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여자’ 공연 준비 분주
낮에는 환자보랴 밤에는 연습하랴
연이은 강행군에도 연극 사랑 ‘애틋’
지지고, 볶고, 울고, 웃고 위기일발 상황
헤치며 가족만큼 끈끈한 사이로 거듭나
“어떻게 된 일이에요? 당신한테 여자라도 생겼단 말이에요?”
남편은 내게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했다.
“그렇소, 모니크.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소.”
그 순간 우리들은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온통 얼어붙었다.
“당신이 날 배반하면 난 자살할 거야. 아니 당신이 날 배반하면 난 자살할 필요도 없을 거예요. 슬픔 때문에 저절로 죽게 될 테니까.”』
내게는 그 사람이 전부였다.
지난 99년 10월 말경 창립 공연 ‘세일즈맨의 죽음’을 무대에 올림으로써 세간의 주목을 한 눈에 받기 시작한 ‘DENTAL THEATER(연극을 사랑하는 치과인 모임·이하 연사모)’가 2000년 제2회 ‘안띠곤느’공연, 2001년 제3회 ‘꽃마차는 달려간다’ 공연에 이어 다음달 30일부터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제4회 ‘위기의 여자’를 무대에 올린다.
프랑스의 여류작가, 시몬드 보부아르 작 ‘위기의 여자’는 한국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중년부부의 삼각관계를 소재로 남편, 아내, 남편의 애인 사이에 펼쳐지는 애정의 미묘한 갈등을 다룬 소설이다.
이번 공연내용에 흥미를 느낀 기자가 이들 연사모 단원들의 연습현장을 찾은 것은 지난 21일 월요일 저녁 갑자스레 스산해진 날씨 덕에 옆구리가 무척이나 시리던 날이었다.
따끈한 오뎅 국물에 빠알간 떡볶이, 갓 익혀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대로 간단히 배를 채운 뒤 달달한 팥고물이 사르르 입안으로 녹아드는 붕어빵 한 봉지를 옆구리에 끼고 영화나 한편 보러가자는 친구의 솔깃한 제안을 못내 뿌리치고 굳이 연습현장을 찾았던 건, 기자 역시 연사모 단원에 합류하고 싶었던 속내를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사모의 시작은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 데뷔한 후 극단연우무대의 대표를 역임하는 등 연극계의 원로로 잘 알려진 오종우 원장이 지난 99년 연사모 단원을 모집하면서부터다.
오 원장은 학창시절 동아리 활동 등을 통해 연극무대에서 뜨거운 열정을 쏟았던... 그래서 아직까지도 가슴 한켠에 연극에 대한 주체할 수 없는 열정을 간직하고 있는 각 치대 출신 개원의들을 수소문해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이후 연사모 단원들은 매해 공연 때가되면 낮에는 치과의사로의 본업을….
저녁이면 진료가운을 벗어버린 채 늙고 보잘것 없는 외판원으로, 때론 오이디프스의 딸 안띠곤느로, 또 익살스런 경비병에서, 부인의 망혼을 잊지 못하는 장의사로, 불륜을 행하는 남편으로, 연극의 기획자로 연출자로 수없이 자신들을 탈바꿈 해오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엔 언제나 위기가 따르기 마련이다.
한편의 연극이 시작되면 막이 내려질 때까지, 낮에는 진료를 이후에는 한밤중까지 연극연습을 강행군해야 하니 이 기간에는 속된 말로 뼛골이 빠진다.
뿐만 인가 그런 와중에 자기주관이 뚜렷한 스탭들 간에 마찰을 빚어지기도 하고 때론 애써 캐스팅 했던 배우가 펑크를 내기도 하고 언제나 위기 일발이다.
하지만 이러한 마찰이나 위기상황들을 함께 헤쳐나가면서 이들은 더욱 끈끈하고 허물없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싸우고 웃고 뒹굴며 만들어진 연극이 무대에 올랐을 땐 너나없이 하나가 돼버린다.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은 언제나 ‘즐거운 지옥’이다.”
지지고 볶고 웃고 울면서... 그만하면 지칠 만도 한데, 언제나 또 다시 새로운 작품에 도전할 수 있는 건 언젠가 오종우 원장의 표현대로 연극쟁이들은 ‘즐거운 지옥’... 그 자체를 즐길 줄 알기 때문이다.
기자가 연사모 단원들의 연습현장을 찾은 날은 배우들이 4회 공연인 ‘위기의 여자’ 대본 연습을 위해 연출을 맡고있는 민원기 원장의 치과에 모이기로 한 날이었다.
배우들이 모이기전에 잠깐 동안 민 원장과 대화를 나눴다. 민 원장은 경희치대 연극동아리인 ‘연경’ 출신으로 학창시절 조연출에서부터 배우까지 다방면에서 활동을 해왔던 경험이 인연이 돼 연사모의 일원이 됐다.
“학창시절엔 동아리 선배들이 밥 사준다고 따라가서 밥을 얻어먹고 나면 밥 얻어먹었으니 우리 연극 동아리 들어라… 싫으면 대신 몇 대 맞던가… 하는 식으로 반 강압적으로 동아리에 가입하곤 하는 경우가 다반사죠.”
“하지만 지금의 연사모는 선·후배간의 관계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에 상관없이 정말로 자신이 연극을 좋아하고 열정을 지닌 매니아들이 모였다는데 의의가 있어요.”
민 원장은 이번 공연의 연출진답게 연사모의 정체성을 걸죽하게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명기구, 소품, 무대장치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