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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 수필
경제적인 진료(下)
마음의 평정을 얻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관조력이 뛰어나야
이재윤
82년 서울치대 졸
현)대구 덕영치과의원 원장

관리자 기자  2003.07.10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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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의도는 검사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고 경제적인 진료를 해야 된다는 이야기이다. 오늘날 의사들이 옛날 명의들에 비해 경제적인 진료를 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관찰하는 습관이 부족하고 감각적인 요소를 소홀히 하는데서 기인하는 듯하다. 의술만큼 경험을 많이 요구하는 학문은 없다. 이론이나 법칙을 안다고 여러 가지 질병을 잘 다스릴 수 없다. 이론이나 법칙은 기본이고 그 위에 증례에 따른(case by case) 진단이 중요하다. 다양한 진료를 한 명의들은 환자의 외형만 봐도 병의 정도를 짐작하고 진맥만 해봐도 병의 종류와 원인을 알 수 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배가 아파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환자가 타임캡슐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서 명의 허준에게 진료를 받는다고 가정해 보자. 의사는 먼저 환자의 용태를 살펴 볼 것이다(시진, 視診). 그 다음 진맥을 해보고 병의 경과와 상태를 물어 볼 것이다(문진, 問診). 그리고 배나 등을 두드려 볼 것이다(타진, 打診). 5분이 지나지 않아 허준은 “위염입니다. 3일만 약을 쓰십시오." 라면서 간단히 처방을 내고 5,000원쯤 받을 것이다. 각종 검사를 모두 생략하고 최대의 경제적인 진료를 할 것이다. 어느 명의에게 “어떻게 하면 명의가 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더니 그는 “단지 잘 보고 치료하면 된다" 고 하였다. 잘 보고 치료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잘 보고 치료하기 위해서는 먼저 실력이 뛰어나야 한다. 치아 형태학도 모르고 발치를 한다면 쉽게 발치를 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열정이 없으면 잘 볼 수 없다. 우리 치과의사들은 AIDS나 SARS도 겁이 나고, 침 튈라, 고름 튈라, 피 튈라 걱정이 되어 보안경을 끼고 멀찌감치 진료를 하기에 잘 보기 힘들다. 또 잘 보기 위해서는 관찰력이 뛰어나야 한다. 마음의 평정을 얻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조력이 뛰어나야 한다. 관찰력은 자연 속에서 생활하면서 얻을 수 있다. 개구리 알이 어떻게 올챙이가 되는지, 헤엄을 치는 소금쟁이가 어떻게 날개를 말고 날 수 있는지 경탄하는 마음으로 오랫동안 보지 않고서는 관찰력이 생길 수 없다. 두둥실 떠가는 뭉게 구름을 누워서 하염없이 바라보고, 타는 저녁 노을을 몇 십분이나 바라보는 습관 없이는 관찰력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도시 빌딩 숲에서는 도대체 관찰할 것이 없다. 설령 도시에서 넓은 정원을 소유했다 하더라도 정원지기에게 열쇠를 맡기고 아침 일찍 출근하여 밤늦게 돌아와야 하는 우리 도시인들에게는 관찰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다. TV를 보면서도 선전이 나오면 재빨리 채널을 바꾸는 조급함 속에서 관찰력이 길러질 수 없다. 컴퓨터 앞에서 능률을 추구하며 마우스 클릭하기에 바쁜 우리들에겐 관찰력이 길러지지 않는다. 우리가 관찰을 소홀히 할 때 전문의는 많으나 명의는 없는 시대가 올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