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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호 칼럼, 차한잔의 사색>
돈의 흐름 속에서

관리자 기자  2001.02.03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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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 버는 모습은 나의 인생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지, 힘들게 자라다 비틀어지거나 꼬이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 새해가 밝아온지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갔다. 이제 아이들은 한 학년씩 올라가고, 새학기를 맞아 학원비와 사교육비도 인상된다고 한다. 생활비도 물가가 오르므로 자연 늘어나니 어떻게 돈을 좀 더 벌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이것이 나만의 특정한 고민은 아닐 것이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80년대 민주화 운동 속에 상처받은 교정에서 나누던 우리 대화의 주제에는 돈에 대한 것은 없었다. 이제 40을 바라보는 소위 ?86세대의 끝머리에 드는 필자도 대학 시절 내내 돈 세는 법조차도 잘 모르고 지내다가, 두 아이의 학부형이 된 지금에야 새해를 맞으며 돈이 좀 있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철이 늦게 난 감이 없지 않다. 우리 세대는 사회의 권위주의와 탈법적인 관례에도 적절히 적응하며 부와 권위의 자리에 진입하고 있지만, 전 세대처럼 윗사람을 맹종하는 것에 대하여 의문과 부정의 시선을 가지고 있고, 부를 축적하는 양식에 대해서도 냉철한 시각을 가지고 개선하거나 모험을 감행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최근의 추세를 보면 실제로 386세대에 의하여 자본의 흐름이나 부자가 되는 방식이 현저히 바뀌게 되었고, 전통적인 직업의 선호도를 포함한 삶의 질이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상당 부분 변화되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재미있게도 주위를 보면 자본의 흐름을 읽는 눈을 가진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우리가 밥을 먹고 자고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돈이 어디로 굴러가는지를 특수한 더듬이를 가진 것처럼 항상 감지하고 그 흐름에 대한 ‘감’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는 돈을 버는 방식이 일종의 ‘노우 하우(know-how) 방식’, 즉 특정의 기술력이나 비법이 있으면 그것을 토대로 노력을 하여 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 후 인터넷 열풍과 국경을 넘나드는 정보를 통한 세계화시대에 들어와서는 돈이 되는 정보를 빠르게 찾아가는 ‘노우 웨어(know-where) 방식’이 우선한다고 하였는데, 요즈음에는 쌓여 있는 정보가 방대한데다가 이 정보의 변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이를 혼자서 허우적거리고 따라가기보다는 이 모든 것을 적절히 운영하며 이 사회를 리드하는 ‘선택된’ 사람을 만나는 것이 돈을 버는 최고의 방법이라 하여 ‘노우 후(know-who) 방식’으로 변화되고 있다고 한다. 어느 시대나 사람의 선택이 중요하지만 이제는 정확한 정보를 알고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가진 정보를 양적으로 불리기보다는 그 모든 것을 아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이렇게 돈을 버는 문화도 격변기를 맞고 있다. ‘이 시대에 진정한 스승은 없다’라고 생각하는 세대가 서서히 사회의 중견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여전히 돈과 바른 삶은 별개라고 잠재된 마음을 가진 우리의 스승들은 어떤 방식으로 자본에 대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돈을 버는 방식의 분명한 흐름이 있는 이 시대 자본 문화를 떠올리며 우리는 이 문화의 어느 단계에서 돈을 벌고 생활하고 있는지 자문해 볼일이다. 누군가가 인생은 모노드라마와 같다고 하였다. 불꺼진 객석에서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고, 나 홀로 조명등 켜진 무대에 서서 울고 웃기도 하고 밥을 먹고 살아간다. 자신의 연출에 의하여 나타나는 무대에서의 삶의 모습은 분명 자신이 선택한 삶이고 돈을 벌어 아이들과 살아가는 모습 또한 자신이 선택한 삶이다. 살아가는 동안 자아(自我)의 발현은 성장해 가는 나무와 같을 것이다. 무성히 자라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더 이상 하늘로 자라는 것을 멈추고 그 고유의 모양으로 길가의 가로수나 산중의 나무로 서 있게 되는 것처럼 아마도 돈을 벌며 살아가는 문화도 자신이 선택한 삶의 방식과 자아의 발현 속에서 어느 시기에 이르러 견고하게 윤곽 지어질 것이다. 나의 돈 버는 모습은 나의 인생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지, 힘들게 자라다 비틀어지거나 꼬이지는 않았는지 다시 한번 거울을 들여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