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세상이 코로나 이야기이다.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으로 보아 어쩔 수 없지만 여러 기관에서 열리는 토론회(대부분 비대면으로 개최된다)의 주제도 교육학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교육, 경제학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경제, 사회학자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사회 문제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노말(뉴노말)을 이야기하고 걱정하고 흥분한다. 많은 전문가들이 새로운 워딩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용은 구체화 되어 있지 않고 이 문제가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어떤 실제 모습을 하고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생물학 분야와 제약 분야에 최고의 과학과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한결같지만 아직 이 분야에서의 우리나라 기술력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근 국가기관과 산업계의 연구력이 코로나 이슈에 집중되는 현상을 볼 수 있지만 이 상황이 지나가고 또 다른 새로운 이슈가 나타나면 우리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1년 전만 하더라도 미세먼지 문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였고 국가기관과 산업계의 연구력이 미세먼지 문제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 학회에서 개최하는 비대면 웹
세상이 혼란하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혼란스러움이 어제오늘의 일인가? 아니다, 몇 년 전부터도 아니고, 몇십 년 전부터도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해서 혼란하지 않았던 날은 하루도 없었다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뇌는 우리 몸이 소비하고 있는 에너지의 70% 이상인가를 소비하고 있는 구조물이다. 그래서 에너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제거하고 있는데, 과거가 지금보다 나았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뇌가 과거 고통의 기억을 지워 버리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는 늘 혼란스러웠고, 절망적일 때가 많았지만, 발전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마음 속에 늘 긍정과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류에게는 항상 발전된 미래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포스트 코로나에 대한 이야기들이 유튜브 등의 매체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 지금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AI 예측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비대면의 비즈니스가 발전할 것이고, 혼밥, 혼술, 방콕을 겨냥한 비즈니스가 앞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인 ‘안전’+’게으름’을 충족시켜주는 것이 비즈니스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
매일 반복되는 뉴스 속의 ‘코로나19 오늘의 발생 현황’은 어느덧 무덤덤한 일상 중의 하나로 되어 버렸습니다. 초기 코로나 양성 확진자가 발표되었을 당시 확진자의 모든 동선을 비롯하여 심하다 할 만큼의 과민 반응을 보였다면 처음과 달리 이제는 주변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에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오히려 경기가 어렵다는 점이나 병원 내원 환자수가 떨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경제 고민 등이 코로나19와 관련되어 나타났을 때 비로소 다시 코로나19를 생각하게 됩니다.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국민 행동 수칙을 발표하였습니다. 과거와 달리 주변의 모든 행인이 얼굴을 가리고 마스크로 무장하고 다니는 것이 이제는 익숙한 거리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코로나19는 우리의 얼굴을 마스크로 가리라 합니다. 마치 온갖 부끄러움을 저지르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앞으로는 부끄러운 짓을 하지 말고 얼굴에서 마스크를 벗고 가리지 않을 때를 준비 시킵니다. 국민 행동 수칙 중 또 다른 하나는 자주 물과 비누로 손을 꼼꼼하게 씻으라 강조합니다. 마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이제 그만 ‘손을 씻으라’고 강권하는 듯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오래전 조직학 강의시간이었던 기억이다. 트레이라고도 했고 캐러셀이라고도 부르던 둥그런 슬라이드 케이스를 하나도 모자라 두 세 개씩 들고 들어오시던 교수님께서는 마치 ‘치아와 치주조직이 찍힌 이 세상의 모든 광학현미경 사진은 물론 전자현미경 사진까지 너희들에게 모두 보여주마!’라는 기세로 한 학기 내내 그 기원과 조성과 구조를 부족함 없이 가르쳐주셨던 것 같다. 