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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우 문화NGO 칼럼>
공원이 있어야 문화도 꽃핀다

관리자 기자  2002.11.04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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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도시구조에서 공원이야말로 인간생존을 가능케 하는 기본적인 토양” 내가 사는 동네 사람들은 요즘 신바람이 났다. 왜냐하면 저녁을 먹고 나면 갈 때가 생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 군부대가 나간 공터 3만평에 부평공원이 생겼다. 시설이라야 비가 오면 물이 빠지지 않는 농구장과 테니스장, 엉기성기 심은 나무와 잔디 사이로 난 산책로 뿐이지만, 차라리 어줍지 않은 시설로 들어차지 않고 그냥 빈 땅으로 남겨졌다는 것이 오히려 그들에겐 더 큰 기쁨이다. 도심 한가운데 이만한 여유공간이 생겼다는 것 자체가 이렇게 좋은 것인 줄은 지금 공원에 산책하러 나온 사람들 자신도 예전엔 미처 몰랐을 것이다. 사람들이 그렇게 빈 공간을 목말라했는지 또 공원이 그렇게 좋은 곳인지, 저녁 어스름이 깔리면 사람들이 하나 둘 삼삼오오 찾아든다. 연인들, 조깅하는 부부들, 노인들, 자전거 타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보하는 이들까지 공원에는 관리사무소의 불이 꺼지는 밤 12시까지 사람들로 북적인다. 모처럼 신선한 나무 냄새와 풀 냄새로 사람들은 하루종일 매연에 막힌 폐를 흠뻑 열어제치곤 기지개를 편다. 산업화로 인해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에 모여 살게 되면서, 자연은 우리 삶에서 멀어져 갔다. 어쩔 수 없는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도시로 떠밀려 내려온 사람들에게 공원과 광장은 마치 산소와도 같이 해맑은 존재이다. 도시계획이 실제로 시행된 부분을 따지자면, 내가 사는 인천의 1인당 공원 녹지 비율은 전국 주요 도시 중에서 최하위라 한다. 이러한 도시 환경에서라면 문화 예술의 인프라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가장 기초적인 생존 여건도 충족되지 않아 마음의 여유도 찾을 수 없는 도시인의 생활을 감안한다면, 공연장이나 박물관, 도서관, 미술관 같은 문화인프라를 요구하기 전에 차라리 공원이 있어야 한다고 외치고 싶을 지경이다. 무분별한 도시개발에 따라 시장논리를 좇는 개발업자와 정치권의 결탁이 덧붙여져서, 과거 무수한 아파트들이 교통혼잡과 공공용지를 도외시한 채 지어졌다.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것들이 탐욕적인 사욕에 의해 사라지고 있다. 모두의 것들 중 망가져 가는 것들은 가장 소중한 공기, 땅, 물, 숲과 같은 것들이다. 경제부흥이라는 미명아래 산업화로 내쳐 달리다 최근 삶의 질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마구 파 헤쳐버린 이러한 공공용지, 즉 모두의 것인 공원과 광장 같은 것들의 중요성에 우리가 눈뜨고 있다. 이제 도시인들에게 공원이 삶의 질을 보장하는 사회복지에 속하든,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복지에 속하든, 기본적인 인간 생존을 약속하는 기초환경에 속하든, 어쨌든 중요한 건 공원이 현재의 우리에겐 너무도 필요하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어쩔 수 없이 가져왔던 부작용들 즉 경쟁에서 뒤 처진 낙오자들과 빈부의 격차가 문화복지의 장에서 용해되어 없어지듯, 마찬가지로 공원에서도 하나의 완충작용으로서 이런 부작용들이 하늘로 증발해버리는 것이다. 그런 사람이 많지 않길 바랄 뿐이지만, 요즘도 아침 햇살에 하늘로 증발하는 이슬과 함께 공원 벤치에서 아침을 맞는 노숙자들이 한 둘 보인다. 지난번 월드컵 때 우리는 광장에서 생의 환희가 자연스럽게 자발적인 응원 축제로 분출되는 것을 보면서, 참 축제의 본질과 더불어 광장의 중요성을 보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원은 조깅과 산책과 심호흡을 통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하루가 작은 축제로 만개할 수 있는 장소이다. 하루를 맞이하든 하루를 마무리하든, 공원에서의 축제는 작지만 그러나 모든 이들이 스스로 벌이는 감사 축제인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다면, 현재와 같은 도시 구조에서는 공원이야말로 인간 생존을 가능하게 하여 결국 문화도 꽃피울 수 있게 하는 가장 기본적인 토대인 셈이다. 다시 말해 공원은 도서관이나 공연장, 박물관, 미술관과 같은 문화인프라(문화기반시설)를 가능하게 하는 심층 하부구조인 것이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고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만드는 것이 문화이다. 문화를 꽃피우기 위한 선결조건은 자연인 것이다. 자연 환경이 인간 생존의 필수적 요소임을 우리가 감안한다면, 잃어버린 자연을 대체해주고 있는 공원은 가장 근본이 되는 도시의 문화인프라라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도시에서는 공원이 있어야 문화도 꽃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