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 이념보다
사랑에 가까이 있다
다양한 문화 서로 인정하는 것이 보편적 가치
이라크에서 우리는 정의보다 힘이 우선하는 현실을 보았다. 그리고 냉혹한 국제사회의 현실 속에서, 전쟁반대라는 명분을 고수하기보다는 북한의 핵 문제와 대미 의존도 등을 감안하여 국익을 택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처지를 허전해 했다.사람들은 이상적인 정의보다 결국 현실적인 힘이 우세하다고 말하지만, 이라크에서의 전쟁 뉴스를 접하면서 나는 이념보다 오히려 사랑이 믿을 만한 것임을 보았다. 사람들은 힘의 우위를 보았다 하나 나는 단지 욕심의 우위를 보았다.사람들은 힘이 대의명분을 이겼다 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보자면 힘과 명분이 대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본래 이념의 장과 사랑의 장은 서로 층을 달리 한다. 근원적인 대결의 장은 이념의 장이 아니라 마음의 장에서 벌어졌다. 마음의 장에서 욕심이 사랑을 이긴 것이다.이념은 항상 겉에 입힌 옷에 불과할 뿐이고, 실제 속에 숨어있는 실체는 욕심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이따금 서로 비교할 수 없는 항들을 비교한다. 예를 들어 땅 위의 과일과 바다 속의 물고기를 비교하듯, 이념과 사랑을 비교한다. 이념과 사랑은 같은 반열에서 비교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라크에서의 전쟁은 이념과 사랑의 대결이 아니라, 욕심과 사랑의 대결이다. 마음이란 운동장에서 욕심의 마음과 사랑의 마음이 충돌하여, 욕심이 승리한 전쟁이다.이념이란 하나의 옷이다. 우리는 검은 마네킹, 흰 마네킹, 노란 마네킹에 노란 평화의 이념의 옷을 입힐 수 있다.
노란 마네킹(실체)이 항상 노란 옷(이념)을 입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번 전쟁에서 우리는 미국이 내세우는 이념이나 명분의 흐름을 통하여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교전 초 미국은 대량살상무기나 악의 축을 제거하기 위하여라고 강조하였지만, 종전이 되자 이라크 민중을 독재로부터 해방시켜 자유와 민주주의를 제공한다는 점에 비중을 두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 선택의 변화는 미국이 내세우는 이념적 무장의 흐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맞추어 카메라의 초점도 종전 후에는 사치스런 후세인 대통령궁으로 이동하고 있다.미군정과 UN의 역할과 이라크 과도 정부 등 과거 우리 국정 교과서에서 보던 용어들이 이라크에서도 반복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역사가 반복되는 것인지, 아니면 언제나 똑같았던 인간의 심성이 되풀이되는지 반문하게 된다. 국제사회에 있어서도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였던 것이다. 후세인파와 반후세인파의 대립, 수니파와 시오니파의 갈등, 아니면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차이에서 오는 전쟁인가? 아닐 것이다. 프랑스의 석학 에드가 모랭은 미국이 이라크의 석유자원과 중동과 중앙아시아 대륙까지 통제하려는 지정학적 전략에서 전쟁을 했다고 주장하고, 또 대부분의 언론도 이와 같은 미국의 패권주의 욕심을 전쟁 발발요인으로 지적하고 있다. 미국화로 대표되는 세계화도 어찌 보면 이데올로기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욕심의 문제이다.
이데올로기 뒤에는 대부분 은밀한 욕심이 숨어있다. 진정한 이념과 대립되어 있는 것은 또 다른 이념이 아니라 증오나 이기적인 욕심이다. 진정한 이념이라면 그것은 사랑과 함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이념과 사랑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결여된 욕심이 이념의 이름을 겉으로 내세우며 사랑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누가 옳고 그르다’는 판단이나 ‘이것이 바로 정의이다’라는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실천적인 사랑에 의해서만 전쟁은 종식될 수 있다. 진리란 이념 쪽에 가까이 서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랑과 관용 쪽에 서 있다. 미국의 이라크 공격은 소위 정의란 이름으로 포장된 이념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공포에 질린 어린아이의 얼굴을 통해 우리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있다.
사랑과 자비는 인간이 부르짖는 정의의 건너편에 있고,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진정한 정의란 다만 사랑과 관용일 뿐이다. 세계화란 획일적인 이념이 결코 민족국가와 지역문화를 없애지 못하고 오히려 세계화가 되면 될수록 각 지역 문화의 존재가 부각되는 바에서 알 수 있듯이.또한 이처럼 다양한 문화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 바로 문화의 보편적 가치라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문화란 절대적 이념에 가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 실천적 행위에 가까이 있다. 그러므로 문화는 그 어떤 시대나 지역일지라도 획일적인 이념 속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삶에 대한 각별한 애정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이다. 따라서 이념보다 사랑이 믿을만한 것인 만큼, 우리 삶은 이념보다는 문화 속에 더 깊이 근거의 닻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