을 위해서 염불 수행을 하기도 하고 절 수행을 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선원에서는 관법 수행을 통해 이 놓음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지켜보면서 그 마음에서 떠오르는 말과 감정들을 그것이 나오기 이전 자리, 즉 자기의 근본인 참마음의 자리에 다시 되돌려 놓는 것을 수행의 모태로 삼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의 근본 참마음 불성자리에서 나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며 그것이 세상의 다인양 살다보니 물질적인 부분, 보이는 부분에만 치중하고 나머지 반을 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