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칼|럼| 삶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나를 성장시키는 재료 오늘은 오랜 만에 서산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았습니다. 저희 선원은 도심에 있는지라 건물들 사이로 뉘엿뉘엿 스러져 가는 석양을 어쩌다 한번 흘깃 볼 수 있기는 해도 제대로 해가 지는 광경을 보기란 구조적으로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그래도 동쪽으로는 관악산과 삼성산이 있어 가끔은 산위에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절로 아! 하는 짧은 찬탄이 나옵니다. 사람들은 출가자의 모습에서 바람처럼 물처럼 살아가는 초연함과 인생을 관조하는 여유 이런 것을 주로 떠올립니다. 사람들에게 주로 듣는 말이 “ 스님들이 뭐하시느라 바쁘신지요?” 하는 물음과 병원에 갔을 때 꼭 듣게 되는 “스님들도 아프신지요?” 입니다. 아마도 그런 초연함이나 여유로움을 출가자에 대한 고정 이미지로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겠지요. 저희 선원은 도심 속의 사찰이다 보니 관리해야할 건물은 크고 오가시는 분들은 많으며 진행해 가야할 사업도 날로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정기적인 행사들은 차치하고라도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오늘 좀 바빠서요.” 하는 말이 인사
종|교|칼|럼| 더불어 길을 걷는 사람 불교방송에서 하는 어느 토크쇼에 산악인 엄홍길씨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1988년 에베레스트 등반을 시작으로 지난 23년간, 세계 최초로 유일하게 16좌를 다 오르신 분이지요. 그 분이 하시는 말씀 중에, 산에 올라가다 보면 산이 나를 허락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등정에 성공하지만 산이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느낌이 분명하게 오는 때는 아무리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도 절대로 그 산행을 강행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모르긴 해도 지난 산행을 통해 자신의 신체적인 손상과 함께 얼마나 큰 고초를 겪으면서 산을 올랐을까요. 그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 분은 고산 등정의 달인이 아니라 삶의 달인이시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야할 곳과 가지 않아야 할 곳, 해야할 일과 해서는 안되는 일을 자기의 내면 깊은 곳에서 떠오르는 지혜에 의거하여 그 소리에 순응하여 길을 걷다 보니 자연히 내게도 해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이익이 되게 할 수 있더라 하는 걸 터득한 삶이라면 삶의 달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고나 등정 실패로 이어지는 힘든 순간들을
종|교|칼|럼|삶 부처의 길 음력 12월 8일은 불교의 사대 명절 중 하나인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날을 기념한 성도재일(成道齋日)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이란 초월적 존재인 어떤 절대자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인간이 겪는 고통을 맛보면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수행하는 체험적인 믿음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불교가 다른 종교와 가장 구별되는 점이 바로 이 부분일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6년간의 고행을 한 끝에 가장 밝고 위없는 진리를 깨쳐 누구나 다 그렇게 될 수 있음을 일러주셨으니 진리를 깨달으신 분과 그분의 가르침, 그 가르침을 실천하고 전파하는 수행자들을 일러 불교에서는 삼보(三寶)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지금으로부터 2500여년 전 인도의 카필라라고 하는 작은 성의 왕자로 태어났습니다. 왕자로서 부러울 것이 없는 환경에서 살아온 부처님는 12세 때 농경제에 참석하면서 거대한 의문과 함께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농경제에 참석한 농민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12세의 소년은 왕궁의 안락함이 농민들의 고통에 기반하고 있었음을 알게 됩니다. 또한 농민들의 생활은 밭을 가는 소의 고통에 근거하여 있었
종|교|칼|럼|삶 가장 안전한 자녀교육법 얼마 전 어느 학부모가 찾아와서 상담을 하게 되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자꾸 배가 아프다고 학교를 안 가려고 하더랍니다. 처음엔 좀 전에 장염을 앓은 적이 있기 때문에 아직 그 후유증이 있나 싶어 학교를 안 보냈는데 배가 아프다가도 학교에 가지 마라고 허락하고 나면 애가 멀쩡해지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학교를 가기 싫은 뭔가가 있구나 싶어 애한테 캐어 물어도 절대 이야기를 안하더랍니다. 그래도 주변을 수소문해서 억지로 알아보니 아이가 반에서 어떤 오해로 인해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로부터 의도적인 왕따를 당하고 있더랍니다. 사실은 다른 아이로 인해 생긴 일인데 그 일을 당한 아이가 그 일을 유포한 아이를 대적하기 힘드니까 중간에 있던 이 아이에게 대신 화풀이를 하는 셈이라고 할까요. 그러다보니 원래 그 일을 저지른 아이도 한 편이 돼서 약자의 입장에 있던 이 아이를 외톨이로 만드는 데 힘을 합한 것이지요. 어제까지 반에서 친하게 지내던 아이들이 자기가 뭔가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힘의 원리가 작용하는 약육강식의 장으로 바꿔 놓은 것입니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와
