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진력이 났던 진료가
슬슬 그리워지기…
치과대학을 졸업 후 페이 닥터, 공직의, 부부치과의 원장 및 부원장 등 계속 진료하다가 폐업을 결심했다. 이상하게도 폐업을 결정하자, 기계도 고장나기 시작하고 화장실의 배수관이 터지며, 형광등도 깜박거리는 등…. 마음이 떠난 진료실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야말로 폐업할수 있는 그날까지가 일각이 여삼추였다.
그런데 폐업도 쉽지는 않았다. 파노라마, x-ray기기의 인수인계, 각종 보험의 정산, 세무서와 보건소에 신고하기 등등…. 익숙하지 않은 일들을 처리해야만 했다. (그 당시 도와주신 21세기의 조사장님 감사드립니다.) 드디어 공휴일이 아닌데도 햇살이 환히 비치는 오전 11시경에 나도 거실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실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시간적 제약에 얽매이지 않을 자유, 또 무엇보다 환자의 c.c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 등….
순식간에 두 달이 지나고 대구를 떠나 서울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이사 후 뒷정리로 또 몇 달이 지나갔다. 슬슬 주위 친지들이 궁금해 했다. 계속 놀(?) 것인지, 심심하지는 않은 지….
솔직히 조금도 심심하지 않았으며, 이것저것 배우느라 오히려 바빴다. 문화센터에 등록하여 각종 요리를 배우고 외국어 강좌도 등록하고 요가도 열심히 했다.
또 강좌 중에 만나게 된 분들과의 친교도 좋았다. 다양한 직업과 연령이 많은 분들이 배움에 대한 갈증과 동기를 갖고 있어서, 나로서는 경이감과 배울 점이 많았다.
그러다가 요리강좌에서 만난 분들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작은 봉사팀을 만들어 요리봉사를 나갔다. 제 나이보다 몸집이 작아 보이는 아이들에게 탕수육과 맛탕을 해주었는데 배가 볼록해지도록 참 잘 먹었다. 그러나 뿌듯한 느낌도 잠깐 한 회원이 이 아이들에겐 치료가 더 좋은 봉사가 아니겠냐는 (유독 나에게만) 지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가만히 생각했다. 일(?)을 하지 않은지, 약 1년여의 시간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일과 시간에 치여 여유 없던 마음을 보듬어 주고, 건성으로 지나쳤던 많은 것들에 관심을 갖게 했다. 정성껏 만든 요리에 가족들도 행복해 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니 무엇보다도 진력이 났던 진료가 슬슬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지금, 쉬었던 지난 1년 덕분에, 즐겁게 진료를 하고 있다. 아마도 쉼 없이 진료를 했다면, 지금의 기쁨과 치과의사로서의 자긍심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진료에 지친 선생님이 계시다면, 1년만이라도 쉬시라고, 스스로에게 재충전 할 안식년을 선물하시라고 권하고 싶다.
김 영 희
·83년 경희치대 졸
·서울시교육청 학교보건원 치과진료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