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드니 점점 자연 속에 친환경적으로 살고 싶어진다. 복잡하고 혼탁한 도시를 떠나 아예 농촌으로 주거지도 옮겼다. 뒷산과 앞개울이 있고 전원이 시원하게 펼쳐 있는 곳에 아담한 미니 이층집을 짓고, 잔디와 연못과 텃밭을 가꾸고 사니, 만사가 편안하다. 특별히 운동이나 등산마저도 하지 않건만 점차 건강해 짐을 피부로 느껴지니, 이젠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라도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이야기 할 때 건강과 관련을 짓는다.
신체적 건강이란 결국 자연이 준 그대로의 몸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심각한 질병에 걸려서 갖은 치료와 약제를 다 쓰며 질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노력 하더라도 맨 끝에는 결국 식이요법이나 운동요법 같은 친환경, 친자연적인 요법으로 회복함을 자주 보게 된다. 아무리 좋은 약제로 질병을 퇴치하고, 좋은 인체 대체 재료로 인체 장기를 바꾸어도, 본래의 그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던 환경과 본래 그 사람 고유의 장기보다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의료인 모두가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이다. 또한 가급적 환자의 본래 장기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진료함이 세계 공통의 의료 철학이다. 그래서 세계보건기구가 내놓은 진료원칙도 예방우선, 그 다음이 조기치료, 마지막 수단으로서의 수술과 기능회복진료를 택하라는 대 원칙을 제시했고 이는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모든 의료인들이 명심하고 지켜야 할 진료 방침인 것이다.
국가는 의료인에게 진료권이라는 권리를 주었다. 의료인은 누구나 독자적 판단으로 자신의 지식과 양심에 따라 어느 정도 상식선에서 허용되는 진료내용과 방법을 결정할 수 있다. 환자를 약물치료로 할 것인지, 방사선 치료를 할 것인지, 수술을 할 것인지도 결국은 의사의 결정에 따르게 되고, 치아를 예방진료로 건강을 유지시킬 것인지 보존치료할 것인지 치주치료를 할 것인지는 치과의사 개별 판단에 맡기게 된다. 이 권리는 의료인에게 있어서 진료행위를 법으로 보장받고 의료인을 지키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기도 하다.
그런데 치과진료에도 추세 즉 트렌드가 있다. 시대와 지역에 따라 특정한 어떤 진료를 주로 많이 하는가 하면 또 다른 바람이 불어 서서히 다른 진료에 역점을 두고 많이 하는 풍토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한 풍토 변화를 좌우하게 되는 것은 그 시대, 그 나라 국민들의 치과진료에 대한 요구도가 가장 큰 비중으로 작용한다고는 말하나 사실 그것을 국민들이 알게 하는 것은 의료인들 몫이다. 즉 의료인은 국민의 진료풍토를 상당히 바꾸어 갈 수 있는 힘과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떠한 방향으로 진료풍토를 이끌어야 바람직 하겠는가하는 물음이 나오고, 그 답은 명확하다. 국민을 건강하게, 환자가 건강하게 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추구하도록 진료함이 바람직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과 환자를 건강하게 유도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진료방법과 이론적 배경과 그 예상결과들이 다양하게 소개돼 있는데, 이것은 옳고 저 방법은 그르다고 말하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 그럼 최적의 방법, 진료를 선택할 기준은 무엇일까? 바로 자기 가족이라 말할 수 있겠다.
내 자식이라면, 내 처, 내 부모라면 어떤 진료를 선택할까?
어느 분만 환자에게 제왕절개를 유도하거나 물혹이 있다고 자궁적출을 권유하는 의사에게 “선생님 사모님도 제왕절개로 분만하셨고, 자궁적출 하셨나요?”라고 묻는 환자에게 할 말이 없었다고 하는 산부인과 친구의 말을 들으니 진료추세와 가족진료간에는 다소 차이가 있음이 느껴져 씁쓸하다.
10여 년 전 일본의 문예춘추라는 잡지에 어느 치과의사가 ‘치과진료를 많이 해주었더니 하면 할수록 구강건강은 더 나빠져 버렸다’라고 하는 극단적 양심 고백적 기사를 실었다가 화제가 되고, 치과의사들의 비난이 빗발쳤던 일도 있었다.
신이 만들어 놓은 신체장기를 최대한 자연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의료인이 추구해야할 첫 번째 사명이다. 어느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