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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높으신 분들에게
김영진(본지 집필위원)

관리자 기자  2000.09.2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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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원래 농촌에서 촌놈으로 태어나서 어렸을 적부터 갖가지 농사를 짓는데 매우 익숙해 있었답니다. 근본적으로 농사란 땀과 정성을 모아 쌓아올린 결정체와 같은 것입니다. 밑거름을 두둑히 준 다음 적절한 시기를 골라 파종을 하고 싹이 트고 나면 알맞은 간격으로 묘종을 옮겨 심어야지요. 그리고 좋은 날씨가 계속되기를 기원하면서 물과 거름을 적당히 주고 영양분을 빨아 먹는 잡초를 뽑고, 가뭄에 땅이 터서 뿌리가 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호미질을 해야 합니다. 이토록 힘든 과정을 거듭해야만 맛있는 열매를 잉태할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이 진 이후로도 그루가 균형 있게 잘 자라도록 가지치기를 하고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과실이 열려 개개의 열매 모두가 건실하게 되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타깝지만 일부는 솎아내야 합니다. 그리고 험한 날씨에 쓸리거나 다치지 않도록 잘 보살피고 질병과 해충으로부터 정성껏 보호해야 기다리던 풍요의 계절에 알찬 열매를 수확할 수 있지요. 아무렇게나 팽개치듯 씨를 뿌려놓고 성심껏 가꾸기는커녕 평소엔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서 때로는 마구 짓밟다가 그나마 몇 잎 붙어 있던 잎사귀마저 뜯어내어 당나귀 먹이로 쓰고는 어느날 갑자기 물을 퍼부으며 알찬 열매를 꿈꾸는 심사는 도둑놈의 그것과 진배없답니다. 의료보험을 통하여 저렴한 비용으로 국민건강을 증진시킨다는 미명의 씨앗을 뿌린 후 지난 수십년간 의료인들에게 양심과 애국을 부르짖으며 우리 의료체계가 건실한 줄기로 자라는 것을 짓밟아 놓고 터무니없는 강제수가와 미적격자들에 의한 의료기관 실사라는 가슴 저미는 양날의 寶刀(보도)로 의료인들을 억압해 왔지요. 해서 소신이라는 가녀린 줄기로 버텨온 의료계가 너무도 나약해 보이기에 의약분업이라는 소나기를 갑자기 퍼붓고 善政(선정)이라는 열매를 따려 하셨나요? 뿌린대로 거두고 가꾼대로 수확하는 것은 천하의 이치입니다. 우리 의료계의 뿌리와 줄기가 제대로 되어 있는지 한번 살펴보실 경황은 있으신가요? 참된 의료발전 대책이 무엇인지 검토하실 식견은 있으신가요? 마지막 파이를 앞에 두고 식탐에 바쁘신 건 아니겠지요. 긴긴 겨울잠이 다가오자 먹이밖에 염두에 없는 가을 개구리들처럼 추해 보이는 우를 차마 범하진 않으시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