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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평생 나환자사랑 `空手去"
박재훈 前대구회장

관리자 기자  2001.01.1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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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것 모두 사회에 바쳐” 연금도 사회로 `무소유 삶" 하얀 눈같이 한평생을 깨끗하게 숭고한 삶을 살다간 치과의사 朴載壎(박재훈) 前대구지부 회장. 지난 4일 일흔셋의 나이로 타계한 그가 살아있는 가족들에게 남기고간 것이라곤 초라하기만한 전셋집 한칸과 평소 무료봉사를 나갈 때 신었던 운동화 한 켤레, 그리고 수년간 입은 것같은 단벌 양복이 전부였다. 치과원장이라는 사회적 지위에 있으면서도 철저하게 무소유의 삶을 살다가 지난 여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난 부인 곁으로 쓸쓸하게 떠난 故人(고인)이 남기고 간 것은 비록 적지만 그가 보여준 삶은 아름답기만하다. 평북 영변이 고향인 고인은 1953년 3월 서울치대를 졸업(7회)하자마자 한국전쟁에 군의관으로 종군하던 중 하복부를 심하게 다치면서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을 맡게된다. 이때 입은 상처로인해 2세를 둘 수 없다는 판정으로 깊은 실의에 빠진 박씨에게 당시 간호장교였던 故유명조씨의 격려는 평생동안 의료봉사의 길을 다짐하며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부인은 이때부터 고인과 함께 평생 의료봉사를 함께하는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1963년 대구 동촌에서 치과의원을 개원한 朴원장은 일주일에 한번씩 성주, 외곽지역의 나환자촌을 찾아 당시 거들떠 보지 않던 나환자들의 치아를 치료했으며 울릉도 등지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 의술을 펼쳤다. 또한 라이온스 활동을 통해서 봉사를 실천했으며 자신의 병원 수익금을 수시로 복지시설에 나눠주기도 하고 정부로부터 받는 종신 원호금과 개인연금까지도 사회시설에 기탁하는 초연함을 보였다. 평생동안 고인을 지켜본 대구 金湳柱(김남주) 원장은 “치과의사로서 고인만큼 봉사활동을 했던 분은 많지 않을 것”이라며 “고인의 봉사자세는 주변사람들의 귀감이 된다”고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다. 이러한 봉사를 실천한 고인은 최규하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상했으며 73년도에는 치협 협회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고인은 지역치과의사회에서도 모범을 보여 경북지부 총무이사와 부회장, 대구지부 회장 등을 역임하면서 희생적으로 봉사해 치과계 권익신장을 위해서도 활동하기도 했다. 주변 사람들에 의하면 평생 봉사를 실천하던 고인은 남은 것을 사회에 모두 내놔 정작 본인의 지병인 당뇨병 치료비를 남기고 떠났다며 고인의 숭고한 삶을 되세겼다. 지난 6일 치러진 장례식에는 “남에게 폐가되니 訃音(부음)을 돌리지 말라”는 고인의 유언대로 양아들로 맞아들인 박원장 친동생의 아들 만식씨와 박원장의 여동생, 그리고 그를 존경하며 따르던 몇몇 치과의사 등이 그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엄숙하게 지켜봤다. <이윤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