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병원들이 각종 드라마와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의 소재와 배경으로 쓰이고 있는 가운데 프로그램 제작 중 발생한 환자의 초상권 침해 시 병원의 책임소지를 규정한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조용구 부장판사)는 지난달 30일 ‘TV 방송에 얼굴이 나와 초상권이 침해됐다’며 오 씨와 아들 김 군이 KBS와 이 방송사 PD 오 씨, 외주제작사 J사, 이 회사 PD 박 씨, 건국대병원과 이 병원 홍보팀장 오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병원에서 촬영된 환자와 보호자들의 방송보도 내용에 대해 병원 측과 이의 실무를 맡은 홍보팀장의 세부적인 관리감독 의무가 필요하지 않다”며 일부 피고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건국대병원과 오 홍보팀장을 제외한 나머지 피고들에 대해서는 연대해 오 씨와 김 군에게 총 1천4백만원을 배상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사건은 지난 2005년 9월 건국대병원에서 세쌍둥이 미숙아가 태어나 이를 소재로 KBS 프로그램 ‘병원 24시’가 촬영되면서 당시 신생아 중환자실에 요양 중이었던 원고 측의 얼굴이 방영되면서 불거졌다.
재판부에 따르면 원고는 촬영 전부터 혹여나 본인들의 얼굴이 전파를 타지 않을까하는 우려에 피고 측에 자신들에 대한 촬영은 삼가 달라고 요청을 했다.
하지만 외주제작사 PD는 이러한 요청과 함께 건국대병원으로부터 다른 신생아 등의 촬영은 삼가토록 지시를 받았음에도 원고들의 동의를 받거나 병원 측에 이를 알리지 않고 촬영을 진행해 관련 장면이 총 3차례에 걸쳐 나레이션과 함께 약 20초간 방영됐다.
이에 원고 측은 “병원이 소재를 제공한 만큼 다른 환자들이 무단 촬영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관리 감독할 주의의무가 있음에도 그러한 주의를 다하지 않았다”며 건국대병원과 이 병원 홍보팀장 오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을 청구 한 것.
재판부는 하지만 이 같은 원고 측의 주장에 대해서 “병원 담당자가 촬영행위에 적극 개입해 피촬영자에 대해 촬영 동의를 구했는지 일일이 확인하고 촬영을 제지하는 등 이를 관리 감독할 의무까지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재판부는 “오 씨와 친권자들인 오 씨 부부의 동의 없이 오 씨와 김 군이 나오는 장면을 방영했다면 초상권을 부당하게 침해한 것”이라며 “외주제작사와 그 PD는 물론 방송권자 내지 방송 주체로 편집권한이 있는 KBS와 그 PD는 손해배상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강은정 기자 human@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