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나라도 없는 제도…무책임한 발상”
세무사회·변협·의협 “반대”…기재부는 “대상 확대”
세무검증제 도입 관련 정책토론회
정부가 연소득 5억 이상인 의사, 변호사 등을 대상으로 신설할 계획에 있는 ‘세무검증제도’가 관련 단체인 세무사회, 의협, 변협으로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쳤다.
한국조세연구원은 지난 9일 연구원 대강당에서 ‘세원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책방향-세무검증제도 도입방안’을 주제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에서 전병목 한국조세연구원 기획실장은 주제발표를 통해 일정금액 이상 수입을 가지면서 세원투명성 제고 필요성이 높은 현금수입업종, 전문직종 등에 종사하는 사업자에 대해 세무사 등 세무검증확인자에게 장부 기장 내용의 정확성 여부를 사전에 검증받도록 의무화하는 ‘세무검증제도’ 도입을 제안했다.
세무검증제도 대상 사업자의 범위는 일정소득 이상의 현금영수증 의무발급대상 업종 종사 사업자로 ▲변호사, 회계사 등 사업서비스업 ▲병·의원, 한의원, 수의업 등 보건업 ▲학원, 골프장, 장례식장, 예식장, 산후조리원 등 기타업종이다.
전 실장은 제도 도입 시에는 대상 사업자 수를 최소화해 시행하고, 향후 운영상 문제점을 보완하면서 대상자를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안을 제시, 초기 도입 시에는 전체 사업자의 10% 범위인 수입금액 5억원을 기준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연소득 5억원이 기준이 되면 약 1만9400명이 해당된다.
또 세무검증확인자는 세무사, 공인회계사, 세무법인, 회계법인 등이 맡아서 하게 되며, 세무검증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해 관련 업무를 직무에 추가하는 한편 부실 세무검증이 확인될 경우 세무검증확인자에 대해 이에 상응하는 징계를 부과하는 안도 제기됐다. 징계의 종류는 과실 정도에 따라 과태료, 직무정지, 등록취소 등으로 구분된다.
세무검증비용과 관련 세무검증을 받는 사업자가 부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사업자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검증비용에 대해 세액공제를 도입해 검증비용의 50%를 세액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시됐다.
아울러 제도도입의 타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인센티브 방안도 함께 제시됐는데 ▲의료비, 교육비 공제 허용 ▲무작위 추출방식의 정기조사 배제 ▲세무검증을 받은 사업자에 한해 종합소득 확정신고기간 연장 등의 혜택이 제안됐다.
또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검증확인서를 제출하지 않은 경우에는 무신고에 준해 가산세를 부과하고, 세무조사를 받도록 하는 처벌 방안도 제시됐다. 시행시기는 2011년 귀속 소득분에 대해 2012년 신고시부터 시행한다는 방안이다.
# 특정집단에만 도입 불합리 “강한 비난”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세무사회, 변협, 의협 관계자는 세무검증제도가 법리적으로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특정집단에만 도입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제도를 추진하는 주체자인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제도의 당위성에 대해 설명하면서 대상자를 점차 확대하는 방안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혀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김완일 한국세무사회 연구이사는 “세원투명성 확보를 위한 제도라면 모든 사업자가 대상이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전문직종에 대해서는 현금영수증 발급 의무화, 사업용계좌 사용의무, 기장세액공제와 간이과세적용 배제, 30만원 이상 현금영수증 의무발급, 세파라치 제도 등 샐 수 없는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대한 결과를 분석한 후 또 새로운 제도를 도입해야 하는데 검토없이 새로운 제도를 부과하는 것은 지나친 세무간섭이다. 게다가 세무사들의 과당경쟁으로 인해 세무검증 비용을 납세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어렵다”고 밝혔다.
이상기 변협 세제위원회 위원은 “세무검증제도는 현행 공법체제에 맞지 않는 옥상옥의 과도한 제도”라며 “국가의 책임과 비용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이므로 반대한다”고 언급했다.
장현재 의협 의무이사는 “정부가 추진하는 세무검증제도는 조세공평주의에 반하는 모순적인 발상일 뿐만 아니라 지극히 행정편의적이고 무책임한 발상”이라며 “의료업을 주된 탈세업종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전제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실태를 무시한 정책”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홍기용 한국납세자연합회 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우리나라처럼 강제세무대리제도와 세무검증제도를 두는 나라는 없다”며 “강제세무대리제도가 문제가 있음에도 현재 유지되고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정부가 강요해서는 안되고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제도를 점차 확대하는 방안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세무검증제도가 핫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김낙회 기획재정부 조세정책관은 “제도 도입초기에는 전문직종 등 특정업종만 대상으로 시행되지만 제도가 정착되면 점차적으로 모든 업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2년 정도 시행해보고 확대할 것”이라며 “개인사업자가 추후에 근로소득자처럼 세원투명성이 높아져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된다면 성실사업자에 대한 교육비, 의료비 공제 등을 통해 추가적인 세금부담을 줄일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김 정책관은 또 “세무사 입장에서 성실하게 검증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하지 못한 일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는데, 이러한 부분에 대해 세무사가 최선을 다해서 검증했다면 처벌받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정미 기자 jmahn@kd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