그토록 정교한 발생과 분화의 과정을 거쳐서 성장을 마친 완성품인 치아가 쓰다 보면 망가져서 못쓰게 되면 ‘여러분들’ -조직학 교수님께서는 절대로 우리를 ‘너희들이’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다- 이 환자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정성껏 잘 치료하여 더 오래 쓰게 고쳐줘야 하는 거라고 하시면서, 기초과목 중에 임상과목의 중요함을 일깨우셨다. 비록 냉·난방이 부실하고 하나의 긴 널판으로 된 등받이도 없는 장의자에 대여섯 명씩 앉아 듣던 30여 년 전 구식 강의실이었지만, 그곳에 앉아있던 우리들에겐 구형 프로젝터에서 뿜는 전구의 열기와 냉각팬의 회전음을 배경으로 찰카닥 소리가 나며 나타나는 생전 처음 보는 영상들은 공부를 떠나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아마도 그토록 세상의 모든 것이 새롭고 재미있던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딸 민희가 결혼하게 되면서 딸에게도 필자에게도 추억이 되는,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깊이 했다. 그러던 중 절친인 서강대 경제학과 김영익 교수가 몇 년 전에 일반인도 보고 전문가도 보는 경제 서적을 낸 일을 떠올렸다. 김 교수처럼 일반인과 전문가에 도움이 되는 치아 교합에 관한 저서를 만들고 싶었던 필자가 작년 11월에 김 교수가 추천한 출판사로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자료를 보냈더니 정리가 덜 되어 어렵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고심하던 차에 2015년에 세계보철학회에서 ‘CBK(cranial balancing key) splint and anti aging effects’를 발표할 때 설문지 제작을 도와주신 천봉기 교장 선생께서 올해 2월에 스케일링 진료를 받으러 오셨다. 필자가 도움을 청하니 자료를 보내달라셨고, 천 교장 선생은 그 후 며칠을 밤을 새우면서 자료를 다섯 개의 챕터로 분리하여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해 주셨다. 필자로서는 불가능해 보였던 일을 해 주신 천 교장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덕분에 ‘CBK 스플린트 전신 건강을 지킨다’는 제목의 책이 인쇄에 들어가 사랑하는 딸 민희의 혼사 날인 6월 7일에 맞춰 세상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생활 속 거리두기를 통해 예전과 달라진 일상 속에서 우연히 인터넷 서핑을 하다 재미난 기사를 찾았습니다. 몇 해 전인 2017년 6월 29일자 눈에 들어온 인터넷 기사 제목은 ‘일본 한 식당의 이상한 주문법이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였습니다. 내용인즉, 일본 도쿄시 도요스에 2017년 6월 3일 문을 연 겉보기에는 다른 식당과 별다른 차이점이 없는 그런 평범한 식당에 관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식당이 특별한 이유는 손님이 주문한 음식이 제대로 나올 지 아니면 다른 메뉴로 바뀌어 나올지를 알 수 없는 ‘주문 실수’가 이 식당의 테마이기에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이곳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여섯 명은 모두 치매 환자로 주문 실수는 물론, 주문을 받는 것조차 잊어버리곤 하는 문제가 있는 식당이었습니다. 라면을 시켰는데 우동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햄버거를 시켰는데 만두가 나왔습니다. 이럴 때 문득 주문을 잘못 넣었는지 한번은 의심하게 되는데 나오는 음식마다 매번 다른 음식이 나오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요? ‘주문 실수가 넘치는 식당’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엉뚱한 메뉴를 가져다줘도 화내는 손님은 한 명도 없습니
삼국시대에 제갈량이 죽으면서 유비의 아들인 유선에게 읽도록 했다는 책은 ‘동양의 제왕학 교과서’라고 불리는 “한비자”였다. “이 글을 쓴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죽어도 한이 없겠다.” 중국을 통일해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한 진시황이 법가인 한비자를 두고 한 말이다. 한비자는 음모에 휘말려 자살로 생을 마감하였지만 법가는 이후 중국 고대 국가의 기틀을 잡는 데 핵심 사상이 되었다. 당대에는 핍박과 위협을 받았을지 몰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 시대의 발전은 이러한 원칙주의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시대를 앞서가는 원칙을 정하고 실천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역시 모든 역사적 사실이 보여주고 있다. 한비자가 말하는 군주에게 꼭 필요한 세 가지 통치 기재는 법(法)과 술(術) 그리고 세(勢)이다. 법(法)은 정치를 하는데 필요한 공정하면서도 엄격한 원칙을 말한다. 감정과 개인적인 판단이 아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원칙을 그 기준으로 삼는 것이 리더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는 성경 구절이 있다. 리더는 논리적이고 공정한 잣대를 가지고 사사로운 친분이나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학회의 본업은 학술활동을 통한 해당 학문의 발전이다. 치과계에도 치의학회 산하에 30여 개 이상의 인준 학회가 있고, 인준을 준비 중인 학회도 있으며 학회로의 발전을 준비 중인 연구회도 다수 있다. 학회는 학술대회와 학회지 발간으로 대표되는 학술활동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며 해당 학문을 대표하는 플랫폼으로서 외부의 자문에 응하고 관련 산업과 소통하는 창구가 되며 관련 해외 학회와 교류의 통로가 된다. 