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으면서 문화운동을 하는 까닭에, 이따금 주변에서 “아하, 그래도 돈이 있으니깐 하는군요”라는 말을 무심코 듣는다.
물론 어떤 일을 하든 간에 돈이 필요한 수단임은 확실하다. 그러나 무슨 일을 하는데 돈이 전부는 아니다.
건강해야 일을 할 수 있듯이, 돈은 일을 하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그런데도 ‘저 사람은 돈이 있으니깐 일을 하는구나’하는 시각에는 원초적인 인간본성이 지니고 있는 부정적인 감정도 때론 숨어 있다.
그 동안 일부 지도층이나 상류층이 지위에 걸맞지 않게 사회적 책무를 다하지 못하여서 부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나 막연한 반감이 우리 사회에 자라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겪게되는 여러 가지 사건들과 그에 따른 개인사적 감정들이 암암리에 그들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가령 나 자신도 중·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의사 집의 아들이면서 유별나게 굴던 어떤 한 친구를 공연히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돈의 총량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는 적게든 크게든 그것을 나누어 가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있는 사람이 돈을 쓰면 돈은 있는 쪽에서 없는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 셈이니, 돈은 돌고 도는 것이라는 본래의 역할 중의 하나를 다하게 되고 또 부는 재분배되어 좋을 것이다. 더욱이 그 돈이 공적인 일에 쓰이는 경우라면 사회 전체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더 좋은 일일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노력이 필수요건 이겠지만, 엄격하게 따져 보자면 돈 있는 사람의 현 위치도 어느 정도는 돈을 그 만큼 가질 수 있게 만든 사회·역사적인 환경에서 기인한다.
그러므로, 어쩌면 그러한 것을 가능케 해 준 사회에 어느 형태로든 부를 다시 환원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렇게 보자면 우리는 ‘돈이 있으니깐 돈을 쓰나보다’라고 가볍게 보는 것보다는 오히려 더 제대로 잘 쓰라고 북돋아 주는 것이 사회 전체에 이바지하는 태도라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칭찬과 격려는 우리의 기를 한껏 살려주고, 질시는 마음을 움츠리게 한다.
돈 가진 자가 돈 잘 쓰는 것에도 우리가 질시를 보낸다면, 그는 금방 움츠러 들어 “아무래도 마찬가지인데 그냥 움켜쥐자”하여 결국 그도 죽고 사회도 죽지 않을까?
자본주의가 현대 사회의 전반적인 문화 양태라면, 결국 자본주의의 부작용과 폐해를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는 부 자체의 비난보다는 부의 사회 환원을 진작시켜주고 칭찬하는 운동이다.
돈이란 벌어서 쓰는 것이고, 그래서 이 사람에서 저 사람으로 도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버는 것에만 치중했지 쓰는 것에는 치중하지 못했다. 크게 본다면, 국가 시책에서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공익을 위해 돈이 제대로 돌게 만들려면, 버는 돈에서 세금 걷는 것, 즉 소득세의 징수 이상으로 쓰는 돈에서 세금을 덜 걷는 것, 즉 기부금의 비용 인정 등의 세금감면이 보다 사회를 개선한다는 점을 주목해야 했다.
국가에서 시행하는 사회복지정책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기부금이나 후원금 등을 세금감면이나 국민적 성원으로 장려하여 민간부문에서 스스로 사회복지사업에 참여토록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죽이고 살리는 맥락에서 정책제안 운동과 문화활동 참여를 비교하여 보면, 우리는 문화운동의 올바른 방향을 감지할 수 있다.
문화에 있어서 행정적인 제도나 정책의 방향은 실제 생활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러므로 그 파급효과와 영향력에서 보자면, 정책제안이나 비판과 같은 운동은 빼 놓을 수 없는 실천적 운동의 하나이다.
그러나 요즘은 한동안 유행하던 축제처럼 정책토론회가 난무한다. 어떤 때는 관계자 몇 사람만 앉아 있는 토론장을 보면서, 본래 정책토론회란 몇 사람의 정책전문가를 만들기 위한 토론회가 아니고 또 정책전문가란 정책을 모르는 숱한 시민들을 위해 그 곳에 앉아 있는 것이라는 원론적인 상념에 젖는다.
정작 문화운동가들이 시간이 없어 전시나 공연 등을 직접 관람하지 못한다면, 마치 사랑에 기초하지 않은 이념이 공허하듯이 운동가들의 심신은 한없이 건조해 질 것이다.
더 나아가, 적을 미워하는 자가 바로 적의 모습을 닮듯이, 정책 입안자나 행정책임자를 향한 비난의 감정이 단지 모습을 바꿔 공허한 이념의 허상으로 대체되기 십상이다.
정책적 비판의 고개를 넘어서서 직접 문화생활을 맛보아 스스로 풍성해짐으로써, 결과적으로 총체적인 사회 문화의 폭을 넓혀주고 질을 향상시키는 문화운동이야말로 진정 우리의 삶과 문화를 윤택하게 만드는 문화운동이다. 다시 말해 그것은 자기정화를 통한 사회정화운동이며, 서로 죽이는 운동이 아니라 서로 살리는 운동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