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그리고 설레임

2022.05.31 14:54:25

스펙트럼

마흔은 불혹(不惑)이라 하여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마음의 흔들림이 없는 나이라고 하였습니다. 과거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 훨씬 낮은 공자가 살던 시기에 지은 말이니 지금의 연령과는 맞지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한국사회에서 마흔이란 나이는 조직에서 중간관리자 역할을 하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조직의 허리라는 표현을 하기도 합니다. 결혼을 해서 자녀가 있는 경우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시간을 많이 같이 보내야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본인이 좋아하는 일들보다 주변에서 요구하는 책임들이 더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신체적으로도 만40세를 생애전환기라고 부르며 이전에 건강검진 때 안했던 새로운 항목들이 추가되는 것을 보면 기존의 이삼십대와 다르게 체력적으로 약해지는 나이이기도 합니다. 술을 마셔도 이전과 다르게 술로 좋은 기분이 드는 것보다 다음날 힘들어지는 것과 그로 인한 걱정이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는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여름에 찾았으나 이제는 속이 예민해질까봐 걱정되어 목이 마르지 않을 때는 한 여름에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로 주문을 합니다. 신체적으로도 더 예민해지고 불편한 자세나 행동은 안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마흔은 불혹이 필요하고 해야되며 할 수 밖에 없는 나이인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불혹이 되는 것을 느끼기도 하는 것이 이전과 다르게 오락적인 일을 할 때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지 않습니다.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술을 마실 때 같은 양을 마셔도 이전만큼 즐겁지는 않습니다. 요즘은 OTT서비스가 잘되어 있어서 원하는 영화나 드라마를 선택해서 편리하게 시청할 수 있습니다. 그럴 여유가 많지는 않지만 간혹 밤 중에 가볍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볼 만한 게 있나 찾더라도 볼 만한 게 없거나 겨우 찾아보더라도 집중을 잘 못합니다. 그러다가 보면 예전에 재밌게 본 명작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만 찾아서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혹(惑)하고 싶어져서 惑하고 싶은 것을 찾아봐도 쉽게 惑해지지 않는 서글픈 시기가 마흔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뭐든 지 처음 겪고 보는 것은 새롭고 신기하기에 금새 미혹되어버리기 좋습니다. 그래서 미성년자라는 법적나이가 있고, 청춘(靑春)이라는 용어로 20대를 에너지가 넘치는 시절로 표현합니다. 글제목에 나오는 ‘설레임‘이라는 용어와 그 감정은 불혹보다는 그 이전일수록 어울리는 용어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을 지닌 인간으로서 마흔을 넘어 지천명이나 환갑이 지나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계속 갖고 싶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얼마전에 故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최초로 출시한 프리젠테이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스티브 잡스의 나이가 50대 초반이었는데, 아이폰 소개를 하며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제품이라서 전날 밤에 설레서 잠을 못 이뤘다고 프리젠테이션에서 말했습니다.

 

딱 그 대목에서 저는 깊은 충격을 받으며 스티브 잡스가 너무 부럽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순히 그가 이룩한 업적이나 사회경제적인 지위보다도 마흔을 훌쩍 넘어 만51세에 전날 밤에 잠을 설칠 정도로 설레일 수 있었다는 점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미혹도 쉽게 안되며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들이 많은 마흔이라는 시점에서 설레일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왜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 대학의 졸업식 연설에서 정착하지 말고 사랑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and don’t settle)는 말을 했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직 만으로는 서른아홉이고 한국나이로 마흔하나인 마흔이라는 나이가 익숙하지 않은 저에게 설레이지 않는 일보다는 설레이는 일을 주로 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가지 외부적인 또는 내부적인 방해요인들을 잘 이겨낼 수 있게 스스로를 격려하며 글을 마칩니다.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현재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예방치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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