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상의 파노라마Ⅲ
루이 알튀세: 맑시즘, 구조주의, 인식론<2>
과학과 이데올로기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의 무의식적 법칙성을 깨닫지 못한채 스스로를 ‘주체"로서 세운다. 즉 ‘사회적 자아의 허위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알튀세의 사유는 한편으로 이 이데올로기/허위의식을 폭로함으로써 부르주아 사회 및 그 사회를 떠받치는 사상들을 비판하고, 다른 한편으로 사회 ‘구조"에 대한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혁명이론을 제시하려는 사유이다. 여기에서 알튀세 사유의 구조주의적 측면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알튀세의 이런 생각의 바탕에는 (그의 스승인) 바슐라르의 인식론이 짙게 깔려 있다. 바슐라르에 따르면 과학과 전(前)과학은 날카롭게 구분되어야 한다. 전과학은 우리가 세계에 대해 막연하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 일상세계 속에서 가지게 되는 표상들, 관념들, 편견들, 한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생각들 등으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과학적 인식을 방해하는 ‘인식론적 장애물들"이다. 과학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이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인식론적 단절"을 이루어야 한다(프리스틀리와 라부아지에 비교).
따라서 상식의 세계와 과학의 세계는 엄밀하게 구분된다. 전자가 ‘이미지들"의 세계라면 후자는 ‘개념들"의 세계이다. 과학은 경험의 세계와 단절됨으로써만 과학으로서 성립하는 것이다.
알튀세는 이런 바슐라르의 입장에 의거해 이데올로기인 헤겔 사유와 과학인 맑스 사유를 구분하는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이 점에서 맑스로부터 헤겔로 나아갔던 프랑크푸르트 학파, 실존적 맑시즘과 대조된다.
알튀세는 초기 맑스와 후기 맑스 사이에는 결정적인 인식론적 단절이 있다고 말한다. 초기 맑스는 경험주의 및 헤겔주의의 그늘에 있었고 때문에 그의 저작들에는 ‘인간 소외"가 중심을 차지한다. 즉 아직까지도 자본주의에 대한 감상적인 투쟁이나 ‘인간 해방"의 개념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1845년의 『포이에르바하에 대한 테제』 및 『독일관념론』을 분기점으로 맑스의 사유는 인식론적 단절을 이룬다. 초기의 ‘자유주의적 인간주의"는 사라지고 이제 ‘생산력", ‘생산관계"에 대한 과학적 분석이 이어지며, 이전의 인간주의적 사유들은 ‘상부구조", ‘이데올로기"로서 분석된다. 맑스는 (훗날 바슐라르가 정식화했듯이) 인식이란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며, 그런 인식론적 통찰 위에서 자신의 정치경제학을 세울 수 있었다.
알튀세는 흔히 지적되는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이 아니라 맑스 사유에서의 인식론적 단절을 지적함으로써 헤겔과 맑스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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