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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알튀세 : 맑시즘, 구조주의, 인식론<5>
이정우 원장

관리자 기자  2003.05.1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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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과 중층결정(상) 알튀세가 교조적 맑시즘의 경제결정주의를 비판했음을 보았다. 그렇다면 알튀세는 어떤 인과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일까? 알튀세는 ‘중층결정"을 제시한다. 알튀세는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해 논한다. 헤겔에게서 세계는 ‘정신(Geist)" 또는 ‘절대정신"의 자기전개이다. 즉 궁극적 실체는 절대정신이며 그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조금씩 전개하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그 전개는 밋밋한 펼쳐짐이 아니라 (오늘날의 개념으로 하면) 특이성들을 내포하는 즉 마디들을 내포하는 전개이다. 그 마디들을 헤겔은 ‘계기(Moment)"라 부른다. 그런데 이 계기는 다름 아닌 모순들이다. 역사의 원동력은 ‘모순(Widerspruch)"이다. 두 개의 모순이 갈등과 투쟁을 일으키고 그 갈등과 투쟁을 통해서 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가 도래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절대정신을 스스로를 전개하는 것이다. ‘역사"란 바로 이렇게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펼치는 과정(Geschehen)이다. 알튀세는 이런 헤겔의 사유를 비판하며 특히 그 ‘총체성" 개념이 비판된다. 헤겔에게서 시간과 모순이 강조되지만 절대정신 속에 이미 새겨져 있는 각본에 따라 펼쳐지는 시간과 모순은 진정한 시간과 모순이 아닌 것이다. 헤겔에게 세계는 절대정신이 ‘외화"되고 ‘소외"된 것이며(따라서 헤겔에게서 세계는 근본적으로 마이너스로 표상된다. 기독교와 비교), 따라서 세계의 전개는 적극적인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회복의 성격을 띤다. 그렇기 때문에 계기들과 모순들을 그들 자체로서 다루어지기보다는 이미 짜여진 실타래의 매듭들로서만 기능하게 된다. 알튀세는 이런 헤겔의 모순론과 맑스의 모순론을 다르다고 본다. 우선 헤겔에게서 실재는 정신/이성이며 정신/이성의 운동이 역사이다. 그러나 맑스에게서 실재는 물질이며 물질의 운동이 역사이다(이 때 사적 유물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을 구분할 것). 헤겔이 실재로 본 것은 맑스에게서는 ‘상부구조"에 불과하다. 헤겔의 총체성은 결국 사회와 역사를 등질화하고 단순화한다. 때문에 알튀세는 사회적 복수성(multiplicity)과 복합성(complexity)을 자체로서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알튀세는 이런 맥락에서 ‘구조화된 사회 전체(un tout social structur )"에 대해 언급한다. 여기에서 ‘사회 전체"라는 말은 "명목적" 의미를 가진다. 즉 헤겔의 총체성과 다르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구조화된"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곧 한 사회가 여러 계열들/심급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계열들/심급들의 복수성과 복잡성을 상세히 파헤쳐야 함을 뜻한다. 다른 한편으로 알튀세는 자유주의/자본주의에서 강조하는 개인과 사적 소유 개념 역시 비판한다. 근대 정치철학에서의 ‘개인" 즉 소유권을 가진 경제적 주체로서의 개인은 그릇된 개념이다. 각각의 개인은 이미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구조 속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된다는 근대 주체철학적 사유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요컨대 알튀세는 한편으로 헤겔적인 총체성을 비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를 비판한다. 결과적으로 사회와 역사는 형이상학적 총체성이나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여러 계열들/심급들이 일정한 관계들의 체계를 구성하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철학아카데미 02)722-2871 www.acaphil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