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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뿌리찾기 뜨거운 설전

관리자 기자  2009.09.1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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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협 뿌리찾기 뜨거운 설전

 

1921.10.2  전국 치의단체 최초 설립일 현행 유지 마땅
1925.6.9    한국인 만으로 결성된 최초 단체 인정해야
1945.12.9   정부수립 후 설립된 조선치의회가 “원조”

 

창립기념일 관련 공청회


치협의 뿌리를 찾기 위한 뜨거운 설전이 벌어졌다.
치협과 대한치과의사학회(회장 배광식)는 지난 9일 치협 대회의실에서 ‘창립기념일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해 국내 치과의 기원과 치협 창립일을 정하기 위한 공방을 벌였다.


협회 창립일 논란은 지난해 12월 신재의 치협 협회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이 역사자료를 근거로 현 협회 창립일(10.2)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촉발됐다.
협회 창립일에 대한 주장은 ▲현행유지 ▲한성치과의사회의 창립일(1925. 6. 9) ▲해방 후 조선치과의사회의 설립일(1945. 12. 9) 등 모두 3가지로 좁혀진다.


현행유지를 주장한 변영남 대한치과의사학회 명예회장은 “이 땅에 전국 규모의 치과의사단체가 조직된 것은 조선치과의사회(1921.10.2)가 최초이며, 한국인 치과의사가 일부 참여하기도 했다. 비록 일본인이 중심이 된 친목 단체였으나 당시 한국인의 구강위생과 건강에 기여한 공을 인정해야하고, 이 날짜를 창립일로 정한 1981년 당시 지헌택 집행부도 심사숙고한 만큼 현행유지가 옳다”고 밝혔다.


이에 임경빈 대한치과의사학회 명예회장은 “일제 강점기의 조선치과의사회는 현 치협의 대표성과 정체성에 비할 바 못되며, 일본 지역치과의사단체 수준에 불과하다. 한성치과의사회의 창립일도 단순한 친목모임인지 공식적인 단체로 등록했는지 구체적 증거가 없어 부족하다. 해방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창립한 조선치과의사회를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신재의 협회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은 “일제 치하의 조선치과의사회는 한국인이 한사람도 포함되지 않은 일본인 단체였다. 그러나 한성치과의사회는 광복 후 부활한 조선치과의사회의 전신이었으며, 조선총독부의 감시 하에서도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최초의 치과의사단체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여러 문헌과 자료를 제시했다.


그러나 모든 주장에 장단점이 있어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먼저 현행유지 주장은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당시 조선치과의사회가 일제강점기 하의 일본인들이 주축이 돼 만들었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민족 정서에 반한다는 여론이 있을 수 있다.
또 해방 이후를 선택한 측의 주장을 따르게 되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공식 등록된 법인으로서의 정체성은 있으나, 치협 역사가 대한간호협회 등 일부 단체들의 역사보다 짧아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고 한성치과의사회의 설립일을 택하자는 주장은 일제치하에서 한국인 치과의사들이 대거 참여한 조직이라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설립일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없다. 즉, 여러 역사자료를 통해 모임을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시기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불확실성’의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문제는 모든 주장이 논리적으로는 타당해 선뜻 하나의 주장을 택하기가 어려운 상황이며, 치협 창립일 변경이 중대한 사안인 만큼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는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이 문제는 치과계의 전반적인 여론에 따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치협은 향후 공청회를 추가로 열고 치과계의 역사에 관한 추가 자료를 확보한 뒤 치과계 여론을 수렴해 치협 창립기념일을 결정하기로 했다.
정일해 기자 jih@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