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치과의사연맹(FDI)이 오는 8월 15일이면 100주년을 맞이한다.
FDI는 그동안 세계 치의학의 발전과 인류의 구강건강증진에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FDI는 치의학 연구와 각종 정책개발을 통해 인류가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왔으며 저개발국가의 구강보건 향상 프로그램 개발과 구강암 퇴치 및 흡연금지운동
등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인류에게 건강한 삶을 유지 개선토록 노력해 왔다. 이러한 FDI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본지는 수회에 걸쳐 FDI의 이모저모를 알아본다.
<편집자 주>
FDI 위원회
위원회 활동 30개 실무팀서 활발히 추진
레더먼 박사 FDI세계화·확대 이끌어
1962년 최초 지역기구 아태연맹 설립
1972년 호주서 총회열려 세계화 가속
위원회(commission) 구성은 FDI 설립자들이 계획했으며, 엄청난 양의 가치있는 일들이
치의학 전문가들과 임상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수행된 이래 위원회는 속속 구성됐다.
1930년대 초기까지는 11개의 위원회가 구성됐었으나 1936년에는 5개로 줄어들었다.
치의학교육위원회, 예방치의학위원회, 학술연구위원회, 치무병과위원회 등이 전쟁이 끝난 후
열정적으로 활동을 재개했고, 1953년 구강건강상태에 대한 분류와 통계에 관련된 위원회가
구성됐다.
치과기자재 및 치료법에 관련된 위원회가 1963년에, 치과개원에 관련된 위원회가 1964년에
각각 구성됐다. 이 위원회들의 활동은 1978년경 2백50명 이상의 치과의사가 30개 이상의
실무팀에서 활발히 활동할 정도로 확대됐다.
당연히 이들 위원회의 활동은 상당 부분 겹치게 됐고 재원 등이 낭비됐기 때문에 1978년
그들의 업무를 4개의 위원회(▲the Commission on Oral Health, ▲Research &
Epidemiology, ▲the Commission of Dental Education & Practice, the Commission on
Dental Products, ▲the Commission on Defence Forces Dental Service)로 압축하기로 했다.
세계적인 조직
레더먼(Leatherman) 박사는 23년간의 지도자 생활과 FDI의 활동을 발전시킨 후 1975년
은퇴했다. 그는 규모가 크고 번영하는 국제 조직을 만들어 놨다. 그는 위원회의 업무를
조정했고, 성공적인 국제적 회합을 감독했으며, FDI의 세계적 활동의 확대를 이끌었다.
1962년 최초의 FDI 지역기구인 아태치과연맹(Asian-Pacific Dental Federation)이 FDI 조직
내에 정식으로 설립됐고 이어 몇 년 후 유럽 지역기구와 라틴아메리카 지역기구, 북미
지역기구, 아프리카 지역기구가 속속 설립됐다.
1973년 최초로 호주 시드니의 南햄프셔에서 총회가 열렸다. 이 총회는 또한 해럴드
힐렌브랜드 박사의 FDI 회장직의 말년이었고 레더먼 박사의 은퇴를 앞두고 있었다. 아마도
이전 20여년간 FDI의 재설립과 현대화에 책임을 지고 이끌어온 것은 그들이었을 것이다.
하나의 세계
1980년대에는 FDI는 더 이상 유럽과 북미 중심이 아니었으며,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
정기적으로 총회가 열림에 따라 이 지역들의 활동이 늘어났고 회장 등 리더를 맡는 빈도도
증가했다.
1981년 총회는 「구강보건 2000을 위한 FDI의 목표」를 채택했고, 1982년 80개 국가가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며, 세계보건기구(WHO)와의 공동연구도 증가했다.
4개 위원회의 업무는 광범위하게 지속됐다. 또한 Chief Dental Officers, Dental Deans &
Educators, Dental Editors 등을 포함한 새로운 특별 이익집단이 생겨났고 이러한 현상은
수행되고 있는 국제적 활동이 계속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