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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묵 월요칼럼]인체(人體)의 신비로움

관리자 기자  2005.01.3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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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이 질병에 걸리는 이유와 그 질병에 대한 치료방법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이 알고 있다. 그러나 질병이 도대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다. 인간의 몸(신체)은 인간이 만든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설계돼 있는 구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허우대를 구성하고 있는 골격에서부터 심장이나 뇌의 역할에 관한 생리적 작용이나 신경계, 면역계 등의 구성은 우리들에게 감탄과 경이로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완벽에 가까운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설프게 만들어진 부분이 많다. 인간의 질병을 유발하게 하는 인간기계의 결함이나 약점이 너무나 많음에 또 한번 더 놀라게 된다.


인간의 몸에 질병을 걸리게 하는 수 천 가지의 결함과 약점을 남겨 놓았다는 것은 아이러니 하기도 하고 정말 신(神)의 처사가 아닌 보다 인간적(人間的)인 처사였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서 가장 최고의 기술자가 인간을 만들면서 7일에 한번 일손을 놓고 초보자에게 나머지 하루를 맡긴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초보자의 미흡한 기술 때문에 생긴 인간의 결함이 없었다면 세상은 너무나 완벽하고 무미건조한 나날이였을거라 생각이 든다.


인간이 완벽하고, 완전무결하게 만들어져 늙지도 않고, 병도 안 걸리고, 그렇다면 죽음 마져도 없는 영원한 생애였더라면 과연 어떤 세상이 됐을까? 생각만해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말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그 초보기술자의 미흡한 작품 덕분에 우리는 보다 인간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인간의 구성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경이로움과 허술하게 남겨 놓은 미흡함의 적당한 조화로움이 어우러진 정말 신비로운 것이다.


인간의 면역계가 수백만 종류의 단백질을 식별하고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가공할만한 무기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아직도 우리는 폐렴에 걸려 고생을 하며 한 가닥의 D.N.A만으로도 특정한 기능을 가진 수십 만개의 세포를 적절하게 배치 할 수 있는 지령을 내리며 암호화 할 수 있다고 뽐내면서도 한편, 손가락이 한번 짤리면 다시 재생할 수 없는 원통함도 겪게 된다.
최신의 가장 진보되고 발달된 의학의 지식으로도 아직 인간의 경이로움에 대한 신비의 베일을 벗기지 못했고 미흡함이나 결함에 의해 생기는 질병에 대한 정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인간의 본질적인 것을 명확하게 규명할 수 없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겨둘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인체의 오묘함이나 경의로움에 비추어 보면, 그곳에 우리 인간의 손길(仁術)로 할 수 있는 범위는 우리 의사들은 자기가 하는 의술만이 인간을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유일한 수단과 방법이라 믿고, 자만하고, 까불기까지 한다.
인체가 가지고 있는 신비로운 방어메카니즘에 의해서 자연 치유되는 부분마저도 우리 의사가 해놓은 업적으로 뻔뻔스럽게 둘러대기도 한다. 우리는 얼핏 세균과 바이러스를 사악하고 못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인간 중심적인 사고일 뿐이다. 실제로 우리 몸은 그들 세균의 온상(집)이며 양식(식량)이다.


우리 몸의 방어체계는 1마이크로 그램의 세균도 몸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싶지만 그들 세균은 우리 방어체계를 뚫지 못하면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방어수단에 대한 병원체의 대응전략 또한 만만하지 않다. 이건 숙주와 기생체 간의 전쟁과 흡사하다. 우리 의사들은 그들 둘의 싸움에 등이 터지는 새우꼴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의사들이 하고 있는 의료행위엔 절대적인 방법이 없다. 치료행위에는 정답이 없다는 뜻이다. 다만, 그때 그때의 최선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 의사들은 우리가 하는 의술의 행위에 지나치게 기대하거나 자만할 수 없는 겸손함이 더욱 필요하게 될 것이다. 세러낼 호수 옆에 E.L.Trudeau 동상에 새겨진 의학본연의 목표에 대한 글귀를 한번 음미해 볼 만하다.

“가끔 치료하고 자주 도와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