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까지 건강보험 재정이 2조4487억 원의 누적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12월 누적흑자가 8천9백51억 원이었으니까 8개월 사이에 1조5천5백36억 원이나 증가한 셈이다.
보건복지가족부는 당초 올해 건보재정이 1천4백억 원의 당기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예상이 틀려도 너무 틀렸다. 복지부는 뒤늦게 예상치를 수정했다. 올해 말이 되면 누적흑자가 2조6천억 원에 육박할 것 같다고….
월별 흑자 현황을 좀 보자. 올 들어 4월에만 1백17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4월만 빼고 나머지는 모두 흑자다. 적게는 2백억 원대에서, 정부지원금이 들어오는 달에는 1조 원 넘게 흑자가 났다.
복지부는 ▲전액 무료였던 6세 미만 아이들의 입원비를 10% 내게 한 것 ▲입원환자의 식대 본인부담금을 20%에서 50%로 인상한 것 ▲건강보험료를 6.4% 인상한 것 등을 흑자의 요인으로 꼽고 있는 듯 하다.
그러나 복지부의 분석은 틀린 것 같다.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 빈도 자체가 줄었기 때문에 흑자가 났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급여비 증가율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2005년 13.2%였던 급여비 증가율은 2006년 17.7%로 크게 올랐다가, 지난해 13.8%로 예년 수준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올해 들어 증가율은 7.5%에 불과했다. 쉽게 말해 병의원을 찾는 환자가 지난해의 절반이란 얘기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으로 달려가던 ‘국민성’이 바뀐 것일까? 아니다. 국민의 의료 이용 행태가 성숙해진 게 아니라 아파도 참고 있는 것이다.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면서 허리띠를 졸라매는 상황이 아닌가. 건강보험 재정흑자를 반길 수만은 없는 이유다.
얼마 전 한 치과의사와 점심식사를 하던 자리에서였다. 그는 “정말 죽을 맛이다”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대출받은 돈으로 첨단 장비를 들여놨는데 환자가 오히려 줄어들었으니 대출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할 판이라는 것이다. 그는 과장이 아니라면서 “그야말로 파리만 날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그 전에도 다른 치과병원 관계자로부터 들은 적이 있던 터라 고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제난으로 인해 모든 병의원이 환자가 급감하고 있지만 특히 치과병·의원의 피해가 큰 것 같다. 의료서비스 가격이 비싼데다 치과 질환은 당장 고쳐야 할 만큼 심각한 병이 아니란 인식 때문이다.
치과진료의 건강보험 보장성은 약 47%로, 전체 보장성 66%보다 낮다. 게다가 국내 성인의 70%가 치과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치석을 제거할 때도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국민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음식을 씹으며 참는 것이다.
당분간 건보재정 흑자는 지속될 것 같다. 흑자는 국민에게 되돌려져야 한다. 치과진료 보험 확대가 먼 꿈은 아닐 것이다. 국민은 ‘일상적으로’ ‘편안하게’ 치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원하고 있다. 치협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