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네팔여행에서는
만년설로 뒤덮인
히말라야를 결코
빼놓을 수 없다
포카라에서는
이른아침 동트기 전에
사랑코트에
오르면…
일반인 즐길 수 있는 트래킹코스 많아
‘나갈코트’히말라야 일몰·일출로 유명
산악국가 네팔이 우리한테 주는 이미지는 히말라야의 영봉을 짙게 드리운 구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지리적인 신비감과 함께 문화적인 신비감까지 지니고 있는 나라이다.
인도와 같은 힌두교문화권이면서도 세계사의 흐름에서 빗겨진 탓에 네팔의 힌두교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네팔의 경우는 불교를 세운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며 또한 지리적으로 티베트와 가까워 티베트불교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네팔은 언어와 풍속을 달리하는 여러 부족으로 구성됐지만 외부와의 접근이 어려운 험준한 지형 탓에 오랜 세월을 거쳐 다양한 문화들이 동질성을 지켜내게 돼 힌두교사회를 이루게 됐다고 한다.
인종분포로 보아서는 크게 인도의 아리안계와 히말라야의 티베트버마계로 나뉘는데 이중 티베트버마계는 우리와 외모가 거의 비슷해 친근감을 느끼게 되지만 네팔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부족으로는 영국의 용병으로 유명한 용맹스런 쿠르카족을 들 수 있다.
힌두교는 잘 알려진대로 대표적인 다신교이다.
네팔은 ‘신들의 나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신들이 있다.
힌두교에서 대표적인 신은 시바, 비쉬누, 브라마이며 그 외에도 가네쉬, 하누만 등의 수많은 신들이 있는데, 이들 신은 또한 여러 화신들을 갖고 있다.
불교에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지만 힌두교에서는 부처님도 비쉬누의 아홉번째의 화신으로 섬기고 있다.
힌두교의 신들은 초인간적임을 나타내듯이 여러 개의 팔을 가지거나 기괴한 모양으로 그려지기도 하며 하누만(원숭이), 가네쉬(코끼리) 등의 동물 형상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네팔사람들은 이러한 무수한 신들을 섬기면서도 또 하나의 살아있는 여신을 가지고 있다.
‘쿠마리’라고 불리는 이 여신에 대한 전설은 몇 가지가 있지만 네팔인의 현실사회에 등장한 것은 200년 전부터이다.
쿠마리는 카트만두지역의 네와리족에서 보통 4~5세의 여자아이 중에서 선택이 된다.
쿠마리는 신체에서 출혈을 하게 되면 살아있는 신으로서의 자격을 잃게 돼 자연히 초경을 겪게되면 쿠마리로서의 자격을 잃게 된다.
쿠마리는 쿠마리바할이라는 거처에서만 지내며, 축제기간 외에는 외부출입을 않으며 간혹 창가로 얼굴을 내밀어 그의 존재를 확인시키고 있다.
그러나 선택된 여신도 쿠마리로서의 자격을 상실하게 되면 일반인으로 되돌아오지만 아무도 이들을 돌봐 주는 사람이 없어서 불행한 일생을 맞이한다고 한다.
카트만두의 첫 걸음은 두르발광장에서 시작된다.
‘두르발’은 네팔어로 궁전이란 뜻으로 이 주변에는 옛 왕궁인 하누만도카, 카트만두의 어원이 된 카스타만답사원, 얼굴이 붉어질 정도의 에로틱한 조각이 그려진 자가나트사원과 마주데발사원, 쿠마리의 거처인 쿠마리바할 등이 모여 있다.
힌두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농경생활을 하였던 인도의 원주민들한테는 유목민인 아리안족한테는 없는 링가(남성성기)와 요니(여성성기)를 숭배하는 토착신앙이 있었다.
이러한 것들이 후에도 힌두교의 형성과정에 접합돼 힌두교 신들이 배우자와 결합하여 신으로서의 활력을 얻게 된다는 샥티사상의 영향으로 힌두교 사원의 곳곳에는 에로틱한 장면이 많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샥티사상의 산물로는 중국의 소녀경과 비교되는 유명한 인도의 성전인 카마수트라를 들 수 있다.
카트만두 근교의 파탄에 있는 한 사원에는 이름이 아예 카마수트라사원으로 불릴 정도로 사원의 지붕 처마 밑에는 정면으로 쳐다보기에 민망한 조각들로 가득 차 있다.
네팔은 국교를 힌두교로 정했지만 불교인구는 약 10%에 달하고 있다.
네팔에서는 티베트불교 등의 고유한 불교세력도 있지만 일부는 힌두교와 혼합된 형태로 나타난 것도 있다.
카트만두 시내를 흐르는 바그마티강가에 있는 파슈파티나트사원 주변의 화장터는 우리한테 결코 잊지 못할 장면을 보여준다.
“공수래, 공수거”... 시신을 안치한 장작더미 위로 타오르는 불꽃이,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나 결국은 한줌의 흙으로 돌아가거늘 물질의 탐욕 속에 추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들의 속성을 비웃듯이 훨훨 타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한테는 악취가 나는 개천으로 보이지만 똑같은 강물이 네팔사람한테는 일생을 마감하는 자리로서 성스러운 의미를 지닌다.
실오라기 하나만을 걸친 채로 강물에서 목욕하는 사두(성인)의 모습을 보면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많지만 영적으로는 결코 가난하지 않은 이들한테 종교의 무한한 힘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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