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권유로 시작한 새벽 운동 쇼트트랙
아무도 없는 링크서 홀로 탈 때 쾌감 만끽
새벽5시 알람소리에 잠이 깬다. 벌떡 일어나 스케이트를 챙기고 트리코복장(스케이트
선수들이 입는 쫄쫄이(?)바지)를 갖춘다. 이제 칠순이신 어머니는 수영채비를 하시고 함께
연수동에 있는 동남 스포피아로 향한다.
집에선 좀 떨어져 있지만 새벽 운동의 상큼함이 이른 시간 나를 흔들어 놓는 것이다. 약
2시간 쇼트트랙 스케이트를 타고 오는 것이 나의 하루를 여는 아침 운동이 된 것이다.
이 운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IMF이후 모두 어려울 때 우리 치과의사들이 흔히 하는
운동인 골프가 은근히 미운 눈총을 받고 캐디백을 둘러메고 나가는 일이 이웃의 눈치가
보였고, 주중 골프로 아침에 나가 점심이 지나 병원에 돌아오는 것도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다른 좋은 운동이 없을까 하던 차에 마침 내가 나가는 로타리 클럽의 고교
선배인 김원익형(부친이 런던올림픽에 출전한 김석영씨로 한국 레슬링계의 대부이며 대대로
인천 스포츠계의 발전에 앞장서 온)이 스케이트와 싸이클도 유산소 운동이니 함께 해 보자고
권하셔서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60년대 어린 시절 얼린 논바닥에서 오뎅 사먹으며 타던 스케이트와는 전혀 달랐다. 쇼트트랙
하면 김기훈, 채지훈, 김동성, 민룡으로 이어지는 동계올림픽의 메달밭이 생각나실 것이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스피드와 짧은 시간의 긴장, 그리고 타이트한 유니폼이 어울려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특히 선두를 차지하려고 코너를 파고들며 왼손은 얼음판에 대고 외다리로
타는 모습은 쇼트트랙의 압권이지 않겠는가! 나도 한번 멋진 폼으로 그 긴장감을 맛보며
체력도 단련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첫날, 선배님의 지도로 운동이 시작되었다. 상체는 잔뜩 구부리고 몸을 Z자로 만들어
어기적대며 트랙을 따라 돌았다.
쇼트트랙 스케이트의 날은 가운데가 볼록하게 나온 모양이다. 그러니 어릴적 내가 타던
스피드 스케이트와는 달라 앞으로 고꾸라지고 뒤로 자빠지고 몇번 혼이 난 후에 기초를 배울
수 있었다.
운동을 끝내고 출근을 했는데, 아이고, 병원 계단을 올라갈 수가 없었다. 종아리, 허벅지,
허리 안 아픈데가 없었다. "남이 타는 것이 그렇게 멋있고 보기 좋은데 이렇게 힘이 들구나,
언제나 그렇게 탈 수 있을까"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러나 비싼(?) 스케이트와 유니폼을 준비해 놓고 그만 둘 수는 없었다. 그렇게 고민하며
서너달이 지나니 그런대로 회원들과 함께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클럽 회원의 연령층이
다양해서 초등학생부터 60대의 여선생님까지 계셨다. 이러니 섣불리 엄살을 피울 수도 없고,
또 직업도 다양해서 학생, 가정주부, 회사원, 사업가 또 나처럼 치과의사, 소아과 의사,
이비인후과 의사도 있었다. 온 가족이 함께 나오는 회원도 있었다. 참 보기가 좋다.
어른도 일어나기 힘든 시간에 유치원에 다니는 꼬마가 눈을 반쯤 감고 등에 업혀 나와도
링크장에 들어오면 구호 소리에 맞춰 재미있게 운동을 한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김원익형이
회장으로 있는 LOOK스케이팅클럽으로 생활체육 스케이팅 클럽으로서는 전국 최고의 실력을
갖고 있다고 하며 우리 클럽이 참가하지 않는 대회는 맥이 빠질 정도라고 한다. 주중 월, 수,
금요일엔 쇼트트랙을, 화, 목, 토요일엔 아이스하키를 한다.
TV에서만 보았지 난생 처음 하키 장비를 갖추고 아이스링크에 서보니 감개가 무량했다.
아이스하키 경기는 TV에서나 보았지 어디 일반인들이야 해볼 기회가 있겠는가. 이 운동
클럽에 들어온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라고 지금도 생각한다.
새벽을 가르고 와 아무도 없는 링크에서 나 홀로 스케이팅을 할 때의 그 상쾌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물론 새벽 일찍 일어나기가 얼마 동안은 정말 힘들었지만 말이다. 새벽 운동을 하게 되니
자연히 늦게까지 술을 먹는다거나 동서양화를 본다거나 비디오를
본다거나(비디오매니아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습관도 없어졌다. 일찍 자고 숙면을 하게 된
것이다. 건강을 위해선 백번 좋은 일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