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진료하며
인생 마감하고 싶다”
강의·연구·진료로 항상 시간 쫓겨
정재규 협회장 등 배출 “자랑스럽다”
※ 최호영교수 약력
62년 서울치대 졸업
72년 경희치대 교수 임용
77∼89년 경희치대 병원 보존과장
84∼86년 대한치과보존학회 회장
88∼90년 공직치과의사회 회장
92∼95년 경희치대 학장
96∼00년 (가칭)대한치과근관치료학회 회장
2003년 8월 31일 정년 퇴임
“30년 이상을 교수라는 직업으로 살아왔고, 대학생 및 수련의 시절을 합치면 사실 반평생넘게 치과인으로 살아온 셈인데, 대과없이 무사히 퇴임하게 돼 기쁩니다.”
경희치대 학장, 공직치과의사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최호영 경희치대 교수가 지난달 31일부로 정년 퇴임했다.
퇴임을 며칠 앞둔 지난달 28일 기자를 만난 최호영 교수는 여전히 진료복을 입고 활발하게 환자를 진료하는 모습으로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최 교수는 “고려대학병원에서 수련했고 그때 알게된 민병순 교수님의 요청을 받고 지난 72년부터 공직에 들어섰다”며 “교수라는 직업은 강의, 연구, 진료 등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처리 해야하는 자리로 스트레스가 많고, 항상 시간에 쫓긴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92년부터 3년 반 동안 학장을 맡았을 때 어려움이 많았다”며 “학교발전기금이 제대로 모이지 않아 힘들었던 적도 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노력해서 발전기금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큰 수확”이라고 회고했다.
하지만 어려움보다는 보람이 더 많았다. 최 교수는 첫해 졸업생 중 전원이 치과의사국가시험에 합격, 특히 공동수석 합격자를 배출했을 때 더없는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또 이후 10여년동안 한 번만 제외하고 계속 100% 합격률을 기록한 것은 최 교수에게는 교육자로서의 커다란 훈장이다.
특히 최 교수는 정재규 치협 회장, 정충모 치협 감사, 장상건 대구지부장 등 치과계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인물들을 보존과에서 배출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특히 졸업생들이 개원을 해서 ‘진료 잘한다’라는 말을 들을 때와 무료봉사진료 등 사회적으로 뜻깊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듯해진다”고 밝혔다.
최 교수는 “치의학중에서도 보존학은 치과진료의 첫 번째 단계에 해당하는 학문”이라며 “치아우식증, 치주치료 등 예방적 성격이 강해 치과영역중 가장 중요한 단계 중 하나”라고 스스로 몸담았던 학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최 교수는 “요즘 젊은 치과의사들은 매우 열정적"이라며 "우리 때보다 더 강하고, 사회참여도 활발하게 해서 보기 좋다"며 칭찬했다.
또 “좁은 공간에서 진료하다보면 성격도 좁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 후배들은 봉사활동과 다양한 취미로 이를 잘 극복하는 것 같다”고 표현하는 부분은 최 교수가 젊은 세대에 얼마나 큰 기대를 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최 교수는 ‘자식’같은 후배들에게 항상 성실히 살 것을 당부했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요즘 세상에서 게으른 사람은 바로 뒤처지게 마련입니다. 진료에서도 마찬가지죠.”
주량이 남다르다고 스스로 밝히는 최 교수는 이미 2남이 모두 출가해 손녀까지 본 ‘할아버지’.
“자식들이 제 뒤를 이어줬으면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게 가장 좋은 거죠.”
퇴임 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최 교수는 “경희치대 졸업생인 장상건 대구지부장이 운영하는 병원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진료할 것”이라며 “치과의사가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의 일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그래도 배우고 남은 것이 치의학”이라며 담담히 웃었다.
40여년을 치과인으로 살아온 노교수의 뒷모습은 끝까지 한결같고, 당당했다. 지금까지 치과인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치과인으로 살아갈 최 교수의 ‘아름다운 인생’ 후반부를 기대해본다.
윤선영 기자 young@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