종|교|칼|럼| 삶 세상의 길과 내가 가는 길 출가를 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대부분의 경우는 일정 기간 동안 글자와 영상을 통해 전해지는 거의 모든 매체에 관심을 둘 여유를 가지지 못합니다. 선 수행을 위주로 하는 도량에 출가했다면 전념해야할 것이 오직 자기의 본성을 보고자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이 그러합니다. 뿐만 아니라 세간에서 살 때 관심을 가졌던 부분에 대해서도 이상할 정도로 더이상의 관심이 가져지지 않기도 합니다. 다가오는 대상에 대해 촉수를 세우고 판단하고 잣대질 하는 것을 경계해야 할 공부거리로 삼다 보니, 생각을 키워나가고 궁리를 통해 일을 해결하려는 습관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 자체가 내 수행의 과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개인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한동안은 글자나 영상을 통한 것들에 흥미가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정신을 소란하게 할 뿐이라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 출가자로서 사는 일이 내게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시점이 되면 글자들도 좀더 편안하게 다가오게 됩니다. 그래도 읽거나 보는 거리들의 쟝르가 제한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너무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를 다룬 것은 아무리 우수하다 해도 통히 읽혀지지가 않으며 읽을
종|교|칼|럼|삶 차 맛이 좋습니다 혜원 스님<조계종 한마음선원 주지> 사람들에게는 좋은 습관도 있는가 하면 꼭 고쳐야 하는데 그야말로 습관이 되어서 계속 반복하고 있는 나쁜 습관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는 습관에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어야 한다는 분들이 있습니다. 현대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에 있어서, 사업관계에 있어서, 가족관계에 있어서의 물리적 정신적 압력에 견딘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런 때에 스트레스를 겪는 당사자는 배불리 먹음으로써 느껴지는 포만감이 나의 정신적 공허함과 삭막함을 대체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먹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역시나 나쁜 감정을 지닌 채 먹는 음식은 그 감정들과 함께 내 몸속을 휘돌아, 기쁘고 즐겁게 먹은 음식이 줄 수 있는 효용보다는 아마 그 가치가 확실히 떨어질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원치 않는 살도 찌게 되고요. 마찬가지로 쉽게 화를 내는 분도 있습니다. 조금만 내 의견과 맞지 않거나 좀 오래 기다려야 한다거나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벌컥 화부터 내게 되는 것이지요. 이 분 역시 외적인 압력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견디기가 힘
특별기고 / 김 영 호 삼성서울병원 교정과장 치과계의 유전자 코드 : 다음세대의 모습 문득 연구실 밖으로 비온 후 맑아진 하늘을 보다가 그 아래 자라나는 나무들의 흔들림을 봅니다. 예전에는 그저 보기 좋다는 느낌으로만 있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는 중년이 되면 저 나무들도 어디선가 생명의 근원인 씨앗을 받아 이곳에서 한 세월을 번성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까지 사색의 범위가 넓어지고, 언젠가는 저 나무나 우리들이나 사라져간다는 사실을 깨닫곤 합니다. 그 후는? 물론 어린 나무들과 우리의 자식들이 자라나고 있지요. 생명의 순환, Circle of life. 디즈니의 유명한 만화 영화 ‘라이언 킹’에서 어린 사자 심바가 어느덧 강한 청년 사자가 되고, 한 세대의 왕이었던 아빠 사자는 죽어서 하늘의 별이 되어 자식을 바라보는 장면처럼 개체는 사라지지만 생명은 유전자의 형태로 전달이 되어가지요. 사람은 대략 30년이란 시간을 한 세대로 하여 자식을 낳고 건강히 키워 자신의 유전자를 전수합니다. 어린놈이 커서 뭐가 될지는 몰라도 모든 부모는 이 아이가 자라 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고 존경받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그러려면 아무래도 우리 치과의사
양영태 전 치협 공보이사 글로벌 센터를 조명하며 치과계의 숙원사업인 인력 수급 조절을 위한 블루오션이 이수구 집행부에 의해 가시화되고 있다.한마디로 이수구 집행부가 큰 일을 하고 있다. 국내 치과의사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돕기 위하여 글로벌 센터를 설립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적정 인력 수급’을 협회장의 공약으로 내세워 치과대학정원을 줄이겠다고 과거의 모든 집행부 더욱이 과거 협회장들은 회원들에게 공언을 해 왔었으나, 그 아무도 실천적인 인력수급효과를 내지 못했다. 왜냐하면 ‘치과대학 정원 감축’은 치협의 힘으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현실적인 큰 벽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금번 이수구 협회장이 적정 인력 수급 조절과 치과의사의 명예로운 해외진출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손, 가슴, 발로 뛴 결과 머잖아 ‘호주·뉴질랜드’를 비롯한 ‘선진국 드림’이 있는 나라로 우리나라 치과의사들을 진출시킬 글로벌 사업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오랜 숙원사업이 기분 좋게 이루어질 흔쾌한 전망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꿈의 나라인 호주나 뉴질랜드에 자녀들을 교육시키고자 하는 회원들이 꽤나 많았음은 부인 못 할 사실이다.이수구 협회장이 지난 9일 코엑스에서 직접
