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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답사기행(12)>
전나무 숲서 묻어나는 아, 산의 향기여

관리자 기자  2003.06.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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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일상 해소 넉넉함 넘실 시원한 전나무터널 탄성 절로
오대산 월정사 오대산은 언제 가 봐도 넉넉하다. 기골이 장대한 골산(骨山)이 설악산이라면 오대산은 두루뭉실한 육산의 이미지를 지녔다. 이유없이 투정을 부려도 큰 기침 한번하고 받아줄 것만 같은 할아버지 같은 산이다. 그래서 답답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을 때 망설임 없이 달려가고픈 곳이 오대산이다. 오대산은 이 산에 다섯 곳의 대(臺-동,서,남,북,중앙)가 있다는 의미다. 즉 높고 평평하여 전망이 좋은 곳, 다섯 곳의 대마다 문수성상이 머물러 있다하여 오래전부터 오대산은 불교에서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문수신앙의 성지로 여겨졌다. 또한 중앙의 중대에는 석가모니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고 하여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오대산이 불교의 성지가 된 것은 신라 선덕여왕때의 자장스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장은 왕명을 받들고 10여명의 승려와 함께 당나라로 법을 찾아 떠났다. 그는 당나라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부처가 입었던 붉은 비단에 금점을 찍은 가사(옷) 1벌과 두골과 치아 및 사리 1백 알을 받는다. 또한 어느 노승으로부터 “신라의 동북방 명주땅에도 오대산이 있는데 그곳에 1만 문수가 상주하고 있으니 가서 만나보라”고 권하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태화연못의 용신(龍神)으로부터 “신라의 선덕여왕은 여자이므로 덕은 있으나 위엄이 없어 이웃 나라들이 넘보게 되니 황룡사에 9층탑을 세우고 팔관회를 베풀어 죄인을 사면하여 이를 막으라”는 말을 듣고 귀국하여 황룡사 9층탑을 세운다. 그리고 가져온 불사리를 통도사와 다른 몇 곳에 봉안한다. 그리고 그는 당나라에서의 문수보살을 친견했듯이 명주땅 오대산에 이르러 문수보살의 진신을 보고자 사흘을 기다렸으나 보지 못하고 강릉 수다사로 물러난다. 그 후 신라의 두 태자 보천과 효명이 이곳으로 출가하여 수행을 하다가 나중에 효명은 왕위에 올라 성덕왕이 되었고, 보천은 계속 수행하여 갖가지 이적을 보이다가 입적하였다. 그 뒤 구산선문 가운데 하나인 강릉의 사굴산문의 신의두타라는 스님은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살았으며, 유연이라는 사람이 머물면서 점차 큰 사찰이 되었다고 전하는 것이 월정사의 오래된 창건의 역사다. 자장의 일을 생각하며 매표소를 지나니 이내 일주문이다. 일주문은 사찰로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이다. 기둥 두개가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기둥이 일렬로 서 있다고 해서 일주문(一柱門)이라 한다. 여기서부터는 오로지 한 가지 마음을 품으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지나면 월정사를 가장 월정사답게 만드는 것이 있으니 전나무숲이다. 아름드리 전나무가 하늘을 가리며 시원하게 솟아 있어 그 사이를 거니는 것만으로도 먼 길을 마다 않고 월정사에 온 본전은 뽑은 샘이다. 이상하게도 오대산에는 소나무보다 전나무가 많다. 여기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고려말의 선승이였던 나옹이 북대암에 거주하며 수행할때다. 나옹은 매일 아침 북대암에서 지금의 월정사까지 콩비지국을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 어느 겨울날 선사가 조심스레 비지국을 받쳐들고 가고 있는데, 소나무 가지 위에 쌓여 있던 눈이 떨어지며 덮쳐 그만 국을 쏟고 말았다. 선사는 “소나무야! 너는 부처님의 진신이 계신 이 산에 살면서 어찌 감히 네 마음대로 움직여 공양물을 버리게 하느냐”하고 꾸중했다. 이 소리를 산신령이 듣고는 “소나무야 너희는 이 산에 살 자격이 없다. 멀리 떠나거라. 이제부터는 전나무 아홉 그루가 이 산의 주인이 되어 오대산을 번창케 하리라”하고 말했다. 이후로 오대산에는 소나무가 없고 전나무가 번성했다고 전하며, 지금도 당시 아홉 그루의 전나무 중 두 그루가 들어가는 길 중간에 우람하게 서 있다. 그 중에 한 그루는 최근에 죽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이 길 초입에는 성황당이 있다. 민간신앙의 양식인 성황당이 사찰 들목에 있어 민간신앙과 불교와의 만남을 보게 된다. 전나무숲을 지나자 맑은 계곡이 따르고, 곧 사천왕문이 나선다. 그리고 이내 경내에 들어서게 된다. 월정사는 6·25 때 불탄 후 모두 새로 지어진 전각들이다. 월정사의 중심 법당은 적광전(寂光殿). 진리의 빛이 가득한 고요의 세계를 상징한다. 그러나 적광의 세계를 무색케하는 몇 년째 이어지는 기계톱소리, 망치소리 요란하여 산사의 적막을 깨뜨리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적광전의 주인은 비로자나불인데 비로자나불 대신 대웅전의 주인인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어 의아스럽다. 법당 앞에는 화강암 석재로 만들어진 팔각구층석탑(국보 제48호)이 온갖 풍상의 세월을 고스란히 짊어지고 의연하게 서 있어 이 절의 역사를 홀로 증명해준다. 탑의 각 모서리마다 풍경을 달아 바람이라도 불면 산사의 향기를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