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수가 계약이 지난해에 이어 또 결렬됐다. 지난 15일, 법정 최종시한인 이날 요양급여비용협의회(위원장 鄭在奎)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사장 李相龍)간의 마지막 협의 과정에서 공단은 환산지수를 50.02원을 고수하며 한발자국도 양보를 하지 않는 바람에 협상이 끝내 결렬된 것이다.
여기서 과연 공단측은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있었는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협상이란 자신의 주장만을 고수하는 자리가 아니다. 서로 다른 견해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끼리 만나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한발씩 양보할 자리를 만들어 가는 것이 협상이다. 물론 서로 견해차이가 너무 클 경우에는 협상이 결렬되곤 한다. 그러면 과연 올해에도 공단은 협의회의 주장과 너무나도 커다란 견해차이가 있어 결렬시켰는가.
여러 정황으로 보아 그것은 아닌 것 같다. 공단은 처음부터 타결할 의지가 없었지 않았는가 한다.
다시 말하자면 보건복지부와 의약인단체들이 공동 출연하여 연구한 결과가 나온 이후부터 협상의지가 없었지 않았는가 한다. 이번에 서울대 경영연구소 및 보건사회연구원 등이 공동 연구한 원가분석 환산지수 결과에 따르면 물가 상승률 3%를 반영했을 때 적어도 64.4원이 돼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부터 공단은 협상의지를 접었지 않았는가 한다.
만일 공단이 협상의지만 있었더라면 협의회 측은 현행수가인 53.8원 이상으로 탄력적으로 접근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공단은 현행수가 보다 7% 인하된 50.02원을 고수한 것이다. 결국 올해 의약계가 겪었던 2.9% 인하에 이어 또다시 의약계의 희생을 강요하는 7% 인하안을 관철시키겠다는 결심이었다. 물론 건강보험 재정을 위한 주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정안정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없이 일방적으로 의약인의 희생만을 강요할 경우 또 다시 의약인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 아닌가.
정부 당국이 의뢰한 연구결과까지 무시한 공단의 무성의한 협상자세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받아들이고 불리하면 무시하고자 비싼 용역비를 주고 연구한 것이 아니다. 상호간의 공신력 있는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연구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단은 연구결과를 무시했다. 과연 공단의 상급기관인 복지부가 출연한 연구 결과까지 무시할 정도로 공단이 독립적이었나도 생각해 볼 일이다.
어쩌면 공단은 협의회가 받아들일 수 없는 선을 제시하여 일단 협상을 결렬시킨 후 시민단체 등이 포함돼 있는 건정심에 그 바톤을 이어 줌으로써 연구결과에 밀려 수가를 인상해 줬다는 비난과 그로인한 재정압박의 책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속셈을 가졌을 수도 있다.
그리고 의약계로부터도 자신이 결정한 수가가 아니니 만큼 결과에 대한 비난을 피해볼 요량이었을 수도 있다. 만일 그 정도로 무책임하다면 공단은 앞으로 협상 대상자로 나설 필요가 없다. 만일 앞으로도 협상 파트너로 나설 권한을 유지하고자 한다면 지난해에 이어 올해와 같은 협상자세는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