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와 입에 손을 대보니
호흡이 정지된 듯 보이고
급히 손목을 만져보니
맥이 잡히지 않았다.
목의 경동맥도 감감 무소식이고
가슴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차디찬 시체 같은 감촉뿐…
난 9월 18일 한국 문인협회의 일원으로 종로구의 김영훈 원장님과 30명의 일행이 인도의 뉴델리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탑승했다. 해외 문학 세미나 겸 관광 일정이었다.
4시간쯤 지나 평온하게 홍콩부근을 지날 무렵, 스튜어디스의 다급한 방송이 들려왔다.
“기내에 응급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승객 중에 의사나 간호사가 계시면 급히 와주시기 바랍니다.”
긴장된 순간, 다시 영어로 재방송. 아무도 일어나는 기척이 안보였다. 다시 한국어로 재방송. 짬짬하다가 아무래도 직업의식에 일어나, 뒤쪽 웅성거리는 쪽으로 향했다.
“의사 선생님이세요?”
승무원의 안내로 사람들을 헤치고 가보니 기내 가운데 좌석에 건장한 분이 누워 널부러져 있었다.
코와 입에 손을 대보니, 호흡이 정지된 듯 보이고, 급히 손목을 만져보니 맥이 잡히지 않았다. 목의 경동맥도 감감 무소식이고, 가슴속으로 손을 넣어보니 차디찬 시체 같은 감촉뿐… 아, 이런 생징후의 사인이 전혀 없었다.
“맥이 전혀 안잡히는데요….”
옆에 있던 김영훈 원장님에게 말하며 나는 순간 멍해졌다. 서양인 간호사인 듯 혈압을 재며 고개를 갸웃하고 “how much?" 소란스러워 혈압이 얼마냐는 나의 말을 못 알아 들었는지 심각학 표정으로 눈만 껌벅였다.
마음이 급했다.
“에이드 키트 가져올까요” 승무원인 듯 소리쳤다. “o.k" 뭔가 행동에 돌입해야 했다. 이러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다리를 올려”
김 원장님이 소리치자 둘이 환자를 밀어 다리를 팔걸이에 올리고, 직감적으로 심근경색이 아닐까 판단한 나는 C.P.R(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응급처치는 최초 5분이 중요하다고, 그렇치 않으면 뇌사 상태에 빠진다고 학생때 이론으로나마 누누이 배운 지식이 무의식에 각인된 탓이었을까.
환자의 셔츠를 올리고 두 손을 포개어 심장압박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일초에 한번씩 마음속으로 세어가면서(갈비뼈가 부러질 정도로 세게 압박하라고 정성창 구강내과 교수님이 강조하시던 강의가 지금도 생생하다) 15회를 마치고, 막 입을 대고 인공호흡을 하려는 찰나, 누군가 소리쳤다.
“어, 숨쉰다. 숨셔…”
빰을 가볍게 치니 환자가 순간 눈을 뜨고 “괜찮아요?”라는 질문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호흡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정신을 잃었는데… 누가 가슴을 누르는 것을 느끼면서 깨었어요….”
옆의 부인이 감격하여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했다.
문진을 하여보니, 몇시간 전 항암제와 신경안정제를 먹고 기내에서 주는 술을 마셨단다. 약의 상승작용과 기압의 변화가 심폐기능에 영향을 미친 듯 하였다.
안심이 되어 한숨을 돌리고 있으니 상황을 모르는 한 스튜어디스가 와서 다급하게 비상착륙이나 회향을 해야 하는지 물었다. 일단 깨어 났으니까 괜찮을 듯 싶으니 좀 두고 보자고 했는데, 그 말을 딱 들으니 중대한 “결정권”이 나에게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내가 나도 모르게 엄청나게 심각한 일에 연루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소생되지 않았으면 비상착륙으로 여행일정은 엉망이 되었을 터였다.
환자가 춥다고 해서 담요를 덮어주고, 내 자리로 돌아와 혹시나 하는 염려에 응급 메디칼 키트를 점검했다. 에피네프린, 페닐레프린, 아트로핀, 스테로이드, 바리움, 아스피린 등의 여러약제와 봉합셋트가 있었고 심박세동기가 따로 있다고 했다.(나는 말만 들었지 사용경험이 없는데, 물어보니 신참 승무원은 교육받은지 얼마 안돼 잘 안다고 했다)환자가 비교적 말을 할 정도의 안정상태라 약을 추가로 투여할 정도는 아닌듯하여 지켜보기로 했다. 두 시간만 더 가면 될터이니.
소동이 진정되어 승무원의 호의로 맥주를 갖다주어 한 잔하고 쉬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