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기획]
치과 상호 분쟁 해결책은 없나?
최근 치과계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인식이 강화되면서 치과상호를 둘러싼 상표권 분쟁이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히 최근 분쟁의 경우 특정 상표권을 선점한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치과 대 치과’ 갈등 뿐 아니라 성형외과, 피부과 등 타과와의 소송, 국내·외 치과대학의 상표권 무단사용 경고 등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추세다. 이와 관련 최근 치협 회원 고충처리위원회(위원장 한성희·이하 고충위)에서는 같은 상호를 사용하고 있는 한 치과 네트워크와 비 네트워크 치과들을 중재, 다자간 논의를 이끌며 치과계 내부 합의를 기반으로 한 뜻 깊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러나 치과계 전체로 봐서는 아직 이 같은 분쟁의 불씨가 사그라진 것은 아니어서 향후 치과계 차원의 공론을 모아 본격적인 논의가 진행돼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내 치과 이름 함부로 쓰지마”
일부 네트워크 소송 등 법적 조치 갈등 확산
#상표권 선점 치과 ‘공세’
개원가의 경영불황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차별화를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치과 상호가 자리를 잡으면서 이 문제는 ‘사적 양식’의 차원에서 ‘공적 윤리’의 영역으로 이관되고 있다.
수도권에서 개원중인 개원 1년차 K 원장은 최근 모 치과네트워크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해당 상호명에 대해 상표권을 획득했으니 빠른 시일 내에 상호를 바꾸지 않으면 벌금 등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경고장을 받은 것은 K 원장만이 아니었지만 실제로 1년여 밖에 되지 않은 치과 간판을 내린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판단 때문에 고심 중이다.
이처럼 상표권 분쟁이 최근 잦아지고 있는 것은 네트워크 등에서는 이들 브랜드를 자산으로 인식해 자신들의 가치를 침해받지 않으려는 생각이 크지만 치과의원급 개원가에서는 여건상 이에 큰 의미를 두지 못하기 때문이다.
상표권을 선점한 측에서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사용해 고유 브랜드를 알리고 있는데 같은 상호를 사용하면서 누릴 수도 있는 ‘무임승차’를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같은 치과의사끼리 야박하다”는 볼멘 목소리도 있지만 오히려 이 같은 조치를 취함으로써 향후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명칭을 상표권 등록하게 되면서 반대급부로 오랜 기간 사용해오던 기존 치과의 간판을 바꿔 달아야 하는 상황은 등록을 하지 않은 측에서도 생존권의 문제가 달린 만큼 해법 도출이 쉽지 않다.
#분쟁 양상 다각화 예고
최근에는 Y치과네트워크, S치과네트워크, A치과, W치과 등이 치과 전문지 등을 통해 잇달아 해당 상호에 대한 상표권을 공지했으며 이중 일부 네트워크는 소송 을 비롯한 법적 조치를 동원하는 등 적극적인 권리 행사에 나서는 모습이다.
치과 상호의 경우 환자가 치과를 선택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여기는 만큼, 나아가서는 진료 및 환자 관리와도 연계돼 있는 문제라는 입장이다
대학병원도 명칭 사용 규제 강화
허가 없이 사용 심각한 법적 침해
개원전 특허청에 치과명 확인을
이런 움직임은 치과대학 및 병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일부 대학병원들 역시 연고가 없는 개원가에서 무단으로 해당 대학의 명칭을 상호로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최근 강화하고 있다.
또 하버드나 UCLA 등 해외 유명 치과대학의 경우도 국내에서 이를 무단 사용할 경우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천명한 바 있다.
특히 지난 2006년 3월 미국 하버드대학은 국내의 한 치과병원을 상대로 ‘하버드’란 명칭을 쓰지 말라며 서울중앙지법에 가처분신청을 제출, 해당 치과가 치과상호명을 변경한 바 있다.
또 박노희 UCLA 치과대학 학장은 최근 “UCLA는 미국과 세계에 특허등록 돼 있어 대학의 허가 없이 절대 사용할 수 없다”며 “한국에서 치과명칭에 UCLA를 사용하는 것은 심각한 법적 침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같은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성형외과, 피부과 등 타 의료계에서도 해당 치과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하는 등 치과계를 포함한 전체 의료계가 상표권 분쟁에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 분쟁 해결 위한 ‘마중물’되나
문제는 해당 치과 등이 상표권 등록을 하기 전에 이미 개설된 치과의 경우다. 명의를 도용하거나 무단사용하려는 의도가 원천적으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점한 측에서 당장 상호 변경을 요구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용인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 같은 분쟁 해결을 위한 단초를 최근 치협 회원고충처리위원회에서 제시하고 나섰다. 지난해부터 1년여 가량 끌어오던 ‘고운미소치과네트워크’ 상표권 분쟁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다.
이번 합의서에 따르면 ‘고운미소’라는 치과명을 사용하는 비 네트워크 측 개원가에서는 ▲상호변경 유예기간을 오는 2012년 6월까지 3년으로 하는 한편 ▲이 기간 중 광고 및 홍보활동을 하지 않으며 ▲‘고운’과 ‘미소’ 두 단어가 모두 포함되지 않는 쪽으로는 상호 변경이 가능하게 되는 등의 기본 해법에 동의했다.
또 ‘고운미소’의 상표권 등록 결정일인 2003년 9월 20일 이전 개설한 치과의 경우 개설신고필증 사본을 제출함으로써 이 상호를 계속 사용할 수 있게 되며 다만 경과조치를 둬 1년 후부터는 ‘고운미소 치과네트워크와 별개의 치과임’이라는 문구를 홈페이지에 게재키로 했다. 기존 치과 양도 및 소유권 이전 시점에서는 해당 상호를 유지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제시됐다.
특히 이번 합의서는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고충위의 전방위적인 설득작업과 양측의 한발 앞선 양보로 도출된 것이다. 무엇보다 법적 해결보다는 치과계 자체의 정화의지가 작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한성희 고충위 위원장은 “양측이 열린 마음으로 합의하면서 분쟁이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문제는 앞으로다. 듣기 좋고 부르기 좋은 치과 이름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이미 많은 상표권이 등록돼 있어 관련 분쟁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특허청 상표권 검색 ‘필수’
개원의 L 원장은 “지식기반 산업이 점차 발전하면서 ‘콘텐츠’라는 잠재적 가치가 금전적인 이익과 직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으며 이는 치과상호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서는 상표권은 보호받아야 하지만 변호사, 변리사를 앞세운 무분별한 상표등록 행위 역시 자제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또 분쟁 시에도 법적 해결보다는 양자간 합의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 상생의 길을 찾아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분쟁을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원 이전 특허청에 해당 치과명이 등록됐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상표권 등록 여부는 특허정보 검색서비스(www. kipris.or.kr) 등을 통해 간단하게 알아볼 수 있다. 이 사이트에 접속, ‘상표’ 메뉴를 클릭해 검색하면 된다.
특히 일반 검색보다는 항목별 검색을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특허청 홈페이지(www.kipo.go.kr) 하단에 연결돼 있는 ‘분류/코드 조회’항목을 클릭하면 새 창이 뜨면서 더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한성희 고충위 위원장은 “신규로 개원하거나 상호를 변경할 경우 반드시 상표권 등록 여부를 검색해 체크해야한다”며 “회원들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향후 예상가능한 분쟁의 소지를 없앨 수 있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선영 기자 young@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