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마다 산책을 한다. 물론 늘어나는 뱃살의 관리를 위함도 산책의 이유가 되겠지만 마냥 계속되리라고 생각했던 청춘이 이제 몇 년 남지 않았다는 아쉬움에 이제까지의 나의 인생을 회고해 보며 쓸데없는 값어치에 대한 갈망을 과감히 마음속에서 쓸어버리고 진정 남은 생이 추구해야 할 것들에 대한, 즉 변함없는 가치에 대한 나의 영혼과의 솔직한 대화를 즐기기에 몰두함이라고 해야 옳을 것인가?실로 유명한 철학자 중에 이런 마음의 자유를 즐기지 않은 사람은 드물다. 순수 이성 비판을 쓰신 철학자 칸트도 산책에 대한 유명한 일화를 남긴 것은 이미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이 몸이 뭐 철학 서적을 낼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낸다고 해도 읽어 줄 독자를 확보하지도 못한 마당에 거룩한 사람들의 거룩한 흉내를 내려는 마음은 조금도 없다는 사실을 여러분들이 놀랄까 봐서 미리 밝혀 둔다.게으른 이 몸이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꾸준히 산책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산책 후에 몰래하는 한 모금의 담배 맛, 바로 그것이다. 물론 현장을 가리기 위한 껌 한 통도 준비를 하지만 우리 마누라는 그야말로 세파트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불러 세워 나의 도톰한 입술에 그 무시무시한 코를 바짝 대고는 불어 보라고 하신다.
으음, 오늘은 디스 2 모금, 혹은 마일드 세븐 3 모금하고 판결을 내리면 나는 여지없이 2만원, 또 3만원의 벌금을 바쳐야 한다.역사는 도전에 대한 응전이다. 무지몽매한 이 몸이지만 그냥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산책에, 몇 모금의 담배에, 껌 한 통으로 이어지는 행사를 훌륭히 마친 나의 발걸음은 그날 따라 유난히 가벼웠다. 일회용 종이컵을 사 들고 들어간 이 몸은 “여보, 애들도 자랐고 흡연 측정을 하는 우리의 모습이 영 볼거리가 아니며 또한 공적인 일이니 이 컵을 사용하도록 하시오” 라는 거친 항의를 하여 뜻은 이루어 졌지만.여러 과정을 거치느라 멍청해진 담배 냄새에 곱하기 알파를 하여 정확한 계산을 해내는 마누라의 솜씨는 가히 일품임에 놀라며 역시 소정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이 몸을 여러분들은 동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심술 맞은 질문을 하며 괴롭힐 것은 뻔하다. 이렇게 ‘천하의 공처가로 알려진 저 인간이 하루에 만원의 용돈을 타 쓰는 주제에 어떻게 그런 거금을 매일 벌금으로 물 수가 있을까?’ 하고.맞다, 그것은 누구를 속이기 위함이 아닌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다.
이쯤해서 끈기 없는 미성년자들은 지루하여 읽기를 포기 할 만도 하니 솔직히 고백한다. 여기서 일 만원이라 함은 아주 고된 한번의 찐한 키스를 일컬음이다. 히이, 좀 창피하지만 계속한다. 어제 저녁에는 속상하는 일이 있어 연달아 담배 3개피를 연거푸 빨아 댔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나의 그 매력적이던 입술은 그만 탱탱 불어 터져 버렸다.
안계복 / 부천시 안치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