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온도와 숨이 턱턱 막히는 모랫바람이 불어대는 곳. 걸프전 이후 지속된 경제제재로 인해 생활은 피폐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삭막해져버린 곳. 그 힘들고 머나먼 곳에 왜 갔냐고 사람들은 물어봅니다.
그곳은 안전한가, 사람이 살 만한가, 다녀오면 어떤게 도움이 되는가, 여러 가지 궁금한 게 참 많은가 봅니다. 그렇습니다.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곳에 가야만 했을까요?
지금도 이라크 파병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파병을 가야하는가 그 문제로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주장과 이론들을 내세우며 서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나에게 다시 한번 이라크에 가라고 한다면 군인으로서 나의 임무를 위해, 그리고 사랑의 인술을 펼치기 위해 이라크에 다시 한 번 갈 것입니다.
물론 이라크가 안전한 곳은 아닙니다. 게다가 그곳에서의 삶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힘듭니다. 얼마 전 우리 군이 파병 나가 있는 이라크 나시리아에서도 폭탄 테러가 발생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사건을 들으셨을 겁니다.
50도를 넘는 뜨거운 한 낮에도 밖에 나갈때면 항상 방탄조끼와 헬멧, 그리고 실탄과 소총을 휴대하고 다녀야 합니다. 단독 행동은 있을 수 없으며 2~3명이 항상 짝을 지어 행동해야 합니다. 부대안 우리 휴식처인 텐트에 들어와서야 긴장을 풀 수가 있답니다.
그렇지만 내가, 우리 장병들이 이라크에 간 것은 편하게 여행을 간 것은 아니기에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지켜가며 임무를 수행했던 것입니다.
그럼 간단하게나마 이라크의 생활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먼저 생활환경 입니다.
이라크는 5월부터 9월까지가 여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곳은 매일 매일 한낮의 온도가 50도를 넘어갑니다. 최고 기온은 8월달에 57도를 기록한 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저녁엔 온도가 30도 아래로 떨어지면 싸늘함을 느껴 긴팔 옷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어찌 보면 30도에 추위를 느낀다는게 우습지만 일교차가 20도 이상 되다보니 추위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모랫바람, 정확히 표현하자면 흙바람입니다. 이 바람은 4월부터 10월까지 북쪽에서 일정하게 부는데 심하면 텐트가 무너지기도 합니다. 거의 매일 바람이 불어 나무들이 한쪽으로 기울어 자랄 정도입니다. 이 바람이 심하게 불면 온 천지가 흙먼지로 뒤덮이는데 특히, 전자기기들에 심각한 영향을 줍니다.
흙먼지 위에 쳐놓은 텐트 안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면 먼지 때문에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이 지나가질 못하고 얼굴이고 다리고 흙이 서걱서걱합니다.
발을 디딜 때마다 풀썩거리는 흙먼지는 바람만 조금 불라치면 먼지 폭풍이 되어 우리를 괴롭혔고, 단 하나 있는 화장실은 드럼통을 잘라서 변기통을 만들고 그 위에 합판으로 대어놓은 화장실(영화 플래툰에서 검은 연기를 내며 태워지던 드럼통을 기억하십니까?)이라 한국에 있었더라면 참으면 참았지 차마 사용하지 못할 수준이었습니다.
참 끔찍하다 생각했던 시간이건만 나중엔 상황이 많이 좋아져서 제마식당이라고 근사한 식당도 만들었습니다. 6월 중순부터는 한식이 운영되어 간만에 먹어보는 지은 밥과 한국식 반찬에 정말 눈물이 쏙 나올 만큼 감개가 무량했답니다.
에어컨과 냉장고도 들어오고 위성 TV도 들어와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이 생활하게 됐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부족한 것 많고 힘들었던 생활이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다음으로 진료활동 입니다.
병원이 개원되기 전까지 12차례 MEDCAP을 나갔었습니다. 이곳에 와서 병원이 개원되기 전까지 중점을 둔 것이 이라크 현지 주민을 대상으로 한 MEDCAP(Medical Civilian Assistant Program)이라는 대민 순회 의료지원 활동입니다. 일주일에 두 차례 ‘쉬크알리"와 ‘아시리아" 지역으로 의료 지원을 나가는데 아침 7시에 나가서 150여명에서 200여명의 환자를 보고 오면 오후 두시가 넘어가기 십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