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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두번째 이야기
‘귀족원’바로크풍 중후함 자랑
스톡홀름 시청 종탑 들러볼만

관리자 기자  2003.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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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위치 바사박물관 ‘장관’ 프람호엔 치과의료기구도 전시
바이킹유람선에서 아침식사를 하면서 아름다운 스톡홀름 군도의 경치에 넋을 잃는 동안 어느덧 바이킹호는 스톡홀름항에 도착하였다. 바이킹호가 정박하는 터미널은 스톡홀름 중심에 있어서 바다 한 복판에서 스톡홀름시의 전경을 조망하기에는 더 없이 좋았다. 보잉747점보여객기 6대와 맞먹는 2400명의 승객과 400대의 자동차를 실어 나르는 길이 200미터의 유람선을 마치 도로변 주차장에서 후진하여 꽁지를 들이밀어 주차시키듯 부둣가에 정박시키는 기술도 대단하였다. 스톡홀름 항에서 시내의 호텔까지는 불과 3~4km 남짓한 거리인데 택시요금이 무려 SEK.200(약 USD.30)이나 나오자 아무리 출근시간의 교통체증 때문에 그렇다 하더라도 일행들은 모두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에 질리고 말았다. 그 후 웬만해서는 모두들 다리가 아프니 택시타자는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스웨덴은 덴마아크, 노르웨이와 함께 스칸디나비아 3국으로 불리고 공동으로 국적기라 할 수 있는 스칸디나비아 항공사를 설립하여 운항할 만큼 지역연합을 이루고 있지만 이들의 역사는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한때는 칼마동맹을 맺어 함께 뭉치기도 하였지만 왕권다툼에 휩쓸려 스웨덴과 덴마아크는 갈라졌으며, 프랑스의 나폴레옹과 영국과의 전쟁에서 편가르기에 말려들면서 서로 다른 길을 가게 되어 오랜 동안 대립된 역사를 지켜 왔었다. 스웨덴출신의 과학자 노벨에 의해 제정된 노벨상은 스웨덴 한림원에서 주관하지만, 당시의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불편한 관계를 해소하려는 차원에서 노벨평화상 만큼은 노르웨이에서 주관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스톡홀름의 시내관광은 스톡홀름시청의 종탑에서 시작된다. 1912년에 세워진 시청 건물은 스톡홀름에서는 비교적 현대적 건물에 속한다. 스톡홀름은 크고 작은 14개의 섬으로 되어 있어서 북유럽의 베니스라고도 불려지지만 시내 어디에서도 베니스와 비견할만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높이 100미터의 종탑에 올라서자 비로소 스톡홀름은 운하의 도시라는 것을 알 수가 있지만 그래도 베니스는 아니다. 베니스가 스톡홀름보다 더 낫다는 것이 아니라 베니스는 베니스, 스톡홀름은 스톡홀름일 뿐인데 왜 굳이 그런 별명을 붙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청사 종탑에 오르면 리다홀름과 감라스탄섬이 손에 잡힐 듯 한 눈에 들어온다. 여의도의 이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좁은 곳이지만 스웨덴의 역사를 지켜온 곳이다. 시청에서 다리를 건너면 높은 첨탑의 고딕건물인 리다홀름교회가 첫 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역대 스웨덴 왕족들이 묻힌 곳이기도 하다. 스토르키르간(대성당)은 역대 왕실의 혼사나 즉위식이 거행된 곳으로 리다홀름교회와 마찬가지로 그 외모는 수수하지만 그 사이에 위치한 귀족원은(House of nobel) 북유럽귀족사회의 중심위치에 걸맞게 바로크풍의 중후한 멋을 자랑하고 있다. 노벨박물관이 있는 스토르토겟(광장)은 감라스탄의 중심으로 덴마아크와 스웨덴이 왕권을 가지고 대립하여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킨 유혈참극이 있었던 스칸디나비아역사의 중심이기도 한 곳이지만 지금은 어느 구석에도 그러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 듀르가덴의 바닷가에 자리 잡은 바사박물관은 해양강국의 수도인 스톡홀름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1628년에 건조되었으나 처녀출항 때에 스톡홀름 앞 바다에 침몰한 부끄러운 역사를 지닌 목선 바사호는 1961년 스톡홀름 앞 바다에서 인양된 후 재조립되었지만 최첨단과학기술의 도움으로도 재기에 실패하여 지금은 박물관에 전시된 것이다. 길이 62미터로 당시에는 세계최대의 전함이었지만 배 전체가 하나의 예술품처럼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외양에 너무 치우친 나머지 기능적으로는 부실한 선박으로 탄생되어 두 번씩이나 좌절을 겪은 것 아닌지도 모르겠다. 북유럽관광은 역사적인 유적지 등의 탐방보다는 어쩌면 노르웨이의 대자연을 찾아보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웨덴의 스톡홀름도 헬싱키에서 발틱크루즈를 한 후 노르웨이의 피요르드로 이어 주는 징검다리 역할 정도에 불과할 정도로 전체 일정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노르웨이가 절대적이다. 8년만에 다시 찾은 북유럽은 오슬로에 새로운 공항이 개항한 것과 공항열차가 등장한 정도의 변화를 느낄 뿐이었다. 스톡홀름의 알란다공항과 새로 이전한 오슬로 가르더묀공항은 모두 시내에서 50KM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평균시속 160km로 단 20분만에 연결해주는 초고속열차의 등장으로 공항이전에 따른 불편은 느끼지 못하였으며 유럽 각국의 경쟁적인 고속철도의 상용화를 엿볼 수 있었다. 스칸디나비아국가 모두가 바이킹의 후예들로 자부하고 있지만 바이킹과 관련된 유적은 노르웨이에 잘 보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