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부동산 투자로
억대 부자대열 올라
증권사서 스카웃 제의
학창시절때 개원10년후
제2의 인생 살겠다고
다짐 끝내 결심 실천
10여 년간 환자들의 구강질환을 치료해오던 치과의사가 어느날 갑자기 환자가 아닌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고객들의 경제적 주치의를 자처하고 나서 화제다.
현재 삼성증권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부문의 박만규 웰스 매니져(Wealth Manager)는 단국치대를 졸업한 전직 치과의다.
이제 그가 치과의사였단 사실을 입증해 줄수 있는 건 그가 건넨 명함 속에 ‘치의학 박사’라고 새겨진 다섯글자뿐.
박만규 씨는 지난 9월초 삼성증권에 입사 면접 치르고 나서 채용이 확정되자 10여년을 넘게 진료 해오던 충남 천안 소재의 치과를 미련 없이 정리하고 이달 중순경부터 청담동 소재 삼성증권사에 웰스 매니저란 직함을 달고 정식 출근하고 있다.
웰스 매니저란 금융자산가, 즉 증권사의 입장에서 볼 때 우량고객들의 고액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이를 안전하게 투자, 운용해 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박 씨가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다른 분야인 웰스 매니저로 증권가에 뛰어 들게 된 건, 남들보다 뛰어난 자산관리 능력 때문이었다.
박 씨의 자산을 맡아서 관리해 주던 삼성증권사 직원이 박 씨를 두고 오히려 ‘재테크 고수’라고 추켜 세울 정도니 박씨의 재테크 감각이 도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궁금해졌다.
기존에 여유자금을 조금씩 굴리는 정도로 재테크를 해오던 박씨가 본격적으로 재테크에 뛰어들게 된 건 지난 97년 말 IMF 당시,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손을 댔다가 병원까지 날리는 동료의사들을 보고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체계적인 계획하에 주식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한 박씨는 IMF 당시 내릴 대로 내린 국내 우량기업들의 회사채와 주식을 사들여 연 30%가 넘는 수익을 올렸고 이어 9.11테러 당시 모 전자주식을 사뒀다가 되팔아 3배 이상의 수익을 남기기도 했다.
그덕에 박씨는 “이제 치과의사를 하지 않고서도 먹고 살만큼 돈을 모았다”고 자신한다.
이제 박씨의 꿈은 증권, 더 크게는 금융가를 아우르는 CEO가 되는 것이다. 나름대로 사업 구상도 해 놓고 있다.
박씨에게 재테크 노하우를 슬쩍 물었다.
그랬더니 박씨는 “경제신문을 거르지 말고 늘 가까이 두고 보면서 거시경제지표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박씨는 또 “함부로 주식에 뛰어 들지 말라”고 경고했다.
개인이 독자적으로 주식투자에 뛰어드는 일은 불나방이 불을 보고 뛰어 드는 것과 같으며 광화문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해서 걷는 것과 마찬가지란다.
불을 보듯 뻔하게 불타죽거나 차에 치어 죽을 것이란 극단적인 표현이다.
무턱대고 뛰어들기 보단 그만큼 안전장치를 철저히 하란 충고다.
그러면서 박씨는 “웰스 매니저가 바로 광화문 8차선 도로 위에 횡단보도를 긋고 교통신호 체계를 세워 잘 건어 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며 다시 한번 자신이 하는 일을 집어줬다.
박 씨는 또 “현재 치과의사로 근무하고 있거나 전문가 집단에 속해있는 사람들에게도 웰스 매니저가 제2의 직업으로서 충분히 고려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귀뜸 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박 씨가 유일하게 전문직 출신으로 외부에서 영입된 1호 웰스 매니저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직업인들이 전문직 종사자 집단이란 튼튼한 인적네트워크 혹은 DB를 바탕으로 PB 시장에 많이 진출하고 있는 추세며, 머지않아 우리 나라에서도 점차 각광받고 주목받는 분야로 성잘 할 것으로 전망하고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웰스 매니저가 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금융관련 자격증 취득, 인적네트워크마련,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설명했으며 그 자신도 “입사 전 이미 금융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고 지금도 업무가 끝난 후엔 지인을 만나거나 일의 흐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치과의사가 학술이나 임상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꾸준히 세미나에 참석하고 공부를 해야 하는 것처럼 이일 역시 업무능력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노력을 통한 끊임없는 자기 개발이 필요하다.
박씨는 인터뷰 말미에 “학장시절부터 10년 정도 개원을 하고 그 다음엔 치과의사로서의 일을 접고 꼭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하곤 했다”며 제 2의 인생을 미리부터 계획하고 있었단 사실을 강조했다.
사람들이 현재 자신의 삶이 힘에 겹다고 불평불만을 일삼으면서 현실을 개척하려 노력하기 보단 그 삶에 안주해 버릴때 그 순간에도 그는 제2, 제3의 삶을 꿈꾸며 끊임없이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렇게 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