즉, 학회는 이와 같은 학술 활동을 통해 이미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실천성을 강조한 의미의 “사회적 가치 혹은 사회 공헌”의 측면에서 학회의 역할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사회는 시민단체만이 아닌 기업이나 대학도 그 본연의 역할을 넘어선 사회 공헌의 역할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활동을 홍보의 차원을 넘어선 본연의 역할을 확대, 발전하는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사회 공헌 프로그램의 활성화를 통해 전공지식 구현과정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남을 섬기고 협력하는 리더십을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고령사회 및 초고령 사회의 대비를 위해 최근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커뮤니티 케어 사업”에 학회와 지
참으로 우리나라는 놀라운 나라다. IMF 사태가 일어났을 때도, 놀라운 속도로 문제를 해결했고, 이번과 같은 범세계적인 위기 속에서도 세계가 놀라게 할 정도로 신속하게 위기를 극복하고 있다. 아마 이것은 우리를 특징짓고 있는 몇 개의 키워드 중의 하나인 “빨리빨리”라는 성격 덕분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서두른다는 것은 부족함을 감수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언제라도 어려움에 봉착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을 멋지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어차피 어려운 상황이므로 현재의 상황보다는 나아질 수 있다는 바람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가 IT 강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새로움에 대한 강한 호기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성취를 위한 조급함 덕분이었다. “빨리빨리”라는 우리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의 하나가 사람들의 조급함을 해소하는데 제격인 인터넷과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경제는 순환이 빠를수록 그 성장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욕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찾아서, 그것을 필요로 하는 곳에 연결 시키기만 하면 경제의 규모는 커진다. 그런 점에서 IT 강국이라는 사실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경제 규모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키워줄 것이 분명
대덕 치과(박병기)는 지역에서 어떤 Position인가? 대덕 치과(박병기)를 지역에서 어떻게 Positioning 할 것인가? 고민을 하였던가? 고민하고 있는가? 2016년 초 치과 앞 980세대의 주공 아파트가 2019 광주 세계 수영대회 선수촌으로 선정되었다. 건축된 지 40년이 넘는 저층 주공 연립아파트였기에 치과를 개원하고 10년이 지나서부터는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으로 타지인들이 주로 소유하고 있다. 2019년 7월, 8월 수영대회 기간 선수촌으로 활용하고 대회를 마치면 6개월 정도의 리모델링을 거쳐 2020년 4월부터 1650세대가 입주한다. 지역에는 2개 치과가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내 치과는 지역에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하신 분들이 주 고객을 이루고 있다. 옆 치과는 주공 아파트 주민들이 주 고객을 이루고 있다. 주민들의 이주가 시작되자 동네는 인적이 끊기며 빈 건물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2016년 10월이 지나 아파트 주민들이 본격적으로 이주를 시작 하자 옆 치과는 폐업을 하였다. 내 치과는 1993년부터 개업하여 기존 구환이 있어서 환자 수는 크게 줄지 않기에 2020년까지 버티기로 하였다. 2017년 1월 동료 치과원장의 권유로 P
올 봄은 미디어가 COVID-19와 일련의 선거들에 관련하여 너무도 빠짐없이 전해준 사실일지 모를 사실들과 그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와 여론을 듣고 읽느라 바빴던 것 같다. 많은 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 世事에 관심을 많이 가지지 않았었나 싶다.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를 넘어 ‘내가 옳다! 너는 그릇되다!’를 서슴지 않고, 사실의 판단에 대한 기준도 애매모호하거나 심지어는 기준이 아예 없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말과 글들도 부지기수였다. 우리는 그 많은 말과 글들을 듣고 읽으며 떠올리고 머물렀다 사라진 생각들로 이 봄을 보내고 있다. 각자의 머릿속에 가득 찼다 떠나간 생각들은 다 사라져버린 듯해도 실은 그것으로 소멸된 것이 아니라, 그 흔적과 메아리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또다시 다른 듯한 같은 말과 새로운 듯한 새롭지 않은 글을 열심히 만들고 이어가는 중이리라. 무릇 말이 생각이고, 또 그 생각의 주인들을 하나하나 존중해야 하겠지만, 너무나 많은 이들의 생각과 말들을 동시에 ‘무대’에 올리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이고 인간성이 존중되는 공동체의 목적지로 향해 가는 방법인가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1990년대 초 Information Overload 라는 신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