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계 역사 ‘산증인’… 추억 새록새록”
협회사편찬위원회, 원로회원 초청 간담회
잃어버린 시대에 대한 기억을 복원하기 위해 치과계의 원로 오피니언 리더들이 나서 한국 치과계의 역사를 재조명했다.
협회사편찬위원회(위원장 신재의)는 지난 11일 앰배서더 호텔에서 ‘원로회원 초청 좌담회’를 열고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한국 치과계의 역사에 대해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자리에는 김주환, 김희경, 김인철, 김규식, 지광원, 김홍기, 변석두 회원 등 7명의 치과계 원로들이 참석해 1945년 8월 15일 광복이후부터 1966년 12월 15일 치의신보(창간당시 치과월보) 창간 사이까지의 치과계의 역사를 되짚었다.
원로회원들은 미군정하 치과문화의 변화에 대해 언급하며 “광복 이전에는 일어와 독어를 혼합해 치과용어를 사용했으며, 광복이후에는 치과용어로 영어를 사용하기 시작했지만 다양한 언어가 혼합돼 혼란스러운 시기를 겪었다”며 “선배들의 고생을 통해 치과용어들이 정리됐다”고 밝혔다.
또한 서울시치과의사회와 경성치과의사회의 대립문제와 관련해서는 이념적 대립과 함께 의과와 치과 일원화에 대한 입장대립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었다며 혼란스러운 시기였다고 어두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지광원 회원은 “음악인으로 널리 알려진 길옥윤 씨가 사실은 최치정이라는 본명의 치의였다”며 “치과의사 출신의 음악인과 체육인 등이 많아 우리나라 문화예술계의 한 축을 이루기도 했다”고 밝혔다.
원로회원들은 지난 1940년대 보건부 치무국의 지원으로 무치의촌 봉사활동을 위해 전국을 다니던 기억과, 육군본부의 지원으로 지난 1956년 수복지구 지원을 나섰던 추억을 회상하며 “요즈음은 사회에서 치과의사가 돈을 버는 데만 신경쓴다고들 하는데 치과의사들만큼 자기를 희생해 국민들을 위해 봉사한 조직도 흔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신재의 위원장은 “선배님들의 지나온 길을 들으니 후배로써 존경스러운 마음이 절로 든다”며 “새롭게 제공받은 자료와 증언을 바탕으로 보다 풍부한 기록이 담긴 협회사를 제작해 협회를 효과적으로 홍보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전수환 기자 parisien@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