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여러 결정성들(determinations)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총체이다. 알튀세는 여기에 복수성과 복잡성 외에 ‘비동등성(inequality)"을 도입한다. 이것은 상식적인 의미에서의 불평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계열들/심급들의 위상이 동등하지 않음을 뜻한다.
때문에 각 심급들에서의 모순 역시 동등하지 않다. 그래서 결국 알튀세에게 있어 모순은 복합적-구조적-비동등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마오처뚱은 ‘주모순(主矛盾)"과 ‘부모순(副矛盾)"을 나누었으나, 알튀세는 이런 구분을 좀더 다원화고 좀더 역동화한다. 사회의 여러 모순들은 때로 역할을 바꾸고, 또 때로 교차함으로써 응축되기도 한다. 알튀세는 이를 라캉을 따라 ‘변위(deplacement)", ‘응축(condensation)"이라 부른다.
알튀세는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한 이론을 통해서 러시아 혁명을 분석한다. 왜 맑스의 예상과 달리 후진국인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났는가?
헤겔적 총체성의 거부와 비동등성, 복수성, 복잡성의 원리에 따라 알튀세는 당대 러시아가 여러 가지 형태의 ‘실천양식들"로 분절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지식인들의 ‘이데올로기적 실천양식", 혁명가들의 ‘정치적 실천양식", 사제들의 ‘종교적 실천양식", 지주들의 ‘봉건적 실천양식" 등이 그것이다. 이런 여러 실천양식들이 중층적 모순을 형성하고 중층결정을 통해서 러시아 혁명을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알튀세는 실천양식들, 심급들, 계열들의 복수성, 그리고 맥락에 따라 변하는 비동등성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최종 심급"은 경제적 심급이라고 말한다. 즉 경제중심주의의 단순한 인과는 거부하지만, 그럼에도 최종적인 심급은 역시 경제적 심급인 것이다.
그렇다면 경제-심급은 어떤 방식으로 최종 심급으로서 작동하는가? 경제는 다른 심급들에 단적으로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마치 프로이트에서 성욕이 직접 나타나지 않고 꿈이나 ‘착오"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나듯이, 경제도 복잡한 중층결정을 통해서 우회적 원인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구조적 인과를 알튀세는 ‘환유"로 묘사한다. 이런 환유적 인과는 말하자면 ‘부재하는 원인의 효과", ‘결과들 속에서의 원인의 내재"이다. 결과들 속에는 경제적 심급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스피노자에서의 내재적 인과론과 비교할 만하다.
모순과 중층결정에 대한 알튀세의 분석은 현대 사상에서 매우 소중한 공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여전히 맑시즘을 절대시하는 ‘비과학적인’ 요소가 깃들어 있고, 또 (복수성과 복잡성의 개념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거의 스피노자의 신의 자리에 해당하는) 결정적인 위치에 놓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알튀세의 분석을 충분히 습득하되, 사상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즉 처음부터 맑스를 전제하지 않고 - 그러나 맑스가 고전적이고 기초적인 사상가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보다 다원적이고(즉 분석의 단위를 ‘界"로 잡는 것 - 그러나 계급 개념도 여전히 유효하다) 역동적인(보다 최근의 존재론들을 동원한) 분석이 요청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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