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Z EZViwe

<릴레이 수필>
제896번째 이야기
북한산에 들다

관리자 기자  2003.05.19 00:00:00

기사프린트

안개비, 철축쫓 어우러진 산행길서 싱그런 봄기운 만끽 금년 봄엔 유난히 비가 왔다. 이맘땐 황사현상으로 가슴이 갑갑했었다. 그럴때는 한낮에 도시가 컴컴해 질때도 있었는데 올해에는 세상이 밝고 깨끗하게 보여서 기분이 좋다. 한바탕 이라크 전쟁 때문에 전세계가 시끄럽더니 예상보다 훨씬 빨리 종전이 되어 다행일 뿐이다. 전혀 예상치 못하는 큰 사건이 연이어 터지니까 요즘엔 산다는 것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오늘은 산악회 정기 산행일이다. 항상 오를때마다 가슴 벅차다는 북한산 산행이다. 아침에는 빗줄기가 굵더니 북한산성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 쯤 안개비로 바뀌어 내리고 있었다. 비옷을 입지 않고 걸어도 옷이 젖지 않을 정도의 雲霧(운무)였다. 나무의 연초록 새잎, 철죽꽃, 봄바람과 안개가 어울려서 오히려 싱그러운 봄기운이 좋았다. 산악 마라톤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내 마라톤도 이젠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아직 산악 마라톤은 붐비지는 않았다 선수들은 가끔 한두명씩 산행객 사이를 힘차게 뛰어가고 있었다. 조그만 배낭에 흙 호주머니와 물통이 넣고서 그냥 걷기도 쉽지 않은데... 산비탈을 뛰어야 하는지? 꼭 시합을 해야 하는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으로 오르다 보니 북한산의 무릉도원을 지나고 있었다. 가는 세월을 잡을수는 없는지 만개한 꽃들은 벌써 지고 있었다. 이 무릉도원의 절경을 내려다 보던 곳에 위치한 山暎樓(산영루)의 누각은 쓰러지고 주춧돌만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인걸은 간 곳 없고 산천은 여전하게 아름다움을 그대로 뽐내고 있었다. 무릉도원를 지나자 금방 비석거리에 닿았다. 넓다란 바위 위엔 善政碑(선정비)가 즐비하였다. 선정을 베푼 지방수령이 그렇게 많았던지 고개가 갸우뚱 그려진다. 위정자들의 뻔뻔스러움은 예나 지금이나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흥사지에 닿으니 彿事(불사)가 진행중이지만 몇 년동안 별 공사 진척이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불교계도 속세와 다름없이 복잡한 사연이 많은 듯 하다. 이 중흥사는 고려 현종 재위시 거란의 침공을 받았을 때 태조 왕건의 梓宮(재궁:임금의 관)을 옮겨 안치하고 피난 생활을 한 곳이였다. 1915년 대홍수때 유실된 것을 새로 짓고는 있지만 언제 다시 옛 모습을 찾을는지. 중흥사 개울 윗쪽에 위치한 太古寺(태고사)엔 들리지 않고 왼쪽 계곡으로 들어섰다. 계곡엔 물소리가 청아 하였다. 여름같이 물이 많았다.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산을 올랐다. 낙엽이 무릎까지 쌓인곳이 많아 조심스럽게 걸었다. 노랑, 파랑, 얼룩 제비꽃이 예쁜 꽃이 되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족도리 꽃은 이제야 겨우 잎사귀를 펴고 있었다. 노적봉,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등 모든 봉우리가 운무에 가려져 본래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산 윗쪽에 오르니 바람이 강하게 불어 비가 아주 차갑게 느껴졌다. 미끄러운 바윗길을 한동안 힘들어 오르니 衛門(위문)이였다. 북한산성은 조선 숙종 37년(1711년)에 고승 聖能(성능)이 팔도도총섭이 되어 축성하였고 국방상의 요새지 구축 때문이였다. 그러나 한번도 적들과 대치한 적이 없었던 그 산성의 위문을 지나 금방 백운산장에 도착하였다. 이 백운산장의 현판은 손기정옹이 쓰셨다. 생전에 나에겐 농담도 아주 잘하셨는데. 비가 내리는 탓에 산장안은 사람이 가득했다. 일본 검악 산행시 大汝山(대여산) 산장이 생각났다. 추위에 떨다가 사람 빼곡한 틈사이에 끼어서 마셨던 위스키 생각이 났다. 두부김치 안주와 막걸리를 시켰다. 시원한 막걸리를 한 사발씩 마시니 뱃속이 따뜻하고 편해졌다. 한참을 기다려 겨우 자리를 잡아 점심식사를 맛있게 할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등산객이 주로 다니는 길이 아닌 바위쪽으로 길을 잡았다. 운무속에 아래가 보이지 않으니 경사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스키사고, 골프장 카터 사고로 대수술을 한 회원이 두명이나 있어서 조심스레 위험구간을 통과하였다. 몸이 재산인 치과의사들이라 엄청나게 조심하고 있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 아니던가! 修德寺(수덕사)를 지날 땐 감개가 무량했다. 학창시절 인수봉 암벽 등반할 때 항상 수덕사 쪽 큰 바위옆에 텐트를 쳤다. 그때 함께 산행 했던 산꾼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유수같은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인수산랑에 닿았다. 그 곳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다재다능했던 그는 법대 학장이 되어 조교들을 인솔하여 산에 왔다고 했다. 도선사 주차장까지 함께 내려오면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허물없는 정담이 즐거웠다. 우이동에 내려와서 주막을 들렀다. 주모는 불경기에 날씨까지 이 모양이라면서 투덜거렸지만 술청이 조용하여 실컷 막걸리를 마실 수 있었다. 이라크 전쟁, 남북관계, 한미관계 또 우리의 직업전망 등 술안주는 다양했다. 그래도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