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을 키우며 거듭 갖게 되는 신기한 느낌은, 어쩌면 한 배에서 난 아이들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성향을 보이는 가운데도 부모의 성격들이 문득문득 드러나 보이는 것이, 어느 땐 뿌듯하게 어느 땐 쥐구멍을 찾고 싶게 만든다.
막내는, 엄마가 아무리 동동거려도 끝까지 느긋하기만 한 형들과는 뭔가 다른 것 같다. 쉼 없이 종종 거리며 뭔가를 하려하고 한시도 재잘대기를 멈추지 않는다. 고집인들 어디 보통일까. 따라다니며 조르는 건 질려서라도 얼른 해줘버리게 만드는 집요함에다, 끝내 거절하면 금방이라도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는 감성까지 두루 갖췄다. 무엇이든 하려고 나서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여 나쁜 일만 아니면 뭐든 해도 좋다며 밀어주다 보니 아이의 일상도 수첩에 적어두지 않으면 안될 만큼 바빠지고 복잡해졌다.
아이는 올해 들어 첫 영성체 교리를 시작했다. 작년에 미루는 바람에 더 복잡하고 까다로워진 과정을 끙끙거리며 견뎌내더니 다음엔 형들은 하라고 해도 못한다며 사래질하던 복사단에 자원해서 들어갔다. 한 달 동안 매일 참석해야 하는 평일미사에 아예 반납해야 하는 토요일, 새벽이며 밤까지 무슨 회합이며 교육인가를 열심히 챙겨 다녀 드디어 막내는 복사단의 정식 단원이 되었고 겨우 도시락 신자노릇이던 엄마를 복사단 자모회원으로 만들었다.
어느 날은 새벽 다섯 시부터, 어느 날은 저녁 열시 무렵까지, 학교이외의 모든 사생활을 온통 올인하다시피 하며, 좀 심하지 않나 싶은 엄격한 여정을 한마디 불평없이 견뎌내는 것이 참 신기하였다. 우리 막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힘든 일상을 아무 대가없이 기꺼이 행하는 그 모습은 딱하고 가끔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하기는, 이런 hard training이 세속에서도 아이들을 강하고 든든한 청년으로 키워 낼 것이니 아이가 보이는 의지 자체가 필경 큰 축복임에 틀림없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못하겠다며 만세를 부르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그 좁은 시간 틈 사이로 전보다 더 많은 일을 찾아내서 하고 오히려 빈 시간도 더욱 알차게 살아내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부족한 눈으로만 이 흐름을 지켜볼 일은 아닌 듯 하다.
아이들의 규율이 엄격한 만큼 엄마에게 주어지는 책임도 많다. 지난 달, 해마다 한번씩 열리는 성당신자들의 축제에서 복사 자모회는 만두와 감자떡을 맡아 팔게 되었다. 여러 단체에서 벼룩시장도 꾸리고 윷놀이도 하고 여러 가지 음식도 나눠 먹으며 시끌벅적히 한나절을 보내는 이 행사를 통해 그간 서로 눈인사로만 지나던 사람들이 가까운 이웃이 된다.
돈을 받고 무언가를 팔아야 한다는 것은 참 부담스런 일이었다. 그러나 입안에서만 맴돌던 목소리가 드디어 밖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자 그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생기는 이익이 가난한 이웃에 나눠지는 것이니 힘든 만큼 보람도 크고, 오며 가며 우리 아이들을 늘 챙겨 주시던 동네 어르신들 대접도 할 수 있어서 혼자 신이 났었나보다. 평소에 부족했던 부분을 채우고 싶기도 했고 그간의 소홀한 느낌도 덜고 싶어 청년부의 부추전 굽는 일도 도와주고 여성단체의 메추라기 구이 숯불도 피워주며 부르는 대로 신나게 쫓아다니다보니 어느새 잔뜩 쌓여있던 먹거리들이 다 사라지고 파장할 시간이 되었다. 널린 쓰레기와 음식 찌꺼기들을 치우고 있자니 그간 서먹했던 사람들조차 한마디씩 뜻밖의 얘기를 던지며 지나간다. “어쩜 그렇게 장사를 잘 하우? 본래 장사하던 사람인 줄로만 알았지 뭐야….”
이렇게 불쑥 다가오는 생뚱한 이야기는 사람을 아연하게 만든다. 장사라니…?! 내가 어떻게 장사를 잘하는 사람으로 비춰질 수가 있었단 말인가. 하기야 남의 눈에 비친 나는, 종종 내가 알고 있는 나 자신이 아니기도 했다. 그런 경우에도 대개는 그것이 다른 이에게 다르게 보일망정 나 자신에게는 낯설지 않은 내 모습인데, 이렇게 전혀 의식조차 하지 못하던 나의 일면을 다른 이들을 통해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일은 설마를 넘어 당혹스럽다.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