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에 눈을 떠서 가볍게 스트레칭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제법 이마에 땀이 맺힐 정도까지 몸을 풀고 나서 자전거 타기, 종이신문 읽기(아직도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습니다) 등 병원에 출근하기 전까지 이런저런 루틴(routine)을 행하고 나서 병원으로 향합니다. 루틴은 ‘어떤 일을 함에 있어 일상적 정해진 방식’이라고 정의됩니다. 한 마디로 그 일련의 행동방식이 정해진 큰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는 고속화도로를 운전해서 오전 9시 전에 병원에 도착해서 직원들과의 조회, 내원할 환자 차트 미리 검토하는 등을 하고 나면 본격적인 진료가 시작되는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찾아온 아이들과 보호자분들과 어우러지게되면 어떤 아이는 순한 양처럼, 천사처럼 협조적이지만, 또 다른 아이들은 마치 우리들이 자신을 잡아먹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서워하면서 비명을 지르기도 합니다. 또 어떤 보호자분들은 온화하고 부드러우시지만, 또 다른 분들은 집에서 좋지 않은 일이 있으셨는지 매우 날카롭고 도전적이시기도 합니다. 아무튼 그러그러하게 오전 진료를 마치고 나면 뭘 먹을까 고민을 하며 병원문을 나서고, 어떤 날은 교육이나 회의 관계로 도시락을 시켜먹기도 합니다. 그렇게 점심시간이 지나고 오후 진료를 다시 시작하면 또 오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케이스와 가족들을 만나면서 어느덧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고 퇴근시간이 됩니다. 이 또한 일상적입니다.
이전에는 퇴근 후에 많은 모임과 식사자리가 있었는데, 지난 2년 이상 동안은 코로나로 인하여 거의 그런 행사가 없어진 오후 시간에 적응되어왔다가 이제 엔데믹(풍토병) 체제로 코로나19 대응 방식이 전환되면서, 일상회복이 본격화되고는 있지만 아직은 완전 적응이 되지를 않습니다. 일상을 회복하면 이전과 같아질 것이라 생각했던 여러 가지 분위기가 이상하게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왠지 어색하고 활기가 떨어졌습니다. 얼마 전에 딸이 결혼을 해서 곁을 떠나서 그런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30년 이상을 치과적으로 너무 진을 빼고 열심히 살아와서 ‘번아웃’이 온 것인지, 아니면 요즈음의 새로운 소위 ‘엔데믹 블루’인지 구별이 잘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루틴에 지쳐 있습니다.
그런 중 얼마 전에 조금 독특한 드라마를 보게 되었습니다. 독특한 명대사와 분위기가 있었는데 보통 인기몰이를 하는 자극적인 내용 없이 대사 중에 추상적인 단어가 등장하면서 처음에는 ‘이런 드라마가 있지?’ 싶었지만 계속 빠져들면서 보게 되는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그런 드라마였습니다.
서울 근교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와 함께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세 남매의 이야기로서, 이들은 하루 세 시간 넘는 출퇴근길에서부터 매일 고단하고, 자기 이익만 챙기는 동료 직원, 상사의 불합리한 언행, 항상 얇은 통장 잔고 등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삶에 지쳐 있습니다. 이런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구씨’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무엇인가 이전과는 다른 잔잔한 파동이 생깁니다.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비슷하면서 지루한 나날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살아가는 등장인물들을 보면서 내 삶도 저들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나도 해방되고 싶고, 그 행복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드라마틱한 사건보다 주인공들의 평범한 일상과 내면의 말에 관심을 두는 이 드라마는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를 생각한다는 것, 인생에서 해방이란 무엇인가 등, 다양한 내용으로 나에게 생각의 거리를 던져주었습니다.
답답한 일상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주인공의 대사 한 마디가 마음에 다가온 날이 있었습니다. 구씨가 여러 일을 치르고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인생이 늘 이렇게, 하루도 온전히 좋은 적이 없다고 말을 하는데 그런 그에게 이유조차 묻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만하다고,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앞에서 문을 열어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몇 초 동안 마음이 설레고, 아침에 눈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라서 출근 안하지?’라는 생각에 또 몇 초 설레고! 그런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에 5분만 채우면 그것이 우리 모두가 죽지 않고 사는 법이라고 담담하게 건네는,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설명하는 여주인공의 말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너무나도 사소한 이런 일상의 순간들은 참으로 감사한 순간들입니다. 조금만 더 마음을 열어보면 설레일 수 있는 작은 행복의 순간들이 많습니다. 숨 막히고, 때론 크게 답답하게 느껴지는 비슷하게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 그런 설렘이 있어서 우리는 삶을 버틸 힘을 얻을 것입니다.
매일 비슷한 일상에 지쳐가는 요즘, 나만의 설레는 치과의 하루하루를 만들어보려 합니다. 하루 중 설레는 5분은. 적어도 그 순간의 시간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될 것이며 누가 가르쳐 줄 수 없지만,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가져볼 수 있는 일상 속의 작은 발견일 것입니다. 내가 발견하고 의미부여 하는 그 기쁨의 순간들을 모아서. 삶을 즐길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 치과에서의 순간들의 연속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만들어야 설레는 의미가 생깁니다. 그렇게 나의 치과 해방일지를 써나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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