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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사회복지관서 장애인 무료봉사
인천 남구 박민갑 원장

관리자 기자  2003.04.28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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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치의 9명과 장애인에 인술 베풀어 “세상은 간이역…소유 집착하지 않아요”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제2의 천형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사회에서 그들은 분명 소외받고 있다. 물론 예전보다 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적극적이고 편견도 개선된 점이 있지만, 아직까지 사회에서 그들이 넘어야할 장애물은 많고 험난하기만 하다. 특히 장애인들이 다른 선진국처럼 혜택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분야중 하나가 의료분야다. 등록인구만 100만명에 육박하는 장애인들을 전문적으로 치료해주는 기관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을 두 번 아프게 하고 만다. 이 같은 실정에서 10여년동안 장애인들에게 무료로 인술을 펼치는 치의가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지난 94년부터 매주 토요일 인천 연수동의 사회복지관에서 장애인 무료진료봉사를 해온 朴敏甲(박민갑) 원장. 취재요청을 하자 처음에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며 거듭 사양하던 朴 원장은 평소 산행을 즐기는 ‘山人(산인)’ 답게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치과의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풍족한 삶을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베풀며 살아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요.” 朴 원장을 비롯한 인천시 치의 9명(김의수, 차민섭, 송주헌, 구제훈, 임성진, 심홍보, 하태진, 이계혁 원장)은 매주 순번제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통증치료, 치석제거, 스케일링 등을 무료로 실시하고 있다. 朴 원장이 처음 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근처 장애인들이 다니는 교회에서 요청을 받아서부터였다. 이후 연수동에 있는 복지관으로 장소를 옮기면서 혼자 활동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우선 동문인 연대치대 출신 7명으로 시작했다. 10년동안 다른 곳으로 가서 개원하는 원장도 있었고 활동을 그만두는 원장도 있었지만, 朴 원장은 꿋꿋이 자리를 지켜왔다.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정식치료시설이 아닌 복지관에서 진료를 하다보니 보조인력의 전문성이 떨어지고 시설도 노후했다고. 보다못한 朴 원장이 (주)신흥 게시판에 도움을 요청하는 글을 남겼고, 몇 년전 중고 유니트 체어 한대를 지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고장이 잦아 안타깝다고 朴 원장은 설명한다. 주위사람들의 편견도 朴 원장에게는 부담이었다. 15살의 조울증환자를 치료할 때였다. 박원장은 치료직후 보철의 필요성을 느껴 부모에게 병원위치를 알려주며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 말에 부모는 朴 원장이 소위 ‘장사홍보’를 한다고 오해했다. 이후 연락도 없고 찾아오지도 않는 그 아이와 부모. “그런 시선들은 어차피 세월과 함께 흘러버리는 것”이라며 웃는 朴 원장의 섭섭한 속내를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어려움에도 朴 원장이 9년을 계속해서 무료 봉사를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기자의 질문에 朴 원장은 엉뚱하게도 먼저 산 이야기를 꺼냈다.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네팔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고산증에 시달리고 할 때 현지인 ‘셀파’ 한 명을 만났습니다. 주점에서 맥주를 한 잔 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물끄러미 쳐다보는 겁니다.” 朴 원장은 그를 불러 생전 처음 맛본다는 맥주를 한 잔 따라주며 물었다고 한다. 닭 두 마리 키우고 농사짓는 당신은 행복하냐고. “물론”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그를 보며 朴 원장은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 “그 친구 생각하면 행복이라는 개념이 참 상대적이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朴 원장은 무엇을 소유한다는 개념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누군가와 ‘나누는’ 행위를 실천해왔다고. 朴 원장은 진료 소감을 묻는 질문에 “나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이 함께 참여해서 가능한 일"이라면서 “인터뷰는 대표로 하지만 나는 단지 진료단의 일원일 뿐”이라며 공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시간과 장소에 지나치게 구애를 받기 때문에 앞으로는 간단한 치료는 진료소에서, 보철이후의 과정은 각자의 병원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朴 원장은 밝혔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봉사의 의미를 묻는 기자의 우문에, 朴 원장은 “夫天地者는 萬物之逆旅요 光陰者는 百代之過客이라 而浮生이 若夢하니 爲歡이 幾何오(대저 천지라는것은 만물의 나그네 집이요, 일월이란 백대의 지나가는 손님이라, 뜬 인생이 꿈과 같으니 환락함이 얼마겠는가)”라며 이백의 春夜宴桃李園序(춘야연도리원서) 첫구를 들어 현답했다. “어차피 이 세상은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간이역 같은 곳입니다. 이 곳에서 조금 더 가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남들에게 나눠주며 살아야겠습니다”라고. 윤선영 기자 young@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