아일랜드의 작가 ‘골드 스미스’는 “우리의 최대 영광은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넘어질 때마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실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실패를 경험합니다. 작은 실수에서 큰 실패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합니다. 미국 텍사스에는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젖소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우유를 얼마나 많이 쏟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매사를 긍정적인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당신이 오로지 쏟아진 우유만 쳐다보고 더 큰 그림을 보지 못할 때, 문제는 그것이 실패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실수가 잘못 반응되는 이유는 우리가 계속해서 실수를 잘못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윌리엄 마요’박사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한 번도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사람에게서 나를 구원해 주시고 또한 같은 실수를 두 번 저지르는 사람에게서도 나를 구원해 주십시오.” 어느 작은 시골교회 주일 미사에서 신부를 돕던 한 소년이 실수로 제단에서 사용하는 성찬용 포도주 그릇을 떨어뜨렸습니다. 미사 후에 화가 난 신부가 소년의 뺨을 때리면서 “다시는 제
중국속담에 행복이란, 할 일이 있는 것(Something to do), 그리고 사랑할 대상이 있는 것(Someone to love), 마지막으로 바라 볼 희망이 있는 것(Something to hope)이라고 했습니다. 할 일이 없다는 것, 아침에 눈을 떠도 갈 곳이 없다는 것,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만큼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무언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국민의 79%가 희망을 모른 채 살고 있다는 통계가 발표된 적이 있습니다. 세기의 영웅 ‘나폴레옹’은 “리더는 희망을 파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현실에서 우리는 정치지도자들에게서 희망보다는 실망을 발견할 때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미국대선 민주당 후보 오바마의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이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날이 바로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루터 킹 목사가 “I have a dream"이라는 연설을 한지 45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연설은 미국 내 인종차별 문제의 심각성을 일깨울 뿐 아니라 인권운동의 발전을 가져온 기폭제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 그 언젠가 조지아
이 세상에는 ‘아리프니츠’와 같은 낙관주의자(optimist)가 있는가 하면 ‘쇼펜 하우어’와 같은 염세주의자도(pessimist)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츠’는 “이 세계가 모든 가능한 세계 가운데서 가장 좋은 최선의 세계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쇼펜 하우어’는 인생을 악으로 보고 있습니다. 인생의 기본 요소는 고통이며, 쾌락이란 고통이 끝났다는 소극적인 상태에 불과 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만약에 이 세상에 선이 있다면 그 중 최대의 선은 죽음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악한 세상을 떠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는 이 두 사람에게서 인생을 바라보는 두 가지의 태도, 서로 다른 관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관점을 취하며 어떤 안경을 쓰느냐에 따라 인생을 긍적적으로 받아들이게도 되며 부정적으로 대하게도 됨을 알게 됩니다. 관점의 차이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큽니다. 어느 시골에 아들 둘을 둔 할머니 한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큰 아들은 우산장수이고 작은 아들은 짚신장수 였습니다. 이 할머니는 두 아들의 장사 때문에 하루라도 근심 걱정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매일 매일 근심걱정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