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형근 의원 ‘의료사고피해 구제법’ 관련 토론회
최근 의료사고피해구제법을 두고 의료계와 시민단체의 입장이 평행선을 긋고 있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복지부마저도 법안에 회의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2일 정형근 한나라당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약인가, 독인가?’라는 주제로 의료계,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입증책임 전환, 형사처벌특례 등 쟁점사안을 놓고 찬·반 양론이 엇갈렸다. 특히 보건복지부 관계자마저도 입증책임 전환을 골자로 하는 의료사고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제정에 난색을 보였다.
김강립 보건복지부 의료정책팀장은 “다른 나라에서 의료인에게 입증책임을 전환한 사례가 없어 실효성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전제하고, “신속·공정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분쟁을 해결하자는 것이 법의 목적이지만, 현재보다 분쟁이 증가하게 되면 국민의 부담이 늘고, 방어진료·기피진료가 늘어나는 등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우려돼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입증책임 전환에 맞춰졌다.
왕상한 서강대학교 법학부 교수(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는 “현행법에서도 상세한 의무기록과 환자 요청 시 공개하는 것은 의무화 돼 있으므로 모든 증거가 의료인에 편중돼 있다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며, “현행법이 부족하다면 이를 보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또 “의사가 무과실을 명확히 밝힐 수 없는 상황에 대해서는 방어진료, 과잉진료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결국 환자의 건강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환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변호사를 위한 법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진료의 기반인 의사와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악법이라는 의견도 개진됐다.
성명훈 서울대병원 교수는 “과실이 있다는 가정 하에 의사를 잠재적인 가해자로 몰고 가는 것은 결국 의료수준을 몰락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진료를 저해하는 독소조항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1988년 처음 국회에 발의됐을 당시 ‘의료분쟁조정법’이었던 것이 입증책임 소재를 물고 늘어지는 ‘의료사고피해구제법’으로 변질된 것에 대한 우려도 강하게 제기됐다.
정효성 대한병원협회 법제이사는 “이 법의 제정 목적은 손쉽게 의료분쟁을 조정하자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와 환자를 가해자와 피해자로 구분할 것이 아니라 조정제도를 통해 양자의 주장을 듣고, 제 3자인 의료분쟁조정위원이 조정안을 내놓는 방안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경실련, 의료소비자시민연대 등 소비자단체와의 합의점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료행위의 전문성과 폐쇄성으로 인해 환자가 과실을 입증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며, “국민이 억울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보완하기 위해서는 입증책임 전환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 형사처벌특례와 같이 의사들에게 유리한 조항을 두고 있으므로, 교통사고 시 운전자가 무과실을 입증하는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정형근 한나라당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은 “1988년부터 국회에 발의, 심의돼 왔지만 의료계와 소비자단체가 합의점을 못 찾고 있는 만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신중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논란의 핵심인 입증책임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용재 기자 yonggari45@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