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서 천원 꾸어나간 미팅서 만난 그녀
좋아했지만 두번이나 딱지맞은 씁쓸한 기억
본과 2학년 그러니까 86년 여름에 기억에 남을만한 미팅을 했다. 나는 클래식기타반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여름방학마다 서울에서 연주회 연습을 했다. 사실 나는 여름방학에 서울에
있으려면 머물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해마다 어떻게 넘어가곤 했는데 86년은 내가 기숙사에
있을 때였다. 하지만 당시 우리집의 형편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집에 돈을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뭐 아르바이트라도 했으면 좋았을텐데. 늘 곧이곧대로인 나는 당시 금지된
아르바이트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기숙사에서 마지막날 나는 5000원 정도를 들고 나왔다. 당장 그날부터 그걸로 2주일간을
생활해야 했다. 지금은 생각도 못할 일이지만 학생 때는 그렇게 큰 허물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데 친구들과 그 날 양평에서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친구를 면회하러 갔다. 차비와 식비를
쓰고나서 그날 밤에 친구의 집에 갈 때는 주머니에 200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재미는 있지만 솔직히 좀 어려운 생활을 했다. 아침을 얻어먹고 나오면서
승차권을 하나 얻어서 학교에 갔고 점심 때 친구나 선배를 다행히 만나면 점심을 얻어먹고
그렇지 않으면 점심을 굶었다. 오후에는 연주회 연습이 있었으므로 저녁은 당연히
해결되었고 밤에는 선배나 친구를 하나 골라서 그 집에 가서 잤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
선배들한테 조금 미안하지만 그 때는 그게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지금은 88을 피우지만
그때는 청자를 피웠기 때문에 담배를 사는 일은 친구한테 200원을 달라고 해서 해결했다.
그러니까 그 당시 나의 눈에 띄기만 하면 바로 피해자가 된 것이다. 후후….
그렇게 일주일을 살다가 연대 물리과의 친구가 같은 과의 친구와 소개팅을 하라고 연락이
왔다. 내가 요즘은 돈이 없어서 그런 거 생각도 못한다고 했더니 자기가 돈을 꿔 줄테니 꼭
하라는 것이었다. 역시 우스운 일이지만 그 친구가 나에게 꿔 준 돈은 천원이었다. 내가
그걸로 어떻게 하느냐고 했더니 그 녀석은 커피값이 싼데서 하면 된다며 나를 달랬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장소는 연대앞의 상아탑다방이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독수리다방
바로 맞은 편에 있었다. 그 다방은 커피값이 500원이었고 아마 당시에 가장 싼 다방이었을
것이다.
미팅을 하기로 한 날 아침 학교에서 김영수라는 같은 써클 친구를 만나 점심을 얻어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 : 너 요즘도 미팅 같은거 하냐?
송 : 응. 오늘 하기로 했는데 왜?
김 : 역시…. 그런데 너 요새 돈도 없으면서…. 오늘은 돈 많겠다?
송 : 응. 오늘은 좀 있지.
김 : 얼마나 있는데?
송 : 천원
김 : 푸하핫! 정말이야?
송 : 응.
김 : 세상에 소개받으러 나가면서 천원가지고 나가는 사람은 처음봤다. 아마 네 파트너는
그거의 열배는 가지고 나올걸?
송 : 소개해 주는 녀석이 그것만 가지고 가라는데 뭐….
그 날은 점심만 얻어먹고 연주회 연습을 빠지고 상아탑다방에 갔다. 저녁 때는 소개시켜준
친구의 집에서 자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무래도 커피값이 걱정이 되어 약간 일찍
가서 메뉴판을 보고 확인을 했다. 그런데 커피보다 싼 음료가 눈에 띄었다. 요구르트.
400원인 것을 보고 나는 안심이 되었다. 이윽고 그녀가 왔다. 주문을 했다. 나는 자신있게
요구르트를 시켰는데 그녀는 오렌지 쥬스를 시키는 것이었다. 아차! 아까 쥬스값을 확인하지
않은 것이 실수였다. 하지만 다행히 쥬스는 600원이였고 나는 1000원으로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그녀는 연대 물리과 84학번으로 이름은 한 자명이었다. 처음에는 돈도 없고 해서 대충
끝내고 나오려 했지만 이야기를 하면서 그녀에게 점점 빠지게 되었다. 지금은 그렇게 처음
본 사람에게 끌릴 수 있을까 의심스럽지만. 하여간 나는 돈을 얼마 안 가지고 나온 것을
후회했다.
한참 이야기를 하는데 저쪽에 고등학교 동창이 보였다. 너무 오랜만이라서 깜짝 놀라며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그 친구도 나를 계속 보면서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 그런데 그냥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서 "내가 여자와 앉아 있어서 아는 척 안하고 가는구나" 라고
생각하고 전화번호라도 적어놓으려고 손짓을 해서 불렀다. 그는 나를 계속 쳐다보면서
다가오더니 『저 아세요?』 하고 물었다. 정신을 차려 자세히 보니 얼굴이 내 친구가
아니었다. 미팅하는 자리에서 나는 무척 당황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그는 웃으며 떠났다.
나의 파트너가 다시 저사람 아느냐고 묻길래 내가 웃으며 아는 사람으로 착각했다고 했더니
그녀도 웃으며 사실은 자기가 오늘 미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