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림의 <힘든 세상, 도나 닦지>에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산중에
있는 나무들 가운데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잘려서 서까래 감으로 쓰이고 그
다음 못생긴 나무가 큰 나무로 자라서 기둥이 되고, 결국 가장 못생긴 나무는 끝까지 남아서
산을 지키는 고목나무가 된다는 인상적인 비유다. 이 비유는 능력이 모자랄지라도 느긋하게
살다보면 결국 그 꾸준함을 인정받게 된다는 교훈을 준다. 세간에 있는 듯 없는 듯이 숨어서
일벌처럼 일하는 사람들의 성공담이 심심찮게 전해진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역설은, 곧고 잘 생긴 나무를 꼭 잘라야 하는가 하는 점에 있다. 잘 생긴
나무가 오래 남아 산을 지키면 훨씬 수려한 경관을 이룰텐데 말이다.
이 이야기는 민속 우화인 <토끼와 거북이>와 일맥 상통한다. 빠르고 똑똑한 토끼가 자기
능력을 과신한 결과, 느리긴 해도 최선을 다하는 거북이한테 진다는 이야기는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 고착된 보편적 규범이다.
그런데, 어떤 여교사가 미국의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거북이가
성실한 자세로 이기기는 했지만 잠들어 있는 토끼를 깨워 공정한 경쟁을 하지 않은 것은
비겁하다는 반론이 나왔다고 한다.
"만약 잠들어 있는 토끼를 깨워 경기를 하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 이런 질문은 우리에게
오히려 낯설다. 공정한 경쟁만이 진정한 가치를 형성하는 구미의 판단 체계와 현저한
차이점을 드러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잘생긴 나무나 능력 있는 토끼가 별로 인기를 얻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민족 정서가 지닌 일종의 "평균의식"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농경 사회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 온 우리의 생활 전통은 매사에 적절히
융화할 수 있는 평균인간을 지향하였다. 너무 잘났거나 못난 사람은 주위와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고 결국은 그런 사람을 배제시키는 의식에 길들어졌다는 것이다. 함께 모내기하고
추수해야 하는데 독특한 정신 세계에 몰입해 있거나, 몸이 성치 않아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돌려세웠던 것은 현실적으로 자연스러운 일이기는 했을 것이다.
"독 속의 게"라는 말이 있다. 독 속에 여러 마리의 게를 집어 넣었을 때, 한 마리씩 차례로
기어오르면 모두 기어오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먼저 기어오르는 게의 뒷다리를 잡아서
끌어내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모두 독 속에 주저앉고 만다는 것이다. "독 속의 게"는, 어느
누구도 특별히 솟아서는 안되며 균등한 처지에서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자는
태도를 풍자하고 있다.
평균의식은 특수한 상황을 무시한다. 지체부자유를 깔보는 버릇, 천재를 소외시키려는 생각은
같은 맥락에 있다.
독창적이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현재의 벤처 문화나 창업의 의지에 이 미묘한
평균의 의식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근의 의약분업 사태와 남북 대화의 진행에 있어서도 이러한 심리가 현실의 불합리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정말로 "쓸만한" 사람과 "쓸만한" 아이디어가 사장되어 버리는 비극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불안이 널린 사회에 비전을 지닌 사람들이 지도자가 되어 밝고 평화로움을
만들기 위해서는 위에서 예를 들었듯 못생긴 나무들만이 무성하게 자라 온 산을 뒤덮는 것
같은 상황을 특히 지식인
사회에서는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문화복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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